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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삼만, 뱀을 잡을 신통력 서린 글씨’라고 미당은 진작 그를 알아봤다




이삼만의 ‘유수체(流水體)’를 잘 보여주는 ‘산광수색(山光水色글씨 오른쪽부터)’. 산의 빛과 물의 색이란 뜻으로 경치가 좋음을 말하는데 글씨 자체가 그 광경을 담고 있는 듯하다.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제공]


붓이 노래하고 먹이 춤춘다. 현대 미술의 눈으로 보면 한 폭 드로잉이다. 무중력 상태에서 써내려 간 듯하다. 때로는 사납고 세차게 흐르는 물이었다가 때로는 심연의 무심함으로 부는 바람 같다.

 이 글씨의 임자인 창암(蒼巖) 이삼만(李三晩·1770~1847)은 얼굴 없는 명필로 오랜 세월 역사 밖에 서있었다. 창암의 탄생 240주년을 기려 22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www.sac.or.kr)에서 막이 오른 ‘창암 이삼만-물처럼 바람처럼’은 한국 서예사를 바로 세우기 위한 특별전 29번째 전시다.

 창암은 조선후기 서울의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 평양의 눌인(訥人) 조광진(曺匡振·1772~1840)과 함께 당대 ‘삼필(三筆)’로 불렸다. 호남 서단에서 활동하며 문자 그대로 물처럼 흐르고 바람처럼 부는 ‘유수체(流水體)’로 이름을 떨쳤으나, 각지고 모난 건축적 아름다움을 뽐낸 추사체 그늘에 가려 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전주 이씨 양반 집안의 후손이었지만 당대에 이미 몰락해 땟거리를 걱정해야 할 신세로 떨어진 뒤 평생 글씨만 썼다는 사실 이외에 알려진 게 별로 없다. 그는 통일신라시대 김생(金生·711~790)의 글씨를 토대로 서체 공부를 하며 조선 고유의 서예미를 구현한 ‘조선진체(朝鮮眞體)’를 완성한 인물로 재조명 받는 중이다.

 창암의 글씨를 시로 읊은 이는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1915~2000)다. 그는 『질마재 신화』에 실린 ‘이삼만이라는 신(神)’에서 “이삼만 석 자를 많이 받아다가 집 안 기둥들마다 다닥다닥 붙여 두는데/그러면 뱀들이 기어올라 서다가도 그 이상 더 넘어선 못 올라온다는 신념 때문입니다”라고 뱀을 잡을 지경의 신통력 서린 글씨를 기렸다. 이렇듯 창암은 남도 지역에서 전설처럼 내려오는 신필(神筆)로 대접받는다.

 창암은 말년에 이르러 확고한 서예관을 견지했다. 그는 “서(書)는 자연에서 비롯되어 음(陰)과 양(陽)이 생겨나고, 형(形)·세(勢)·기(氣)가 붓에 실려 부드러움과 거침, 바름과 기괴함이 생겨난다. 세차고 빠름, 느리고 껄끄러움 이 두 가지 오묘함을 터득하면 서법은 끝난다”고 했다.

 창암의 미공개작·문제작·기준작 등 100여 점을 공개한 서예박물관 측은 다음 달 22일 오후 1시 30분 창암을 주제로 한 학술대회도 연다. 오래 잊혀졌던 그와 그의 글씨를 제대로 살필 예정이다. 전시를 기획한 이동국 서예박물관 수석 큐레이터는 “창암의 서도는 한마디로 통령(通靈), 즉 신령스러운 경지”라며 “하루 천자쓰기로 벼루 세 개를 구멍 냈다고 전하는 극공(極工)의 결과이기에 더욱 인간적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이번 특별전은 내년 2월 27일까지 관람객을 맞은 뒤 3월5~13일 정읍사예술관, 3월18일~4월 17일 전북도립미술관, 4월23일~5월22일 국립광주박물관으로 이어진다. 02-580-1300.

정재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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