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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밤의 총리’ 와타나베, 오자와 뺀 대연정 그림 그린다





“이대로 가면 일본호 침몰” … 민주당·자민당 대연립 전격 제안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오른쪽) 재임 당시 열린 한 만찬에 참석한 와타나베 쓰네오 요미우리그룹 회장(왼쪽). 정치부 말단기자로 시작한 월급쟁이 회장인 그는 ‘밤의 총리’라 불릴 만큼 일본 정치의 거물들과 두터운 인맥을 유지하며 정치적 고비마다 큰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지지통신 제공]





와타나베 쓰네오(渡邊恒雄·84). 그는 발행부수가 1000만 부(석간 포함 시 1400만 부)로 세계 최대인 일본 요미우리(讀賣)신문사 회장이다. 프로야구 구단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회장인 동시에 신문의 주필까지 맡고 있다. 오너는 아니다. 정치부 말단기자로 시작한 월급쟁이 회장이다. 하지만 그는 1991년 사장 취임 이후 20년 동안 요미우리 그룹을 상하좌우 휘어잡고 있는 실질적 오너와 같은 존재다.



그는 단순한 언론인이 아니다. ‘밤의 총리’라 불리며 일본 정국의 큰 고비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한다. 보통은 막후에서 움직이지만 필요에 따라선 과감하게 전면에 나선다. 그런 와타나베 회장이 최근 또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산케이(産經)신문은 27일 “민주당과 자민당을 포함한 ‘대연립 구상’이 부상하고 있다”며 “2007년에도 대연립을 추진했던 와타나베 회장이 배후에 있다”고 보도했다.









와타나베 회장(왼쪽에서 셋째)이 지난해 4월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왼쪽)와 함께 한 강연회장에 들어서고 있다. [지지통신 제공]



 ◆“민주-자민 손잡아라”=와타나베는 지난 8일 제1 야당인 자민당의 다니가키 사다카즈(谷垣禎一·65) 총재를 만났다.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가 국회 해산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고 시간만 지나간다. (추진) 과제를 추린 후 과감하게 대연립을 하라.” 와타나베는 집권당인 민주당을 몰아붙여 국회 해산을 유도, 총선거를 통해 재집권하려 하는 다니가키를 끈질기게 설득했다. 다니가키는 “민주당이 뭘 하려는지 잘 모르겠다. 간 총리도 신뢰 못하겠고…”라고 망설였다. 그러자 와타나베는 “그렇다면 연립은 딱 2년으로 한정하자. 그동안 소비세 인상, 헌법 개정 등 국가 중요 과제를 마무리하라. 그동안 당신은 부총리를 맡으라”고 제안했다. 경천동지할 깜짝 제안이었다.



 깜짝 놀란 다니가키는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를 자르지 못하는 민주당과는 함께할 수 없다”고 일단 버텼다고 한다. 회동은 그렇게 끝났다. 언뜻 보면 일과성 해프닝으로 끝난 듯하지만 ‘대연립 구상’은 아직 진행형이다. “민주당이 오자와 색깔만 벗는다면 민주-자민의 조합이 불가능하지만도 않다”(자민당 이시바 시게루 정조회장)와 같은 전향적 발언도 나오고 있다. 또한 현재 민주당이 오자와에게 국회 윤리심사회 출석을 종용하고,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출당’도 불사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는 것도 와타나베 회장이 주도하는 대연립 구상과 무관치 않다는 게 일 정치권의 분석이다.



