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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폭설 왔다, 30분 안에 비행기 띄운다

지난해 12월 30일 인천공항 활주로에서 제설차들이 지난 밤 내린 눈을 치우고 있다. 신인섭 기자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전원 비상”
12월 30일 0:00 AM

이용객 연 3000만 명, 공항 평가 세계 1위 인천공항 연말 르포

자정을 전후해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다섯 명씩 4조 3교대로 24시간 근무하는 계류관제팀에도 비상이 걸렸다. 제설차와 디아이싱 장비들이 모두 대기 상태에 들어갔다. 인천국제공항공사 계류관제팀 김필연(47·사진) 팀장 역시 기상 상태와 항공기 스케줄을 확인하느라 분주하다. 오늘도 긴 밤이 될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이날 집에 못 들어갔다. 사나흘씩 귀가 못하는 날도 꽤 된다. 눈 때문이다. 눈은 공항 운영에 가장 큰 적이다.

김 팀장의 역할은 항공기의 지상 이동을 관리하는 것이다. 하늘에서 활주로까지는 주관제탑에서 유도하지만 일단 땅에 닿으면 계류관제팀이 넘겨받는다. 무선으로 조종사들에게 이용할 길을 지정해 준다. 인천공항에서만 하루 평균 700여 대를 유도한다.

공군 관제 담당 부사관으로 강릉비행장에서 일하던 김 팀장은 1990년 전역한 뒤 김포공항 관제탑에서 일했다. 인천공항이 문을 열면서 새로 생긴 지상관제 업무를 담당해 벌써 10년째다.
“2008년 폭설 때 호된 경험을 했습니다. 눈이 오면 비행기가 뜨기 직전에 눈을 제거하는 ‘디아이싱’을 거쳐야 합니다. 작업장에 비행기들이 몰리면서 서로 엉켜서 4~5시간 동안 꼼짝을 못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대책을 마련했다. 눈을 치우는 공항공사 제설팀, 디아이싱을 맡는 지상조업사와 핫라인을 열었다. 분기별로 모여 비상 시나리오도 만들었다. 온라인으로 어느 비행기가 어디로 움직이고 있는지 실시간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도 가동했다. 정보 공유 덕에 병목이 없어졌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기상 관측 이래 최대인 25㎝의 폭설이 내린 지난해 1월 4일. 80여 편이 지연되긴 했지만 인천공항은 비교적 정상적으로 운영됐다. 결항된 14편도 중국 옌타이공항의 폐쇄 때문이었다.
 
활주로는 30분 만에 열렸다
12월 30일 3:00 AM
눈발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적설량은 9㎝. KR산업 인천공항관리단 임혁준(56·사진) 단장도 바빠지기 시작했다. KR산업은 고속도로관리공단이 민영화된 도로 유지관리 전문업체다. 임 단장은 제설차 31대를 총동원해 눈 치우기에 나섰다. 차량 앞에 달린 블레이드로 밀어내고 남은 눈을 브러시로 쓸어버린다. 나머지는 송풍기로 날린다. 제설차에는 세 가지 장비가 달려 있어 단번에 폭 4~5m씩 눈을 치운다. 우선순위는 활주로 청소. 제설차 7대가 쐐기 모양으로 나란히 달리며 활주로 옆으로 눈을 밀어낸다. 임 단장은 “30분이면 항공기 이착륙에 지장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활주로와 이어지는 유도로, 항공기가 서 있는 계류장까지 제설작업을 마치는 데 8시간 정도 걸린다”고 설명했다.

인천공항관리단 직원 60명은 겨울을 제외한 때에는 도로 포장, 보수, 차선 그리기 등의 작업을 할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다. 겨울이면 제설작업에 모두 투입된다. 공항에 눈이 쌓이면 활주로조차 잘 구별되지 않는 허허벌판이 된다. 군데군데 표시등과 표지봉을 보고 길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겨울이 다가오면 전원이 도상 연습부터 한다. 어느 길로 접근해 어디부터 먼저 치울지, 눈을 감고도 할 수 있을 만큼 준비하지 않으면 현장에서 허둥거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육사를 나와 공병장교로 근무하던 임 단장은 중령으로 예편해 고속도로관리공단에 들어갔다.

