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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이 비웃던 ‘한국 조랑말’ 세계 5위 자동차 대국을 끌다





[2011 신년기획] 대한민국 경제국보



1974년 이탈리아 토리노 모터쇼에 출품된 포니. 이탈리아 일간지 라스탐파는 “한국이 자동차 공업국의 대열에 진입했다”며 포니 출품을 크게 소개했다. 기자회견장에서 한 기자가 “고급 승용차가 아닌 조랑말(포니)이 사람을 태우고 다니는 시대로 돌아가는 게 아니냐”고 하자 정세영 당시 현대자동차 사장이 “사람이 조랑말을 태우면 몰라도, 조랑말이 사람을 태우는 건 이상할 것 없지 않느냐”고 농담으로 응수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충구씨 제공]





제 2호 현대자동차 포니 여기 한 대의 자동차가 있다. 합판·가발을 수출하던 나라에서 만들어진 첫 번째 독자모델 포니다. 당시 한국엔 부품 조달망은 물론 계측기조차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다.



일본산 엔진과 이탈리아의 디자인, 영국 기술자의 지도를 받아 만들었다. 하지만 ‘하면 된다’는 정신과 불굴의 의지만은 온전히 국산이었다.



오늘날 지구촌 곳곳을 누비는 수천만 대의 한국산 자동차의 뿌리는 포니다. 글로벌 자동차 강국 코리아의 시작점이 된 포니가 대한민국 경제국보 2호로 선정됐다.



“이 사람아, 자네 돈인가. 실패하면 내 돈 까먹는 거야. 젊은 사람이 왜 그리 패기가 없어! 내 돈으로 독자 모델을 만들어 보라니까!”









1977년 영국의 자동차 안전규정 시험기관에서 포니가 충돌시험을 받고 있는 모습. [이충구씨 제공]



 1973년 봄, 서울 세운상가에 위치한 현대자동차 제품기술과(훗날 현대차 기술연구소).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정주화 제품기술과 차장에게 “독자 모델이 있어야 수출할 것 아니야. 실패해도 좋으니 맘껏 해봐”라고 윽박질렀다.



 정 회장의 역정에 가까운 소리에 현대차 내부에 ‘독자 개발 비밀 결사대’가 결성된다. 당시만 해도 현대차 경영진 사이에선 ‘독자 모델 개발은 현대차를 통째로 망하게 하는 것’이라는 반대 분위기가 팽배했다.



 73년 8월 정세영 사장과 정 차장은 일주일간 이탈리아 출장에 오른다. 현대중공업 영국지사를 통해 독자 모델 디자인과 설계를 맡아줄 이탈리아 전문업체인 이탈디자인을 소개받은 것이다. 프로젝트팀은 다음 달 이탈디자인과 독자 모델 개발 계약을 한다. 사내에 비로소 ‘포니 프로젝트팀’이 공식적으로 발족됐다. 세계 자동차 강국 5위(연간 800만대 생산 능력)라는 성공 신화를 일궈낸 독자 모델의 시작이다.



 현대차는 70년대 초 독자 모델 개발을 위해 포드·GM의 문을 먼저 두드렸다. 포드는 단번에 거절했다. 한국은 포드 모델의 조립생산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이었다. GM도 쉽지 않았다. GM 담당자는 “(너희들이) 고유 모델 만들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말했다.











 ◆포니는 어떤 차=트렁크 부분이 경사지게 빠진 4도어 해치백이다. 디자이너는 당시 30대 기수로 주목받던 이탈디자인의 조르제토 주지아로였다. 72년 폴크스바겐 해치백의 대명사인 골프를 디자인해 한창 주가를 높일 때다. 포니가 세단이 아닌 해치백으로 나온 것도 골프 디자인을 기본으로 사용해서다. 포니 시제작차(프로토타입)는 74년 10월 이탈리아 토리노 모터쇼에 처음 선보였다. 앞부분이 툭 튀어나온 ‘롱 노즈 패스트백’ 스타일로 주목을 받았다.



