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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용의 근대의 사생활] 100년 전의 제야 풍경, ‘묵은 빚’은 남기지 않았다



1920년대 서울의 전당포. 조선시대에는 이자를 변(邊)이라 했는데, 장날마다 이자를 내는 것을 장변(場邊), 추수 때 몰아서 납부하는 것을 장리(長利)라 했다. 이자율은 연리 50% 이상이었으나 ‘묵은 빚’을 탕감하는 관행 때문에 채주(債主)가 떼이는 빚이 많았다. 소액의 담보 대부를 맡은 전당포는 채권자에게나 채무자에게나 상대적으로 안전한 금융기관이었지만, 전당포 주인은 동서양 어디에서나 각박한 사람으로 취급됐다. [사진 출처=『일본지리풍속대계』]

태양의 한자 표기는 ‘일(日)’이고 우리말로는 ‘해’다. 그런데 한자 ‘일(日)’은 하루지만 우리말 ‘해’는 1년이다. 이 차이는 우리 고대인들이 중국인과 다른 우주관을 가졌음을 알려준다. 해는 매일 떴다가 지고 다시 뜨기를 반복하지만, 해가 하늘에 떠 있는 시간과 움직이는 경로는 날마다 다르다. 해의 움직임이 완벽한 규칙성을 보이는 것은 1년 단위다. 우리 선조들은 이 사실을 근거로 해의 ‘수명’이 1년이라고 상정했다. 세상만물은 생로병사의 순환을 거쳐 수명을 다하기 마련이고 결코 지나간 모습으로 되돌릴 수 없는 법이니, 똑같은 순환 과정을 새로 시작하는 것은 ‘새 생명’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었다.

 새 생명이 탄생하는 순간은 언제나 위태롭다. 우리말로 새 태양이 탄생한 날을 ‘설’이라 하는데, 여기서 설은 ‘설익다’ ‘낯설다’ ‘설설 기다’의 설과 같은 뜻이다. 아직 덜 자라서 움직임에 익숙하지 않으니 조심스레 다뤄야 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새 태양이 순조롭게 태어나게 해 준 신들에게 감사하고, 무사히 한 살을 더 먹은 어른들에게 축하인사를 드리는 것으로 새해를 시작했다.

 새 해가 태어나기 전에 헌 해가 죽는다. 헌 해가 죽는 때를 제석(除夕) 또는 제야(除夜)라 하는데, 해의 움직임이 세상만사의 기준이었기에 이때까지 사람이 벌여 놓은 일들도 모두 마무리하는 게 원칙이었다. 새 해가 무사히 뜬다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날에는 사람을 찾아다니고 결산을 하며 빚을 갚는다. 부자에게는 흐뭇한 날이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돈 한 푼 없다. 길거리에서 자살하는 사람도 드물지 않다. 철부지들과 특권층을 제외하면 한 해를 마감하는 날은 슬픈 날이다.” 에밀 브루다레가 묘사한 1903년 제야의 서울 거리 풍경이다.

 조선시대 채무관계의 시한은 원칙적으로 한 해였다. 모든 것이 죽고 새로 태어나는데 빚만 죽지 않고 버티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았다. 채무자는 제석까지 모든 빚을 청산하고 새해를 맞아야 했다. 해를 넘긴 빚을 ‘묵은 빚’이라 했는데, 이는 채권자가 탕감해 주는 것이 관행이었다. 그러나 이런 관행을 이용하여 이때만 모면하려고 버티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옛 사람들에게 신용은 사회적 생명이었다. 신용을 잃고 껍데기만 남은 허깨비로 사느니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끊기로 작정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런데 신용의 주체가 개인과 법인으로 분화한 오늘날에는 작은 빚을 못 갚아 신용불량자가 된 개인들만 고뇌할 뿐, 엄청난 나랏빚을 떼먹은 기업들 중에는 도리어 ‘연말 상여금 잔치’에 바쁜 곳도 많다.

전우용 서울대병원 병원역사문화센터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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