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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모르면 늙어서 불행 … 투자 전에 금융 주치의 진단부터 받아라”

1140조원. 지난해 말 현재 국내 거래소(유가증권) 시장의 시가총액이다. 주가는 그 나라 경제실력의 바로미터다. 그 주가와 직접 관련 있는 곳이 금융투자협회다. 증권업협회ㆍ자산운용협회ㆍ선물협회 등이 모여 2009년 2월 출범했다. 수장인 황건호(60) 회장은 2004년 업계에서는 처음으로 경선을 통해 증권업협회장이 됐다. 사실상 7년째 자본시장을 맡고 있는 셈이다. 그 사이 500선에도 못 미치던 코스피 지수는 2000선을 돌파했다. 8조원에 불과하던 주식형 펀드 시장은 100조원을 웃돈다. 전체 수익의 70%에 달하던 증권사의 주식매매수수료(브로커리지) 수익은 절반 밑으로 떨어졌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 서 있는 황 회장을 최근 만났다. ‘주가 2000 시대’를 맞아 그로부터 새해 시장 전망과 자본시장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신묘년 재테크, 황건호 금융투자협회장에게 듣는다

요즘 시장 분위기는 ‘이보다 좋을 순 없다’. 지난해 말 코스피 지수는 2051포인트로 거래를 마쳤다. 지난해 연중 최고가인 동시에 3년2개월여 만에 최고치였다. 시장에는 낙관론이 넘쳐난다. 대부분의 증권사들이 올해에는 2400포인트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한다.

-30여 년간 증시에 몸담았다. 올해 시장을 진단해 달라.
“지난해 초엔 ‘안 좋다’가 대세였다. 경기가 딱히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2009년에 이미 많이 올라 주가가 부담스러운 수준이기도 했다. 그런데 시장이 예상과 달리 가니까 하반기부터 낙관론자가 늘어나더라. 나는 지난해 초부터 시장이 좋을 것으로 봤다. 올해도 괜찮을 것 같다.”

-금융투자협회장이니 당연히 좋다고 보는 것 아닌가. 그간 전망 적중률은 어땠나.
“타율을 계산해 보지는 않았지만 큰 흐름은 대강 맞았다. 지금 시장엔 글로벌 저금리 기조에 돈이 넘쳐난다. 지난번 출장 갔다가 홍콩에서 투자자들을 만났는데 다들 한국 시장을 좋게 보더라. 그런데 코스피 지수가 1900을 돌파하고부터는 흐름이 너무 빠르다. 내가 주식시장에 몸담은 지 30년이 넘었다. 직감적· 본능적으로 안다. 속도가 빠르다. 지나친 속도는 부담이 될 수 있다. 우리 경제는 소규모 개방 경제다. 유럽 쪽 재정 위기가 심각해지는 등 글로벌 상황이 변하면 우리 시장이 예상 외로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중국도 지급준비율만 손대다 얼마 전(지난해 12월 25일) 금리를 올렸다. 중국 긴축에 따른 여파도 고려해야 한다.”

-낙관론이 넘쳐나서인지 상대적으로 비관론 쪽으로 기운 듯 들린다.
“아니다. 속도가 문제라는 얘기다. 여건은 좋다. 무엇보다 기업 실적이 좋다. 지난해 상반기만 봐도 상장사들의 수익이 급증했다.”
증권정보 제공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주요 500여 개 상장기업의 지난해 예상 매출액 합계는 1106조원이었다. 지난해(960조원)보다 16% 늘어난 규모다. 영업이익도 지난해보다 50% 늘어난 93조원으로 집계됐다.

황 회장은 기업 실적 이외에도 ‘유동성’을 덧붙였다. 전 세계에 풀린 돈이 이머징 시장의 견인차인 아시아로 몰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저명한 역사학자인 폴 케네디 미국 예일대 교수가 쓴 『강대국의 흥망』을 언급했다. 이 책은 1988년 뉴욕타임스 선정 최우수 도서다. 케네디 교수는 이 책에서 지난 5세기 동안 전개됐던 강대국들의 흥망성쇠가 그들의 경제력과 군사력의 변화에 의해 좌우돼 왔다고 진단했다. 아울러 21세기에는 미국ㆍ소련ㆍ서유럽 등이 쇠퇴하고 중국 등 아시아 강국이 부상할 것으로 전망했다. 20여 년 전의 예측이 그대로 들어맞았다. 황 회장은 “아시아로 돈이 몰리는 분위기가 급작스럽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7년 지수 2000선 첫 돌파의 일등공신인 펀드가 요즘 맥을 못 추고 있다.
“일부 자금이 빠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과거와는 다르다. 우리 투자 문화가 바뀌었고, 바뀌고 있는 중이다. 장기ㆍ간접ㆍ분산투자 문화가 정착돼 가고 있다. 2004년까지만 해도 세계에서 우리만큼 변동성이 큰 시장이 없었다. 그런데 최근엔 펀드에서 20조~30조원이 빠져도 시장이 괜찮다. 생각해 봐라. 2004년 8조원이던 주식형 펀드 규모가 100조원이 넘는다. 한때 140조원까지 갔다. 펀드에 실망해서 떠나는 돈이 다른 데로 가는 것도 아니다. 랩이나 CMA(종합자산관리계좌) 등 형태로 시장 안에 머문다. 시장이 급격히 컸던 만큼 자연스럽게 나타난 현상이다. 협회는 장기투자문화 정착을 위해 주식 장기저축 운동, 10주 갖기 운동, 적립식 투자 캠페인 등을 벌여 투자문화를 바꿔왔다.”

