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壽와 福의 현란한 변주, 행복을 부르는 백수백복도

전시장 벽면을 가득 메운 것들이 글씨라는 걸 깨닫는 데는 약간의 시간이 걸린다. 첫눈에는 그림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같은 것 하나 없이 모두 다른 이미지들이다. 활짝 웃거나 노려보는 듯한 사람의 얼굴이 보이는가 하면 열대의 고사릿과 식물 같은 형상도 있다. 발이 여럿 달린 곤충이 기어가는가 하면 냇물이 흐르기도 한다. T셔츠도 있고 고대풍의 도자기도 보인다. 그림들이 모두 한자(漢字)며 그것도 단 두 가지 글자, 수(壽) 자와 복(福) 자라는 것까지 알아차리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걸린다. 경기도 파주시 예술마을 헤이리 북하우스 갤러리 한길에서 2월 말까지 열리는 『박원규 서예를 말하다』 출간 기념 기획전 풍경이다.

서예작가 박원규 기획전 한 글자 중 한 획은 붉은색

일반 대중은 서예가 하석 박원규(63)를 잘 모른다. 예술 장르로서 서예가 우리 사회에서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서예의 복원을 위해 노력해 왔고 40년에 걸친 정진은 큰 업적을 남겼다. 하석은 1984년 『계해집』을 시작으로 총 25권의 작품집을 출간했으며 1985년에 펴낸 『마왕퇴백서노자임본』은 미국 하버드대 도서관에 소장돼 있다. 다섯 차례의 대형 개인전을 열었으며 99년에는 서예전문잡지 『까마』를 창간하기도 했다.

그가 글씨를 탐구하는 모습은 수도승 같다. 여름과 겨울엔 방문을 걸어 잠그고 오직 작품에 몰두한다. 사람도 만나지 않고 전화선도 빼놓는다. 승려가 하안거, 동안거 기간 용맹정진하는 것과 다름없다. 창작하는 태도에 대해 그는 “단 한 작품을 통해 작가로서 걸어온 모든 것이 드러나게 된다”며 “나는 일필휘지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석은 개인전에 입장료를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전시회에서는 대표작을 두루 볼 수 있다. 박원규의 작품은 일반적인 서예 작품에 익숙한 눈에는 파격적이다. 전통을 지키면서도 현대적 감각을 살린 작품들은 현대회화를 보는 듯 신선하다. 특히 고대문자인 갑골문과 금석문을 형상화한 작품들은 그의 작품들 중에서도 핵심적이다. 갤러리 한길의 가장 높은 전시실에서 만나게 되는 壽와 福의 현란한 변주도 첫 눈엔 장난스러운 그림 같지만 사실은 이끼 낀 고대의 비석에서 발견되는 글씨들이다.

옛 조상들은 수자와 복자를 반복적으로 쓴 글씨, 즉 백수백복도(百壽百福圖)를 족자나 병풍으로 만들어 내실과 사랑방에 걸었다. 창덕궁 소장 유물로 전하고 있는 백수백복도 병풍은 수 자 180자, 복 자 180자를 다양한 색상과 모양의 전서체로 도안하여 수를 놓은 것이다. 여기서 ‘百’은 ‘많다’는 뜻으로 새겨야 될 것이다. 이런 병풍은 십장생도와 더불어 조선조 왕가와 양반가에서 장수와 행운을 기원하는 장식품으로 쓰였다. 제작할 때 수 자와 복 자를 교대로 배열하였으며 단순성을 피하기 위해 같은 글자라도 획수를 달리해 최대한 회화성을 추구했다.

박원규의 백수백복 글씨들은 전통을 따랐지만 현대적이다. 고대의 글씨인데도 어린이의 그림을 닮았다. 먹빛의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한 글자에 한 획은 붉은 색을 사용한 것도 재미있다. 북쪽으로 나들이를 한다면 헤이리에 들러 서예 대가의 壽·福·壽·福·壽·福…을 하나씩 뜯어보며 새해 설계를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독자 여러분 새해 건강하고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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