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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종교 성지를 가다 [하] 6대 종교 지도자들, 아시시·로마 순례





사랑하라, 포용하라 … 죽음과 부활의 현장에서 배우다



이탈리아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성당이 있는 곳은 900년 전에 처형장이었다. 프란체스코 성인은 자신을 그곳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골고타 언덕에서 최후를 맞은 예수의 생애를 좇고자 함이었다. 성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총본부도 이곳에 있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었다. 국내 6대 종교 지도자들이 9~16일 이웃종교 성지순례차 이스라엘과 로마를 방문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이광선 대표회장, 조계종 자승 총무원장, 천주교 주교회의 종교간대화위원장 김희중 대주교, 원불교 김주원 교정원장, 유교 최근덕 성균관장, 민족종교협의회 한양원 회장이 동참했다. 국내 종교계의 수장들이다. 이들은 함께 비행기를 타고, 버스를 타고, 한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고, 과일을 나눠 먹고, 온갖 종교적 문답을 주고 받으며 상대를 향해, 또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6대 종교 수장들이 이웃종교의 해외 성지순례에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14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버스를 타고 아시시로 갔다. 아시시는 가난의 영성으로 통하는 프란체스코 성인의 고향이다. 프란체스코는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로 시작하는 ‘평화의 기도’로 유명하다.



 멀리 산 위로 아시시 마을이 보였다. 아담하고 운치가 있었다. 프란체스코 성당은 높은 언덕 위에 솟구쳐 있었다. 프란체스코 당시, 그 언덕은 처형장이었다. 일거수일투족까지 예수의 생애를 좇으려 했던 프란체스코는 “내가 죽으면 그 처형장에 묻어달라”고 유언을 남겼다.



 이유가 있었다. 2000년 전, 예수는 가장 초라한 곳에 묻혔다. 예수가 십자가형을 당한 골고타 언덕은 당시 처형장이자, 공동묘지였다. 하나에서 열까지 예수를 좇았던 프란체스코는 육신의 무덤까지도 예수를 따르고자 했다. 그도 가장 초라한 곳에 묻히길 바랬다. 결국 아시시의 처형장에 묻혔고, 나중에 그 위에 프란체스코 성당이 세워졌다. 예수가 묻혔던 곳, 그 위에 그리스도교 최대 성지로 꼽히는 성묘교회가 세워져 있듯이 말이다.



  언덕길을 올라가 프란체스코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성당 지하에도 예배당이 있었다. 예배당 앞에는 프란체스코 성인의 유해가 담긴 석관(石棺)이 놓여 있었다. 멕시코에서 예비수녀 20여 명이 와 있었다. 예수의 길, 프란체스코의 길을 걷고자 하는 이들이었다.









성지순례를 함께한 민족종교협의회 한양원 회장, 한기총 이광선 대표회장, 유교 최근덕 성균관장, 천주교 김희중 대주교, 조계종 자승 총무원장, 원불교 김주원 교정원장(왼쪽부터).







 그들은 석관 앞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노래를 불렀다. 동굴 같은 지하 예배당에 노래가 퍼졌다. 그건 인간이 뽑아낼 수 있는 가장 낮고, 가장 아름다운 울림이었다.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라는 예수의 내맡김, 프란체스코의 내맡김이 그 안에 흘렀기 때문이다.



 한기총 이광선 대표회장은 “이스라엘 성지 순례는 여러 번 갔었지만 아시시는 처음”이라며 “프란체스코 성인의 숨결이 깃든 역사적 현장이라 그런지 이번 순례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소”라고 말했다.



 이튿날 6대 종교 지도자들은 바티칸 교황청으로 갔다. 성 베드로 성당 앞 광장에는 거대한 크리스마스 트리가 서 있었다. 교황청으로 들어간 6대 종교지도자들은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만났다. 교황은 매주 수요일 교황청 대강당에서 6000명의 사람을 단체로 만난다. 이번 만남은 한국에서 온 종교계 수장들을 위해 별도의 공간에서 마련된 특별 접견이었다. 교황 접견 후에 일행은 교황궁으로 갔다.



 김희중 대주교가 직접 안내를 했다. 성 베드로 성당 지하로 내려갔다. 좁은 통로와 계단을 따라 계속 밑으로 내려갔다. 성 베드로 성당의 위치가 베드로 당시에는 이방인의 묘지였다. 지금도 지하 묘역에는 돌로 만든 관과 가족 무덤 등이 즐비했다. 그곳에 사도 베드로의 무덤이 있었다.



 로마 시대, 벌거벗은 채 못 박혀 숨을 거둘 때까지 고통을 견뎌야 하는 십자가형은 굉장한 치욕이었다. 그래서 이방인의 몫이었다. 로마 시민권자는 참수형은 당해도 십자가형은 당하지 않았다. 베드로는 유대인이었다. 그도 십자가형을 당했다. 베드로는 “내가 어떻게 감히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십자가에 매달릴 수 있겠는가”라며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서 죽었다고 전해진다. 그렇게 순교한 베드로가 이곳에 묻혔다.



 예수는 베드로에게 말했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마태복음 16장18절) 그래서 가톨릭에선 사도 베드로를 ‘1대 교황’으로 삼는다. 그리고 그의 무덤 위에 교회를 세웠다. 그게 바로 성 베드로 성당이다.



