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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혁명 100년 중국을 알자] 불칭패 → 도광양회 → 유소작위 → 화평굴기 → 돌돌핍인

“당신은 물주와 협상할 때 얼마나 세게 나갈 수 있느냐.” 세계 수퍼파워인 미국의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이 케빈 러드 전 호주 총리에게 한 말이다. 여기서 물주는 ‘중국’을 가리킨다. G2로 부상한 중국을 대하는 미국의 어려움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2011년 중앙일보 어젠다] 한반도 소용돌이, 주도권을 잡자
수세서 공세로 … 중국 외교의 변신

 미국이 그럴진대 나머지 국가는 말해 무엇하랴. 중국 외교가 소극·수세적에서 적극·공격적으로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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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중국 성립 이듬해인 1950년 중·소 상호원조조약이 체결됐다. 소련은 중국을 동유럽 위성국가 취급했다. 중국은 반발하지 못했다. 미국이 중국 대륙을 공습할까 떨던 50년대, 소련은 후견의 대가로 만주의 주요 항구와 철도 운영권을 요구했다. 중국은 ‘노(NO)’라고 하지 못했다. 54년 제네바 회의에서 저우언라이(周恩來·주은래) 총리가 존 덜레스 미 국무장관에게 내밀었던 악수의 손은 거부됐다. 중국은 분했지만 참았다. 70년대 미국이 대만에 무기를 팔았지만 중국의 반발은 스치는 바람처럼 가벼울 뿐이었다.



 ‘심알동 광적량 불칭패(深挖洞 廣積糧 不稱覇).’ 굴을 깊게 파고, 식량을 비축하며, 패권자라 칭하지 말라. 이 같은 마오쩌둥(毛澤東·모택동)의 교시는 당시 미국과 소련 두 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한 중국 외교의 생존전략이었다.



개혁·개방을 추진하던 80년대에도 중국 외교는 숨을 죽여야 했다. 덩샤오핑(鄧小平·등소평)이 제창한 ‘도광양회(韜光養晦·빛을 감춰 밖으로 새지 않도록 하면서 은밀하게 힘을 기른다)’가 외교정책의 기조가 됐다. 경제성장을 위해선 불필요한 대외 마찰은 줄여야겠다는 현실론에 입각한 것이었다. 덩은 “100년간 이 기조를 유지하라”는 특별한 당부를 내리기까지 했다.



 중국 외교가 의미 있는 ‘노’를 외치기 시작한 건 90년대 들어서였다. 91년 중국의 철낭자 우이(吳儀·오의) 대외경제무역부 부부장이 칼라 힐스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마주 앉았다. 중·미 지적재산권 협상을 위해서였다. 힐스가 “우리는 좀도둑과 협상하러 왔다”고 독설을 내뱉자 우이가 되받아쳤다. “우리는 강도와 협상하고 있다.” 미 박물관 내 중국 문화재를 지적하면서다.



 90년대 중국 외교가에선 ‘책임대국론(責任大國論)’이 제기됐다. 97년 장쩌민(江澤民·강택민) 국가주석은 “대국으로서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겠다”고 선언했다. 덩의 오랜 도광양회 기조에서 벗어나 ‘필요한 역할은 한다’는 ‘유소작위(有所作爲)’로의 변신이었다.



 후진타오(胡錦濤·호금도) 주석 시기엔 한동안 ‘평화로 운 굴기(和平崛起)’가 나오더니 이제는 거침없이 상대를 압박한다는 뜻의 ‘돌돌핍인(咄咄逼人)’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12월 열린 중국의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劉曉波)에 대한 노벨평화상 시상식은 반쪽이 됐다. 세계를 상대로 시상식 보이콧을 요구한 중국은 17개국 100여 개 국제단체를 불참시켜 세를 과시했다. 그보다 석 달 전의 센카쿠(尖閣) 열도 영유권 분쟁 때에는 희토류 수출 중단, 간첩혐의 일본인 억류 등 무차별 공세로 일본의 항복을 받아냈다.



 거칠어진 중국 외교에 국제사회는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중국의 외교정책이 고압적으로 변해 각국 외교관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존 헌츠먼 주중 미국대사의 본국 보고다. 나이지리아의 한 관리는 “중국이 원조를 앞세워 에너지 공급계약을 강요하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뉴욕 타임스 같은 진보 성향의 매체도 이젠 미국이 동맹국들을 규합해 중국에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다.



 이에 대한 중국의 반응은 단호하다. “중국의 국익과 존엄이 침해받는 상황에 대해 항의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우리를 오만·무례하다고 한다. 세계는 우리가 ‘노’라고 말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러위청(樂玉成) 중국 외교부 정책기획국장의 말이다. 중국 외교는 왜 ‘노’라고 할까. 배경은 복합적이다. 자원 확보가 한 원인이다. 정비젠(鄭必堅) 중앙당교 학술위원회 주임은 “자원의 안정적 공급 없이는 중국의 평화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뉴욕발 금융위기 이후 서구 모델에 대한 불신이 커진 탓이란 분석도 나온다. 그런가 하면 대표적 현실주의 학자인 옌쉐퉁(閻學通) 칭화대 국제문제연구소장은 “냉엄한 국제질서에서 국력에 걸맞은 영향력 행사는 필연적”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중국 지도부 내에 국제사회의 미래를 구상하는 비전이 없다는 지적은 눈여겨볼 만하다. “중국 지도자와 토론해 보면 미래의 세계질서와 중국의 역할에 대한 생각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친야칭(秦亞靑) 중국 외교학원 부원장의 말이다. 이 때문에 눈앞의 국익에만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중국 외교가 날로 생경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특별취재팀=중국연구소 유상철·한우덕·신경진, 국제부 예영준·이충형 기자, 베이징·홍콩·도쿄 장세정·정용환· 박소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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