펀드의 빈 자리를 메워준 것은 외국인이다. 외국인은 2009년 거래소 시장에서 연간 규모로는 사상 최대치인 32조원어치 주식을 사들였다. 지난해에도 순매수 규조가 22조원에 육박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바닥을 찍었던 증시를 2000선까지 밀어 올린 세력은 외국인이었다는 의미다.

-외국인이 팔면 시장이 고꾸라지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90년대 말 구제금융 사태를 겪고 나서 우리는 자본시장 문을 다 열었다. 초기엔 시장 구조가 불안한데 개방이 돼 있으니 외국인에 휘둘렸다. 지금은 시장 구조가 변했다.”

‘외국인에게 휘둘리지 않는다’는 게 황 회장의 생각이지만 현실은 조금 다르다. 지난해 11월 11일, ‘옵션쇼크’ 사태로 시장은 몸살을 앓았다. 옵션만기일이던 이날, 장 종료 10분간 2조4000억원에 달하는 차익거래(현물과 선물의 가격 차이를 이용한 매매로 수익을 보는 것) 매도 물량이 쏟아졌다. 당일 거래의 25%를 웃도는 매물 폭탄이었다. 2조4000억원 가운데 2조3000억원이 도이치증권 창구를 통해 나왔다. 이 물량에 보합세를 유지하던 코스피 지수는 10분 만에 48포인트나 급락했다. 금융당국은 원인이 된 세력을 찾아 홍콩에까지 조사 인력을 보냈지만 책임 소재를 찾아 규제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11ㆍ11 옵션쇼크’ 사태에 대한 평가는.
“그날 사태가 일어나기 전부터 옵션 차익거래 시장을 눈여겨 보고 있었다. 쇼크가 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모니터링을 강조한다. 시장을 모니터링해 보면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해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 차익거래에 세금을 부과하면서 옵션 시장에서 기관들이 모두 빠져나갔다. 그러니 옵션 시장에 외국인과 개인만 남았다. 자금력이 있는 외국인들에 의해 시장이 좌우될 수밖에 없다.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소지가 다분했다.”

지난해 금융당국은 공모펀드에 0.3% 거래세를 도입했다. 현ㆍ선물의 가격차를 이용하는 차익거래 시장에서 기관이 먹을 수 있는 수익은 기껏해야 0.1% 수준이다. 세금을 내고 나면 오히려 손해를 보게 되자 기관이 차익거래에서 손을 뗐다. 반면 달러를 환전해 투자하는 외국인은 환차익 요인이 있기 때문에 거래세 부담을 극복할 여력이 있다. 2009년 9%에 불과하던 차익거래 시장에서 외국인 비중은 지난해 50% 가까이로 늘었다.

“이렇게 접근하면 문제의 근본 원인이 뭔지 알 수 있다. 결국 시장 세력 가운데 한 축이 무너지면서 문제가 된 거다. 내가 강조하는 게 통합감독체계다. 예를 들어 외환 관리라고 하면 한국은행이나 정부 부처별로 따로 하는 게 아니라 통합해서 해야 한다. 감독당국의 규제는 거시건전성 측면에서 해야 한다. 철저한 모니터링과 국제 공조를 통해 쏠림 현상을 막아야 한다.”

협회는 내년도 중점 추진 과제로 기업금융 활성화, 퇴직연금 활성화 등을 정했다. 기업금융 활성화는 국내 금융산업의 오래된 숙제다. 특히 90년대 말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은 뒤, 은행권은 개인 중심으로 영업활동을 펼쳤다. 그 결과 가계부채가 지난해 9월 말 현재 900조원에 육박하고, 이 중 부동산담보대출만 350조원에 달한다. 연간 가처분 소득에서 부채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9년 기준으로 153%에 달한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 가운데 영국(161%)ㆍ호주(155%) 다음으로 높다.