 성당의 지하 묘역에는 베드로 사도의 무덤도 있었다. 일반 공개가 되지 않는 곳이었다. 6대 종교 지도자들은 지하 터널 같은 묘역을 돌고 돌아, 이날 특별히 공개된 베드로의 무덤 앞에 섰다. 저만치 앞쪽에 베드로의 것으로 전해지는 유해도 보였다.



 베드로의 무덤은 2000년 가까이 ‘물음표’였다. “이 아래 베드로의 무덤이 있다”는 기록만 있었다. 오랜 세월 교회는 그걸 믿었다. 그런데 1900년대 중반에 지하 묘역과 베드로 무덤이 있을 가능성이 확인됐다. 당시 교황청에선 발굴에 반대하는 이들이 다수였다. 발굴 후에 베드로의 무덤이 없을 경우, 성 베드로 성당의 정통성 시비 등 후폭풍이 거셀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당시 교황은 “사도 베드로의 무덤이 나와도 진실이고, 나오지 않아도 진실이다. 진실은 밝혀져야 하는 것”이라며 발굴을 명했다고 한다.



 참 묘했다. 예수의 무덤, 베드로의 무덤, 프란체스코의 무덤 위에는 모두 교회가 섰다. 거기에는 그리스도교의 핵심 코드가 담겨 있었다. 다름 아닌 ‘죽음과 부활’이다.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혔다. 베드로도 십자가에 거꾸로 못박혔다. 프란체스코는 44세에 숨을 거두었다. 죽기 2년 전에 그의 몸에는 오상(五傷)이 나타났다고 한다. 두 손과 두 발, 그리고 창에 찔린 옆구리.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입은 다섯 상처다. 그건 온전한 자기 부인(죽음)과 그리스도의 생명(부활)을 뜻했다.



 6대 종교 지도자들은 각자의 종교를 통해 그 의미를 되새겼다. 나가 없다는 불교의 ‘무아(無我)’, 테두리 없는 무한한 진리를 뜻하는 원불교의 ‘일원(一圓)’, 하늘의 마음을 따르는 유교의 ‘종심(從心)’, 수행을 잘하면 살아서도 죽어서도 본래 자리로 돌아간다는 민족종교의 ‘수행(修行)’ 등 언어와 문법은 달라도 맥이 통하는 접점이 있었다.



 원불교 김주원 교정원장은 “모든 종교가 이름은 달라도 한집안이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유교 최근덕 성균관장은 “그래서 다름이 아름답다”고 말했다. 그 길 위에서 종교계 수장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로마·아시시=글·사진 백성호 기자



◆성 프란체스코(1182~1226)=이탈리아 아시시에서 대부호의 아들로 태어났다. 십자군 전쟁에 참가했다가 삶에 회의를 느끼고 수도자의 길을 택했다. 아버지로부터 받을 모든 재산과 몸에 걸친 옷가지까지 버리고 가난과 결혼했다. ‘가난의 영성’으로 통하는 그는 하나에서 열까지 예수의 생애를 좇으려 했고, 새와 늑대 등 자연과 대화를 나누었던 일화로도 유명하다.



토랑 교황청 추기경과의 대화



“다른 종교, 멀리 보면 두려워도 가까이 오면 나의 형제임을 알게 될 것”












6대 종교 지도자들은 15일 교황청의 종교간대화평의회 의장인 피에르 토랑 추기경을 만났다. 종교간 대화, 종교간 이해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했다. 이날 발언의 주요 요지다.



 ◆교황청 피에르 토랑 추기경=저 멀리 짐승이 한 마리 있다. 처음에는 큰 두려움을 갖는다. 저 짐승이 나를 공격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척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그런데 가까이 갈수록 저 동물이 공격적이지 않음을 보게 된다. 점점 가까이 가면서 그 동물이 나의 형제임을 알게 된다. 이것이 종교간 대화의 길이다.



 ◆한기총 이광선 대표회장=각각 다른 종교가 함께 성지순례를 하고 있는 뿌리는 일제강점기 때의 독립운동이다. 당시 모든 종교지도자가 독립을 위해 일했다. 지금도 한국의 종교지도자들은 그런 정신을 잇고자 한다.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한국에는 50개의 종교, 500여 개의 종파가 있다. 불교는 모든 종교와 상생(相生)을 원칙으로 한다. 종교간 화합을 위해선 말보다 행동이 일치돼야 한다. 세계 곳곳에서 환율 분쟁, 에너지 분쟁 등 숱한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 그중 우리가 해소할 수 있는 분쟁이 바로 종교 분쟁이다.



 ◆원불교 김주원 교정원장=원불교는 모든 종교가 ‘하나의 진리’라는 바탕에 있다고 본다. 모든 종교가 인류의 행복과 구원을 위해서 노력한다. 그걸 위해선 정치와 종교, 두 가지가 필요하다. 정치 지도자들이 세계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기구는 있다. 종교도 인류의 행복을 위해 힘을 모을 수 있는 세계적 기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유교 최근덕 성균관장=유교와 천주교 사이에는 불행한 과거가 엄연히 존재한다. 조상숭배…제례의식 등에 대해 상대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결국 갈등이 빚어졌고 순교자가 발생했다. 지금은 천주교 신부님 서너 명이 제게 와서 석·박사 학위를 받아갔다. 저는 종교간 평화를 이루는 것은 이해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민족종교협의회 한양원 회장=5대양 6대주가 알고 보면 한 형제, 한 집안이다. 종교도 마찬가지다. 상생(相生)과 평화를 도모하기 위해 그토록 많은 종교가 있는 거다.



로마=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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