2006년 인천공항 유지보수 담당으로 부임했다. 이번 연말에도 어김없이 사흘째 비상 대기다. 아예 상황실에 간이침대를 가져다 놨다. 그는 “최근 제설장비를 신형으로 교체해 눈이 50㎝ 쌓여도 문제 없이 처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제설 작업이 진행되면서 새벽부터 항공기 이륙이 재개됐다. 밤사이 짐을 가득 실은 화물기들이다. 오전 6시면 여객기들도 운항을 시작한다. 임 단장은 “공항을 찾는 승객들이 눈을 치우지 못해 기다리는 경우는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오늘도 수출 화물 이상 없다”
12월 30일 6:00 AM
활주로 옆 대한항공 화물청사는 해가 지면 더 북적인다. 화물기는 여객기 이착륙이 드문 시간을 활용해 주로 운항한다. 그래서 짐을 싣고 내리는 작업은 대부분 밤에 이뤄진다. 이 회사 수출화물팀의 정영호(46·사진) 과장은 보통 오후 3시에 출근한다. 그는 화물 운송의 꽃으로 불리는 로드마스터(탑재관리사)다. 10여 명의 직원들을 지휘해 화물을 비행기 안에 차곡차곡 쌓는다. 인하공전 항공경영학과를 나온 정 과장은 87년 대한항공에 입사했다. 처음에는 객실 승무원을 생각했는데 창고관리업무 쪽으로 발령이 났다. 이왕이면 화물 전문가가 돼야겠다는 생각에 로드마스터로 방향을 잡았다. 92년부터 시작했으니 현장 경력만 19년째다.

“보잉 747 화물기에는 100t 정도 실을 수 있습니다. 가로 3m, 세로 2.5m짜리 화물받침대(팔레트) 30개가 들어가는데 목적지와 무게에 따라 어느 위치에 놓을지 결정해야 합니다. 무게 중심을 잡는 것도 중요합니다. 화물기 정중앙보다 조금 뒤쪽에 무게 중심이 있어야 연료도 적게 들고 안정적입니다.”

인천공항 화물터미널은 폭 105m에 길이가 420m다. 축구장 여덟 개가 나란히 들어가는 크기다. 7층 건물 높이의 터미널 내부에는 1000여t의 화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오늘 밤 다 실어 보내야 한다. 터미널 한쪽에는 트럭 적재함과 바로 연결되는 하차대가 100여 개 있다. 반대쪽은 계류장과 바로 연결된다. 지붕은 있지만 드나드는 통로가 많다 보니 찬 바람이 칼날처럼 몰아친다.

정 과장은 “항공 화물은 고가품이 많아 경제상황을 가장 민감하게 반영한다”고 말했다. 요즘은 중국에서 인천을 거쳐 미국과 유럽으로 가는 화물이 절반에 가깝다. 시대별로도 화물 내용이 변한다. 그는 “김포공항 시절에는 미국행 가발과 일본으로 가는 송이버섯이 주요 수출품이었는데 2000년대 PC를 거쳐 요즘은 휴대전화·LCD TV·자동차 부품 등이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유럽으로 가는 화물기가 무사히 출발하면서 정 과장의 일은 마무리됐다. 눈 때문에 노심초사했는데 다행히 늦지 않게 이륙했다. 그는 “맡은 화물기가 일찍 이륙하면 오전 2시10분 마지막 퇴근버스를 탈 수 있지만 대부분 새벽 첫차를 타게 된다”며 “밤샘 작업이 많다 보니 건강을 챙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한항공은 2004년 독일 루프트한자로부터 화물 분야 1위를 넘겨받은 뒤 지난해까지 6년 연속 선두를 지켰다. 올해도 수성이 확실하다. 이 회사의 강점은 다양한 노선. 화물칸에 42개의 컨테이너를 실을 수 있는 보잉 777 여객기의 경우 승객들의 짐은 10개 정도면 충분하다. 여객기 노선이 많을수록 화물의 경쟁력도 강해지는 것이다.
 
