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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한 몸 수고롭게 해 자연과 세상이 나아질 수 있다면…”

중봉에서 촬영한 여러 장의 사진을 결합한 주능선 파노라마. 우뚝 솟은 천왕봉(왼쪽)에서 시작한 주능선은 서북쪽으로 가면서 삼도봉·반야봉·노고단·만복대·바래봉을 거친 뒤 전북 남원시 인월면 덕두봉(오른쪽 끝)에 이른다. 신동연 기자
바래봉은 스님의 밥그릇인 바리때를 엎어 놓은 모양이다. 처음엔 바리봉이었지만 음이 변했다고 한다. 세석평전과 함께 철쭉으로 유명한 이 봉우리 정상엔 키 큰 나무가 없다. 그래서 멀리 천왕봉에서 봐도 곧 눈에 띈다. 바래봉을 뒤로 하고 능선을 타는 사이 해가 솟았다. 천왕봉으로부터 노고단까지 펼쳐진 지리산 주능선이 한눈에 들어왔다. 지리산 3대 봉우리 가운데 하나인 반야봉이 중앙에 턱 하니 버티고 있다.

지리산 능선길 200리, 태극종주 도전기

팔랑치, 부운치, 세동치, 세걸산, (큰)고리봉, 정령치, 만복대, 묘봉치, (작은)고리봉, 성삼재…. 첫날 숙영지인 노고단대피소까지는 넘어야 할 봉우리가 켜켜이 쌓여 있다. 봉우리마다 고개마다 이름이 있는 것이 신기하다. 그 이름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를 안고 있는 지리산이다. 서북릉에는 특히 변란을 피해 들어온 마한 왕과 관련된 이름이 많다. 성이 다른 세 장수가 방어했다는 성삼재(姓三峙), 정씨 성을 가진 장수가 지킨 정령치(鄭嶺峙), 8명의 병사가 지켰다는 팔랑치(八郞峙)가 대표적이다. 능선에서 벗어나 있기는 하지만 황령치(黃嶺峙)는 황씨 성을 가진 장수가 지킨 고개이고, 달궁(達宮)마을은 왕이 머물러 있던 곳이다.

지난해 12월 22일 지리산 정령치에 이른 태극종주4인방. 왼쪽부터 배두일 산악작가, 김선수 민변 회장, 신동연·강남규 중앙SUNDAY 기자. 이들은 이날 이후 나흘 동안 전북 남원시 덕두봉에서 경남산청군 웅석봉까지 이어진 지리산 태극능선 80여㎞를 걸었다.
정상이 넓고 평평해 복스럽게 보이는 만복대(萬福臺). 이름·모양만큼이나 많은 사람이 복을 누릴 만큼 넉넉하다. 지리산 중에서는 가장 넓은 억새 군락지인데 이는 한국전쟁의 상처라고 한다.

노고단대피소~장터목대피소까지의 둘째 날 산행은 23일 6시 둥근달을 보며 시작했다. 임걸령과 노루목 사이에서 일출을 맞았다. 겨울이 아니었다면 일출 직전에 새소리가 요란했을 것이나 새소리를 들을 수 없어 아쉬웠다. 연무(煙霧, haze)로 시계가 불투명했지만 날은 포근하고 좋았다. 두 시간 정도 지나 삼도봉(三道峰)에 닿았다. 전북·전남·경남 3도의 경계를 이룬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봉우리 정상 부분의 바위가 낫의 날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해 ‘낫날봉’으로 불렸다. 산꾼들 사이에선 ‘날라리봉’으로 불린다. 민주지산의 삼도봉은 전북·충북·경북의 삼도가 만난다. 지역이 아무리 갈라진다고 해도 만나는 지점이 있으니, 그 지점은 나뉘기 전의 통합 상태인 태극과 통한다고 할 수 있다. 삼도봉 정상에는 삼각뿔 형태의 표지가 있는데, 산꾼들 사이에는 항문을 삼각뿔에 대고 사진을 찍으면 삼대에 걸쳐 치질 걱정이 없다는 말이 있다. 남쪽에서 불무(不無)장등 능선이 치고 올라와 합류한다. 불무장등은 장등(오르막)이 없지 아니하다는 이중부정을 사용한 것이 매력적이다.

12월 지리산 태극종주는 수월한 여정은 아니었다. 중앙SUNDAY 취재진이 동지 직후 얼어붙은 눈과 겨울 바람에 칼날처럼 벼리어진 조릿대 숲(왼쪽)을 지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왕등재 습지.
연하천대피소를 향해 서두르는 발걸음을 토끼봉이 가로막는다. 여기서 토끼는 생김새와는 상관없다. 반야봉을 중심으로 해서 묘방(卯方), 즉 정동쪽에 위치한다는 의미다. 별주부전에서는 토끼가 피지배 민초들의 세계인 육지세계의 대표로서 지배 관료들의 세계를 뜻하는 용궁세계의 사자(使者)인 자라의 구변에 속지만, 끝내 용궁세계를 우롱하고 자기 세계로 돌아온다. 토끼봉을 힘들게 넘으면서 새해에 이런 일이 실현될 것이라는 상념에 젖었다.

중국 전국시대 역사서인 국어(國語)의 ‘종선여등 종악여붕(從善如登 從惡如崩, 선을 따르는 것은 산을 오르는 것과 같고 악을 따르는 것은 산을 내려가는 것과 같다)’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오르는 것이 내려가는 것보다 힘이 덜 든다는 의미다. 장거리 산행에서는 오르막과 내리막의 차이가 없어진다. 올라간 다음에는 내려가야 하고, 내려간 다음에는 다시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길의 상태에 일희일비할 필요 없이 꾸준히 ‘처음처럼’ 한 걸음씩 옮기는 것이 최상책이고 그러다 보면 목적지에 도달하게 된다.

