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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진실화해위원회’, 역사가 어떻게 평가할까





5년1개월의 활동 공식 종료돼
새 진실엔 숙연하게 대처하되
잘못된 결정이 있을 수 있다는
겸허한 마음을 가질 수 있어야



강규형
명지대 기록정보과학대학원 교수




2005년 12월 1일 출범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가 내일 5년1개월의 활동을 공식적으로 종료한다. 그간 1만1000여 건의 조사가 완료됐고, 그중 8500여 건이 ‘진실 규명’됐다. 출범 전부터 많은 논란을 일으켰고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는 험난한 위원회였지만, 위원회 구성원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임무를 완수하게 됐다. 새로운 사실도 많이 밝혔고, 새로운 자료도 많이 발굴했다. 이렇게 결실을 거두게 된 데에는 이영조 현 위원장과 안병욱 전 위원장의 균형감각과 전문성이 역할을 했다.



 한국 현대사는 많은 상처를 안고 있다. 그래서 ‘진실과 화해’를 통해 이런 상처를 보듬어야 했다. 많은 시행착오와 오류도 범했지만, 대다수 사건에 대해 위원들의 의견 일치가 있었다. 특히 6·25전쟁 전후 억울한 희생자들, 권위주의 정권하에서의 인권침해 사례에 대한 사실을 많이 밝혀냈다. 한국의 진실화해위는 정죄(定罪)를 목적으로 한 진실‘정의’위원회가 아니라 화해를 추구하는 남아프리카공화국 타입의 진실‘화해’위원회다. 그러나 현대사의 어두운 면을 밝히는 위원회의 진지한 노력을 오히려 갈등의 소지로 활용하려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시도는 위원회의 기본 목적과 부합하지 않는다. 그래도 민주화된 대한민국이니 이러한 정도의 과거사 정리가 가능했다.



 진실화해위 결정은 대부분 옳았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잘못된 결정도 했을 것이다. 틀린 결정이 없었다 하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실제로 군경에 의해 학살됐다고 엉터리로 조사된 사람 중 상당수가 실제로는 지방 좌익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판명된 고창 11사단 사건처럼 위원회 결정 내용이 잘못된 것으로 드러나 앞 결정을 취소하고 새로 결정문을 낸 경우도 있었다.



 냉전 종식 후 소련 문서와 동독의 슈타지(비밀경찰) 문서 등 공산권 기밀문서 공개로 냉전 시기에 대한 새로운 사실이 많이 드러났고, 우리가 알고 있었던 ‘진실’도 많이 뒤집혔다. 예를 들어, 매카시 광풍의 피해자이자 양심적 지식인으로 여겨졌던 미 국무부 고위 관료 앨저 히스(Alger Hiss)는 결국 소련의 1급 스파이임이 밝혀졌다. 오리무중이었던 김포공항 폭발사건(1986년 9월 14일)의 전말도 서울 아시안게임을 방해하기 위해 북한이 사주한 국제 청부 테러리스트 아부 니달(Abu Nidal) 그룹의 소행임이 최근에야 알려졌다. 결국 한국 현대사의 여러 ‘진실’들도 북한의 문서들이 공개되는 날까지는 잠정적인 결론일 수밖에 없다.



 진실화해위에서 아쉬운 점도 많았다. 4년여간 진보 성향 위원들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했고, 남은 1년여간은 보수 성향 위원들이 근소한 우위를 점했다. 의견 일치가 이루어지지 않는 건에 대해선 표결로 처리됐기에 위원회 구성에 따라 결정이 달라질 수 있었다. 그래서 어떤 진실은 단지 ‘투표된 진실(voted truth)’이었다는 문제가 있다. 현재의 기준을 가지고 기준이 달랐던 오래전 과거의 일을 재단하는 ‘소급(遡及)적 정의’가 적용된 경우도 있었다. 절박한 심정이야 이해되지만, 유관단체 구성원들이 때때로 격한 시위·농성·폭언을 통해 위원회 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자신들의 뜻을 관철하려 한 것도 유감이었다.



 일부 편향된 조사관들이 자기가 원하는 왜곡된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증거를 조작·은폐·왜곡·유출했고, 적법한 과정과 절차를 무시한 경우도 없지 않았음은 통탄(痛歎)할 일이다. 그것이 정의라는 착각을 가지고, 또한 “과거사는 거의 다 악이요 조작”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조사에 임하는 우(愚)를 범했다. 정치적 목적으로 ‘직업적으로’ 조사를 신청한 ‘운동가’들도 있었다. ‘문세광 저격사건’이나 ‘KAL기 폭파사건’의 수사 결과가 조작된 의혹이 있다는 황당한 이유로 조사를 신청했고, 위원회는 이런 터무니없는 건을 조사해서 아까운 국고를 낭비했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여러 결점 때문에 임무를 완수한 진실화해위 활동 전체를 매도·폄하할 수는 없다. 발굴된 기록들은 국가 안위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적법한 절차를 거쳐 공개돼야 할 것이다. 진실화해위의 결점 자체도 시대상을 반영하는 거울이고 과거사가 됐다. 밝혀진 사실들에 대해서는 숙연한 마음으로 대처해 나가야 하고, 위원회의 결정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는 결과의 가변성(可變性)에 대해 겸허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결국 진실화해위의 활동도 역사적 평가의 대상이 될 것이다.



강규형 명지대 기록정보과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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