눈 털고, 얼음 녹이고 “이륙 준비 완료”
12월 30일 9:00 AM
한국공항(KAS) 김판규(41·사진) 감독은 해가 떠오른 후에야 한숨을 돌렸다. 밤새도록 항공기 동체와 날개에 붙은 눈·얼음을 털어내는 디아이싱 작업에 매달렸던 그다. 대한항공의 지상조업을 맡고 있는 KAS는 인천공항에 9대의 디아이싱 장비를 갖추고 있다. 장비마다 운전·조작·유도 역할을 하는 3인 1조로 움직인다. 이날 디아이싱 팀이 밤새도록 처리한 항공기는 42대. 평소라면 대당 5~10분이면 충분한데 이날은 세 배 이상 걸렸다. 김 감독은 “항공기가 이륙하기 직전에 디아이싱을 해야 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한눈을 팔면 출발이 줄줄이 늦어진다”며 “특히 오늘처럼 눈이라도 내리면 화장실 갈 틈도 없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97년부터 13년째 디아이싱을 맡고 있는 전문가다. 그는 “겨울에는 비번일 때도 시간마다 일기 예보를 챙길 정도라 휴가 한 번 제대로 갈 수 없다”며 “가족들에게 가장 미안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20년 후 ‘승객 1억 명, 화물 1000만t’ 야심
인천공항은 지난해 6월 2단계 공사를 마무리했다. 2001년 여객터미널과 동쪽 활주로 두 개로 문을 연 지 7년 만에 서쪽에 활주로 하나를 추가하고 탑승동도 하나 추가했다. 연간 4400만 명의 승객과 450만t의 화물을 처리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인천공항공사 공항건설단 이상규(51) 단장은 “항공 수요가 빠른 속도로 늘고 있어 5~6년 뒤에는 포화상태에 달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3단계 확장을 준비하는 이유다. 20년 후 우리나라의 항공 수요는 여객 9900만 명, 화물 800만t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단장은 “공항건설단은 2020년을 사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공사에 7~8년씩 걸려 앞을 내다보고 꾸준히 투자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천공항 공사가 지연되면서 김포공항이 포화 상태에 달한 97년에는 성수기면 탑승 수속에만 2~3시간씩 걸렸다. 탑승객들이 여객청사 안에 빙빙 돌아서 줄을 설 정도였다. 현재 동아시아에서는 허브공항 자리를 놓고 경쟁이 치열하다.

중국 베이징공항은 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여객 처리 능력을 연간 7800만 명으로 확장했다. 벌써 이용객이 연간 6500만 명을 넘어서 5년 뒤까지 수용 인원을 9500만 명 수준으로 늘릴 예정이다. 상하이 푸둥공항은 이용객이 연간 3200만 명 수준인데도 현재 6000만 명인 처리 능력을 2015년까지 8000만 명으로 늘리겠다고 나섰다. 인천공항은 3단계 확장 공사가 이뤄져야 수용 인원이 6200만 명 수준으로 늘어난다.

하지만 인천공항의 경쟁력은 수준급이다. 세계 공항평가에서 5년 연속 1위다. 윤영표 영업본부장은 “인천공항은 하루가 25시”라고 말했다. 최근 모바일로 체크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공항버스나 철도를 타고 오면서 스마트폰으로 탑승 수속을 하고 좌석까지 배정받을 수 있다. 공항 키오스크에서 탑승권만 받으면 되기 때문에 15분이면 수속을 마칠 수 있다. 경쟁 공항에 비해 한 시간을 더 활용할 수 있으니 이용객에게는 하루가 25시간이라는 것이 윤 본부장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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