 와타나베 회장이 대연립 추진에 나선 것은 “이대로 가다간 일본호가 침몰하고 만다”는 위기의식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한다. 현재 민주당은 중의원에서는 과반수를 차지하지만 참의원에서는 야당에 수적으로 밀리고 있다. 한마디로 이대로는 여야 간 정쟁으로 세월을 보낼 수밖에 없으니 민주당과 자민당이 정책연합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다. 그의 구상은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92) 전 총리와 교감을 거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9월 하토야마 유키오(오른쪽)가 총리에 취임한 직후 열린 만찬에 참석한 와타나베 회장. [지지통신 제공]



 ◆‘언론 정치인’의 새 유형 창출=와타나베 회장의 ‘대연립 구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7년에는 당시 여당이던 자민당의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총리와 제1야당의 오자와 대표 사이를 오가며 대연정 구상을 도모했다. 그때도 현재와 같이 야당이 참의원에서 다수를 점하고 있었다. 당시 자민당 최대 파벌의 수장이었던 모리 요시로(森喜朗) 전 총리는 최근 이렇게 회고했다. “오자와 대표는 적극적이었는데 와타나베 회장의 설득에도 후쿠다 총리가 좀처럼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계속해서 재촉하는 상황에서 시간만 흘러가자 중간에서 연결하던 와타나베 회장은 이렇게 화를 냈다. ‘내가 무슨 전화 교환원도 아니고…’. 그리고 내가 (와타나베 회장에게) 불려가 (메신저) 역할을 했다.” 당시 후쿠다 총리가 대연립 결단을 내렸지만 정작 오자와 대표가 당내 결속에 실패하는 바람에 대연립은 물 건너가고 말았지만 와타나베 회장의 막강한 영향력은 다시 한번 일본 정치권에 각인됐다. 이뿐 아니다. 2007년 9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총리직을 내던진 뒤 아소 다로(麻生太郞) 쪽으로 차기 총리를 옹립하려는 움직임이 보이자 즉각 자민당 내 각 파벌 수장을 불러들여 ‘후쿠다 차기 총리’ 쪽으로 흐름을 바꿔놓은 것도 바로 와타나베 회장이었다. 가토 고이치(加藤紘一) 전 간사장은 “말이 거칠고 독단적으로 보이긴 해도 정치적 센스로 따지면 누구도 따라 올 수 없을 정도의 정치력을 가졌다”고 평가했다. 와타나베 회장 입장에서 보면 “오자와도 어린애”라는 것이다. 물론 상식적으로는 “어떻게 공명정대해야 할 언론인이 정치판 거간꾼 노릇을 하느냐”는 비판이 일 만하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그런 움직임은 거의 없다. 초기에는 비판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를 ‘원로 언론 정치인’으로 대접하는 분위기다. 국민들의 가려운 곳을 가감 없이 정치권에 제대로 전달하고 반영할 수 있는 그만한 인물이 없다는 것이다.



 ◆지향점은 ‘열린 보수’=도쿄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요미우리신문사에 입사한 그는 자민당의 거물 오노 반보쿠(大野伴睦) 전 자민당 부총재를 취재하는 기자를 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그는 오노의 전폭적인 신뢰 속에 여러 정치적 협상을 심부름했고, 이 과정에서 나카소네 전 총리와 친분을 맺게 됐다. 오노 부총재에게 입김을 행사해 첫 입각을 노리던 나카소네에게 장관 자리를 차지하게 해 준 것도 ‘와타나베 기자’였다. 사내에서도 강력한 카리스마로 정치부의 영향력을 확대해나가 당시 ‘사회부의 요미우리’로 불리던 것을 ‘정치부의 요미우리’로 탈바꿈시켰다. 이 과정에서 자신에게 비우호적인 사회부 기자들을 가차없이 제거하기도 했다. 보수적인 언행으로 유명하지만 실제는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 등에 반대하는 ‘열린 보수’를 지향하고 있다. 그는 야스쿠니와 관련, “누가 일본 총리가 되건 야스쿠니를 참배 않는다는 약속을 해야만 한다. 만일 그렇지 않은 이가 총리가 되면 난 발행부수 1000만 부의 ‘요미우리신문’의 힘으로 그걸 무너뜨릴 것”이라고 호언한다. 치매에 걸린 부인에게 매일 아침 출근 전 키스를 잊지 않는 애처가이기도 하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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