-협회가 기업금융 활성화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프리본드 시장 개설과 프리보드 활성화다. 프리본드는 적격기관투자가(QIB)를 대상으로 한 채권시장이다. QIB제도는 채권이나 주식관련채권(CBㆍBW)을 발행할 때 공시의무를 완화해 주는 대신에 발행 이후에는 QIB들 사이에서만 거래하도록 하는 제도다. 현재 등록된 벤처기업만 2만4000개다. 그런데 상장된 기업은 300개도 안 된다. 나머지 기업들은 기술력이 있어도 자금 조달이 어려워 애를 먹는다. 이런 기업과 투자자들을 연결해 주면 기업에도 투자자들에게도 이익 아니냐. 벤처 생태계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 프리보드는 현재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현행 상대매매 방식을 바꿔 경쟁매매 제도를 도입해 시장을 활성화하겠다.”

상대매매는 쌍방이 1대1로 협의해 수량ㆍ가격ㆍ결제방식을 정하여 행하는 거래다. 직접매매라고도 부른다. 서로 원하는 조건이 들어맞아야 거래가 이뤄지기 때문에 매매 체결 가능성이 작다. 시장 유동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반면 경쟁매매는 현재 주식을 사고팔 때의 방식을 떠올리면 된다. 매도 측과 매수 측이 여럿 모여서 가격경쟁을 한다. 거래가 활발하다. 그러나 경쟁매매 방식의 주식 거래는 현재 법상으로 한국거래소(KRX)만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황 회장은 “세계 어느 나라에 그런 법이 있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면에는 코스닥 시장을 거래소에 뺏겼던 아픔도 있다. 2005년 통합거래소가 출범하면서 당시 증권업협회 소속이던 코스닥 시장
은 거래소로 이전됐다.

-프리보드에 경쟁매매 방식을 도입하면 그건 거래소나 코스닥 시장과 같은 거 아니냐.
“유사거래소 금지 조항을 바꿔야 한다. 프리보드에도 경쟁매매 방식을 도입하고, 거래소 수준으로 양도세 비과세 및 증권거래세 인하 등 혜택을 줘야 한다. 정책자금을 지원할 때 프리보드 기업에 대한 혜택도 주고. 금융당국과 얘기 중이다. 올 초까지 자본시장법 등을 개정해서 하반기에 새로운 프리보드 시장으로 출범하는 게 목표다.”

환갑을 맞은 자신에게 당장 닥친 문제라서인지 황 회장은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문제와 그 대책에 관심이 많았다.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20년’의 침체에 빠진 건 일차적으로는 80년대 말 버블이 터지면서 나타난 후유증 때문이지만, 인구 고령화와 맞물려 있다고 그는 해석한다. 이때를 기준으로 일본 인구는 급속하게 노령화됐다. 노령화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자산운용이다. 자산을 잘 굴려야 노후 대비를 수월하게 할 수 있다. 그래서 자산운용 수익을 높이기 위해 연기금과 퇴직연금을 적극적으로 주식에 투자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재 퇴직연금 제도 운영에 문제가 있다고 보나. 활성화해야 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퇴직연금이 발달한 호주와 칠레를 보면 소득 대체율이 70%에 이른다. 65세 이상 노인에게 지하철 공짜로 타게 해 주는 게 복지가 아니다. 열심히 일했다면 노후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복지다. 그러려면 지금처럼 퇴직연금 자산운용을 규제해서는 안 된다. 안정을 선호하는 확정급여(DB)형이야 그렇다 쳐도 확정기여(DC)형은 리스크를 지더라도 고수익을 올리고 싶은 이들이 선택한다. DC형에 대해선 주식이나 주식형 펀드 투자를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운용 규제를 풀어줘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퇴직연금으로 노후를 대비할 수 있도록 세제 혜택을 과감하게 줘야 한다. 퇴직연금 활성화는 선택적 복지의 핵심이다.”

황 회장은 대우증권에 있을 때 ‘국제통’으로 통했다. 1984년 외국인 전용 국내 투자 펀드인 코리아펀드를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시켰다. 그러나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금융산업은 ‘우물 안 개구리’ 수준이다.

-이제 ‘금융의 삼성전자’가 나와야 한다고들 한다. 금융 산업이 국제적 경쟁력을 가지려면 뭐가 필요한가.
“단기 업적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금융은 중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증권사가 브로커리지에 매달리는 것도 다 단기 성과주의에 함몰됐기 때문이다. 또 시장을 아는 전문가가 많이 나와야 한다. 그래서 협회도 영국ㆍ중국ㆍ홍콩ㆍ싱가포르의 유수 대학과 연계해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매년 20억원을 쓰고 있다.”

-투자자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최근 역사학자인 니얼 퍼거슨이 쓴 『금융의 지배』를 읽었다. 자본주의는 금융이 지배한다. 금융을 모르면 불이익을 당한다. 노령화 사회에서 금융을 잘 모르면 인생이 불행해질 수 있다. 이제는 의료 부문의 의사뿐 아니라 금융 주치의가 필요하다. 투자자들도 금융에 대해서 공부하고 똑똑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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