 엔진은 일본 미쓰비시의 수냉 4기통(배기량 1238㏄)인 새턴을 사용했다. 최고 80마력에 최대토크 10.8㎏·m/4000rpm을 냈다. 최고속도는 무려 155㎞/h가 나왔다. 당시 미쓰비시는 소형 트럭의 엔진을 기본으로 개발해 힘(토크)이 좋았다. 차체(언더 보디)는 미쓰비시 소형차 랜서의 것을 그대로 이용했다. 변속장치는 전진 4단, 후진 1단의 수동변속기였다. 연료 소모량은 시내 주행 시 L당 13㎞, 고속도로 주행 시 L당 17.6㎞로 배기량에 비해 연료 소모량이 적었다. 외부 컬러로는 하늘색·진감색·흑색·크림색·녹두색·오렌지색·베이지색·황금색 등 여덟 가지를 쓰고 여기에 은색·감색을 선택사양으로 했다. 신차 가격은 227만3270원이었다.



 ◆국산화 시동=현대차는 포니 개발 때 디자인과 차체 설계를 맡은 이탈디자인에 5명을 연락관으로 파견했다. 이들의 임무는 어떻게든 신차 설계 과정을 어깨너머로 배워오는 것이었다.



 국산화 과정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이탈디자인에서 시제작한 차와 완성된 설계도면을 보내왔다. 75년 울산 현대차 공장에 발족한 기술연구소에서 그대로 깎고 다듬어서 시험차를 만들었지만 부품들이 이가 안 맞아 조립이 안 되는 등 엉망이었다. 국산 계측기의 수준이 눈금이 부정확하고 정밀도가 떨어지다 보니 오차가 생겼던 것이다. 결국 계측기들을 전부 수입해 다시 부품을 만들자 제대로 조립이 됐다.



 포니는 결국 국산화율에서 신기원을 마련했다. 무려 90%에 이르는 국산화율이다. 포니는 국내 기술 수준이 따라가지 못하거나 시장성이 없어 생산 자체가 불가능한 일부 품목을 수입에 의존했을 뿐 대부분을 국산화했다. 엔진도 미쓰비시에서 주요 부품만 들여왔다.



 포니는 내구성이 좋아 자가용뿐 아니라 택시도 큰 인기였다. 첫해 1만 대 넘게 팔리며 국내 자동차 시장의 44%를 차지했다. 이어 77년 1439㏄ 92마력 엔진과 왜건·픽업트럭으로 모델을 다양화했다. 첫 승용차 수출의 물꼬도 텄다. 76년 남미 에콰도르행 선박에 7대의 포니를 선적한 것이다. 82년 후속 포니2가 나왔고 84년 캐나다 시장에서 수입차 판매 1위를 달성했다. 포니는 90년 단종될 때까지 국내외에서 74만여 대가 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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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의 원동력=정주영 회장은 자서전에서 “선진국이 후진국과 합작사업을 하면 거의 예외 없이 그 후진국을 단순한 시장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국제 경쟁력을 갖춘 고유 모델 자동차를 만들 필요성을 느꼈다”고 회고했다. 그는 처음부터 자동차를 수출 전략 산업으로 키우겠다는 생각이 명확했다. 67년 정부에 제출한 현대차 설립 신청서에는 “수입 대체 산업으로 국가 경제발전에 공헌할 뿐만 아니라 장차 우리나라 경제를 선도할 수출 전략 산업으로 적극 육성하겠다”고 명시돼 있다. 구상은 현실이 됐다. 2009년 기준,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의 생산액은 총 125조원으로 제조업 전체의 11.5%를 차지했다. 직·간접 고용은 170만5000명으로 전체 산업의 7.3%를 점하는 거대 산업이 됐다. 조세액은 총 세수의 15% 인 32조원, 부가가치는 전체 제조업의 10.3%에 달하는 38조원이다. 작은 조랑말이라는 뜻의 포니로 시작한 자동차 독자 개발이 한국 경제를 세계 10위권으로 끌어올리는 원동력이 됐다.



김태진·김선하 기자



경제 국보 선정 자문위원단 (가나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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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삼성전자 ‘64K D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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