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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배고팠던 꼬마, 제빵사 꿈에 한 걸음 더





요리대회 나온 춘천 조손가정 민수



29일 ‘리틀쉐프콘테스트’에 참석한 민수(10·가명·왼쪽)·현수(8·가명·왼쪽에서 셋째) 형제가 쿠키를 만들고 있다. [오종택 기자]





29일 오후 1시30분, 서울 중구 필동의 CJ인재원 지하 홀. 노란 앞치마를 두른 민수(10·가명)는 쿠키 만들기에 한창이었다. 색색의 아이싱(icing·제과류를 꾸미는 마무리 재료)을 담은 짤주머니를 요리조리 짜며 움직이자 민무늬 쿠키는 곧 자동차가 됐고, 고래가 됐다. 이날 이곳에선 CJ그룹 주최로 ‘리틀쉐프 콘테스트’가 열렸다. CJ그룹이 운영하는 온라인 기부프로그램인 ‘CJ도너스 캠프’는 올해 전국 2000여 개 공부방에 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했다. 그중 요리사를 꿈꾸는 60명의 아이들을 이날 초청한 것이다. 민수도 멀리 강원도 춘천에서 같은 공부방 동생 5명을 이끌고 참석했다. 그중엔 친동생 현수(8·가명)도 있었다.



 형제는 늘 고팠다. 배가 고팠고, 사랑이 고팠다. 현수가 갓 태어났을 때 부모님은 이혼했다. 그때 연락이 끊긴 엄마는 현재 생사조차 알 수 없다. 술을 좋아하던 아버지는 엄마가 떠난 뒤 더욱 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결국 아빠는 알코올 중독에 빠졌다.



 형제는 할머니와 살았다. 할머니는 올해 일흔한 살이다. 두 아이들 몫으로 매달 나오는 기초생활보장 수급금 40만원에 헌옷가지와 고물을 주워 판 돈으로 산다. 자식이 있다는 이유로 할머니는 수급 대상도 아니다. 형제는 밤에 할머니와 함께 고물을 주우러 다닌다. 할머니는 형제에게 엄격했다. ‘내가 죽으면 저것들은 어떻게 사나’라는 생각 때문에 형제들을 더욱 강하게 키우려고 했다.



 2008년 10월, 형제는 시민단체가 운영하는 춘천의 한 공부방을 처음 찾았다. 공부방 김민임 선생님은 그날을 기억하고 있다. 형제가 점심과 저녁 모두 각각 세 그릇씩 비웠기 때문이다. 형제는 참 많이 먹었다. 과자·빵 등 먹을거리가 앞에 있으면 일단 입에 모두 집어넣고 봤다. 고기 반찬이 나오면 친구들이 남긴 것까지 모두 먹었다. 그러다 체한 적도 여러 번이다. 외로움과 배고픔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식탐(食貪)으로 나타난 것이다.



 김 선생님은 “아이들이 심하게 체한 이후 안 되겠다 싶어서 양을 줄여 나갔다. 그래서 지금은 다른 아이들의 두 배만큼만 먹는다”고 말했다. 형제는 공부방의 다양한 수업 중 요리 수업에 특히 관심을 보였다. 둘 다 요리사가 되겠다는 꿈을 품게 됐다. 민수는 특히 빵과 쿠키 만들기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김 선생님은 “쿠키를 만들 때 민수의 얼굴에서 빛이 났다”고 말했다. 민수는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가족, 아는 사람과 나눠 먹는 게 꿈이다.



 어린 형제가 기특하게 꿈을 키워나가자 할머니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할머니는 지난해부터 매달 20만원을 받고 공부방에서 하루 2시간씩 청소일을 한다. 정부의 노인일자리 지원 혜택을 본 것이다. 할머니는 요즘 부쩍 너그러워졌다. 형제는 이제 “할머니가 무섭지 않다”고 말한다. 대회 출전을 앞두고 할머니는 민수에게 특별 요리 과외를 하기도 했다. 이날의 대회 과제는 샌드위치·주먹밥, 그리고 쿠키 만들기였다. 형제는 과제로 주어진 음식물을 열심히 만들었다. 형제가 속한 9번팀은 이날 12개 팀 중 2등을 했다.



 행사 말미, 60명의 아이들은 각자 소원도 적어냈다. “할머니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동생 현수는 ‘제빵사’라는 장래 희망 옆에 삐뚤삐뚤한 글씨로 이렇게 소원을 썼다.



글=송지혜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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