그렇게 도착한 게 벽소령(碧<9704>嶺)이다. ‘푸른 밤 고개’, 즉 달빛이 너무 희고 맑아 푸른빛으로 보이는 고개라는 의미다. 벽소명월 또는 한월(碧<9704>明月 또는 寒月)은 지리 10경 중 제5경이다. 화산 이현상(火山 李鉉相)이 최후를 맞은 빗점골이 벽소령 밑에 있다.

3일차인 24일은 먼저 천왕봉에 오르게 된다. 천왕봉 일출은 지리10경 중 제1경으로 삼대가 덕을 쌓아야 구경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우리 일행은 대부분 이를 이미 보았기 때문에 거기에 집착하지 않았다. 세석대피소에서 잔 일행은 새벽 3시30분에 일어나 준비하고 출발해서 6시쯤 장터목대피소에 도착했다. 강추위와 강풍을 뚫고 장터목대피소 취사장에 들어서는 모습이 마치 시베리아에서 패배하고 돌아온 나폴레옹군 병사의 모습이었다.

7시 조금 넘어 대피소를 출발해 제석봉 밑의 전망대에 올랐다. 날씨가 워낙 춥고 바람이 세게 불었는데, 바로 그 때문에 맑고 투명해서 사진 찍기에는 최적이다. 다음 날부터는 날씨는 조금 풀렸지만 천왕봉이 구름에 가렸는데, 하늘은 두 가지를 모두 주지는 않는 모양이다. 7시36분쯤에 일출이 있어 그 장면은 물론이고 주능선과 서북능선을 잘 찍을 수 있었다. 후에 카메라 기자가 새끼손가락 하나가 동상에 걸려 일시적으로 감각을 잃었다.

늦은 편이었기 때문인지 천왕봉 정상에는 아무도 없었다. 지리산에 12차례 올랐다는 남명 조식 선생은 천왕봉의 웅장함을 “쟁사두류산 천명유불명(爭似頭流山 天鳴猶不鳴, 어찌 하면 저 두류산처럼/ 하늘이 울어도 울리지 않을 수 있을까)”이라 표현했다. 천왕봉 정상에서 사방을 둘러보니 북쪽 구인월교에서 시작하는 서북능선이 서쪽의 노고단에서 점을 찍고, 동쪽 방향으로 주능선이 달려오고, 그리고 동북 방향으로 중봉과 하봉을 거쳐 두류봉에서 방향을 바꿔 동남 방향으로 달려 동쪽에 웅석봉이 정좌하고 이어서 남쪽 방향으로 덕천강으로 내려서는 태극 문양이 한눈에 들어왔다. 천왕봉에서 가장 선명하게 볼 수 있는 동남 방향 태극 문양의 끝은 남명의 산천재가 있는 덕천강 쪽이므로 여기가 태극종주의 원조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한편 정남쪽으로는 진주와 사천 앞바다까지 산줄기가 굽이굽이 이어진다.

천왕봉을 좀 지나 있는 중봉은 해발 1874m로 지리산 제2봉이다. 중봉에서는 천왕봉의 다른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중봉을 지난 다음부터는 비탐방 구간이다. 하봉을 거쳐 두류봉 바로 직전에 있는 국골4거리에서 오른쪽 급경사로 내려가야 한다. 태극종주 전체 코스 중에서 하이라이트였다고 할 수 있겠다.

사흘째 밤은 밤머리재 밑 농원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4일차인 25일에는 아침 8시에 윗새재마을에서 출발했다. 밤머리재까지 가는데 길 안쪽으로 들어온 성가신 나뭇가지들을 제치면서 걸어야 하는 부담이 있었다. 중간에 지나게 되는 왕등재 습지는 해발 967~970m 높이에 있는 고산습지다. 동남능선 구간에는 가락국 마지막 임금인 구형왕과 관련된 명칭이 많다. 뾰족 솟은 도토리봉이 앞에 보이지만 몇 번인가를 작은 봉우리에 속아야 한다. 다산이 일곱 살에 썼다는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린다(小山蔽大山)’를 절감하게 된다.

도토리봉을 넘어 급경사로 떨어져 밤머리재에 도착하니 1시다. 폐버스를 이용한 매점에서 컵라면 등으로 요기를 하고 웅석봉으로 향했다. 밤머리재부터는 일반인에게 허용된 탐방로다. 산행로가 잘 정비되어 있고 길 안내판이 적절하게 설치되어 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적다. 꾸준히 오르막을 올라 웅석봉 정상에 닿으니 3시30분가량 되었다.

태극종주를 마치면서 우리 민족과 사회 구성원 모두 수긍할 수 있는 통합된 태극의 가치는 무엇일까. 전쟁이 아니라 평화, 생태와 환경의 파괴가 아닌 공존, 경쟁에 의한 차별이 아닌 약자를 배려하는 인간에 대한 예의, 그리고 변칙과 탈법이 아닌 정의와 공정 이런 것들이 아닐까.

동양에서는 보름달에 토끼가 살고 있는 것으로 본다. 이는 불법수호신인 제석천(帝釋天)에게 소신공양(燒身供養)한 토끼에 대한 인도의 부처 전생 설화에 기원한다. 종주하는 기간 동안 둥근달을 보며 힘들게 걸으면서 ‘내 한 몸 수고롭게 해서 자연과 세상이 나아질 수 있다면’이라는 자세를 가다듬었다.



김선수(50) 변호사는
▶사법시험 27회 ^청와대 사법개혁비서관(2005년 1월~2007년 3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회장(2010년 5월~현재). yeominlaw@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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