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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인권위 천덕꾸러기’ 이제 그만







김학성
한국헌법학회장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초등학교 시절 미술시간에 이름이 ‘살색’인 크레파스를 사용한 기억이 있다. 당시는 물론이고 그 후에도 ‘살색’은 우리의 피부색과 같은 색깔을 나타내는 것이려니 생각했을 뿐, 그것이 문제가 되리라고는 의식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국가인권위원회가 살색은 피부색에 따른 차별이라고 보아 변경을 권고했다. 이에 기술표준원이 KS표준(관용색)에서 ‘살색’을 없애고 ‘연주황’으로 했는데, 초·중등학생들이 연주황색이란 표현이 지나치게 어렵다면서 어린아이에 대한 차별이라고 인권위원회에 진정을 하자 다시 ‘살구색’으로 최종 확정했다.



 국민의 기본권 보장의 최후의 보루는 헌법재판소다. 그런데 그에 더해 인권위원회도 만들어져 있으니 그 존재 이유가 무엇인가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헌법재판소는 법률의 효력도 상실시킬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그 결정은 모든 국가기관을 구속한다고 법률로 보장하고 있다. 그런데 인권위원회 결정은 권고에 그치며 헌법재판소와 같은 법적 구속력을 가지지 못한다. 그렇다면 소송절차가 완비되어 있는 지금의 법치국가에서 권고적 성격에 불과한 결정을 내리는 국가기관이 과연 필요할 것인가에 의문이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권위원회는 인권보장을 위한 매우 중요하고도 실제적인 기능을 담당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헌법재판이나 일반재판을 통해 법적 구제를 받으려면 복잡하고 전문적이며, 또 비용이 요구되는 소송절차를 밟아야 한다. 높은 보수의 법적 도우미의 도움 없이는 자신의 인권이나 기본권을 보장받는 것이 쉽지 않다. 반면 인권위원회는 사회적 약자의 권리구제를 위해 매우 유용하고도 실질적인 기능을 수행한다. 법률지식이 없어도, 소송절차의 복잡한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도, 법률 전문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도,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만한 재력이 없어도 인권위원회에 즉시,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은 다른 어떤 헌법기관에 의한 구제가 따라올 수 없는 장점이다.



 존엄, 생존, 평등을 위한 국가와 국가 구성원 모두의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와 더불어 북한 주민의 인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고통 당하는 2000만 주민을 외면하고 어찌 하나의 민족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북한 주민을 위하는 가장 시급한 일은 굶주린 배를 채워주는 것이겠지만, 영적 양식을 제공하는 것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런데 인권위원회 예산 중 북한 인권으로 잡혀 있던 3억 3000만원이 2억원으로 무려 1억 3000만원이나 대폭 삭감됐다. 애초 북한 인권에 할애된 예산 규모가 작은 것도 문제였지만 그나마 책정된 예산마저 대폭 축소됐다. 북한 인권의 추락을 보고 있는 듯하다.



 인권위원회가 만들어진 지 이제 겨우 9년이다. 모든 조직이 그렇지만 자리를 잡으려면 세월이 필요하고 인내가 요구된다. 조직개편에서 홀대 받았던 인권위원회를 기억하면서, 또 얼마 전 구성원 간의 갈등으로 고통에 빠진 인권위원회를 바라보면서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인권위원회 내부갈등과 그로 인한 인권위원회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인권의 후퇴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김학성 한국헌법학회장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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