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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체 시계 느려지면 시간은 쏜살처럼 느껴진다

시간을 볼 수도, 들을 수도, 만질 수도 없지만 우리는 늘 시간에 쫓기고 시간을 의식한다. 불가사의한 시간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은 영화에도 종종 나타난다. ‘사랑의 블랙홀’에선 매일 같은 날이 반복되고, ‘벤자민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큰 사진)에서 주인공은 점점 젊어진다. ‘백투 더 퓨쳐’ ‘타임머신’(작은 사진) 같은 영화는 시간여행의 꿈을 펼친다. 100년 전 아인슈타인이 ‘절대불변의 시공간’이란 법칙을 깬 이후에도 여전히 시간과 관련된 많은 현상은 미스터리다.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1분은 60초, 하루는 24시간. 언제나 누구에게나 시간은 똑같이 주어진다. 시계와 달력으로 시간을 재단하고 관리하지만 때로 시간은 순식간에 날아가 버리기도 하고, 때론 영원할 것처럼 늘어진다. 가장 정확하고 객관적일 것 같은 시간은 사실 추상적이고 주관적이다. 인위적이기도 하다.

나이 들수록 왜 세월은 빨리 흐를까

물리학 법칙을 벗어난 시간의 신비로움은 나이를 먹으면서 새로운 법칙을 추가한다. 사람들이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흐른다고 느끼는 것이다. 왜 나이가 들수록 시간은 빨리 흐르는 걸까. 10대엔 시속 10㎞, 20대엔 시속 20㎞로 흘렀던 시간이 50대에 이르면 시속 50㎞, 60대엔 시속 60㎞로 점점 빨라진다. 열 살에서 스무 살이 될 때까진 지루하리만큼 긴 시간을 기다렸는데, 어제 마흔이 된 것 같은데 곧 쉰 살이 된다. 시간이 빨라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수수께끼엔 답이 있을까.

도파민 수치 증가한 쥐, 생체시계 빨라져
심리학자 퍼거스 크레이크(Fergus I. M. Craik)는 1999년 ‘노화와 시간 판단’에 관한 실험을 했다. 피실험자는 평균 나이 72.2세인 노인 그룹과 22.2세의 젊은 그룹으로 나뉘었다. 첫 번째 실험은 피실험자가 눈을 감고 30, 60, 120초를 짐작으로 세는 것이고, 두 번째는 실험자가 30, 60, 120초에 신호를 제시하면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판단하도록 하는 것이다. 실험 결과 연령에 따라 명확한 차이가 드러났다. 노인 그룹은 시간을 세도록 했을 땐 실제 30초보다 더 긴 시간이 지나서야 30초가 흘렀다고 답했고, 시간의 경과를 짐작하도록 했을 땐 실제 120초의 시간이 흘렀는데도 40초밖에 안 됐다고 판단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걸까. 학자들은 “노인과 젊은이가 가진 시계의 속도가 다르기 때문이다”는 가설을 제시한다. 나이가 들수록 생체시계의 속도가 느려지고, 행동이 둔해져서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를 1912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알렉시스 카렐(Alexis Carrel)은 이렇게 비유했다.

“시계에 표시되는 물리적 시간은 강물처럼 일정한 속도로 흐른다. 청소년들은 강물보다 빠른 속도로 강둑을 달릴 수 있다. 그러나 중년이 되면 그 속도가 조금 느려지는데 그래도 아직 강물과 보조를 맞출 수 있다. 노년이 되면 몸이 지쳐버리면서 강물의 속도보다 훨씬 뒤처진다. 그렇다보니 강물이 훨씬 빠르게 느껴진다. 그러나 강물은 청소년기나 중년기나 노년기 모두 한결 같은 속도로 흘러간다.”

사람의 몸 안엔 호흡·혈압·맥박·체온·세포분열·신진대사 등 수십 가지의 ‘시계’가 있다. 생활의 박자와 리듬을 바로잡아 주는 생체시계는 각각의 고유한 주기를 가지고 있다. 혈압·체온·맥박 등이 약 24시간 주기로 변하는 것, 여성의 월경이 한 달에 해당하는 주기로 반복되는 것 등 몸 안에선 각각의 시계장치가 움직이고 있다. 학자들은 이것이 시간의 경과를 판단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주목했다.

시간 인식에 영향을 미치는 생리적 요인들에 대한 연구는 70여 년 전에도 있었다. 미국의 심리학자 허드슨 호글런드(H. Hoagland)는 체온에 따라 시간이 빠르거나,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는 걸 발견했다. 병에 걸린 아내가 약을 가져온 그에게 “왜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렸느냐”고 타박했을 때였다. 실제 그는 아주 잠깐 아내 곁을 떠나있었는데도 말이다. 호글런드는 아내에게 짐작으로 1분의 길이를 맞혀 보라고 했다. 아내는 실제 37초밖에 되지 않는 시간을 1분이라고 답했다. 체온이 1도 오를수록 아내가 1분이라고 짐작하는 시간은 짧아졌다. 열이 오른 아내에게 시간은 실제보다 더 길게 느껴진 셈이다.

실험용 쥐에게 약물을 투여해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 수치를 조작한 실험도 있다. 사람은 나이가 먹을수록 도파민 생산량이 줄어드는데 이로 인해 시간 지각이 달라지는지 여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실험이다. 미국 듀크대 심리학·신경과학 워런 멕(Warren H. Meck) 교수는 20초마다 먹이 레버를 누르도록 훈련된 쥐에게 도파민 수치를 증가시키는 암페타민과 저하시키는 할리페리돌을 주사했다. 도파민 수치가 높아진 쥐는 레버를 누르는 속도가 18초로 빨라졌고, 저하된 쥐는 22초로 느려졌다. 즉 도파민 수치가 높아지면 생체시계가 빨라지고, 낮아지면 느려진다는 것이다.

이런 실험·연구 결과가 있지만 생체시계 이론은 수수께끼에 대한 정답은 아니다. 그럼에도 몸 안 시계의 속도는 느려지고 따라서 ‘시계의 시간’이 상대적으로 빠르게 느껴진다는 것은 주요한 가설 중 하나다.

시간 감각은 정보량 따라 달라져
세계적인 신경의학자이자『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등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인 올리버 색스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자동차로 캐나다에 가는 길이었어요. 여행 중에 글 쓰는 일을 걱정하던 친구에게서 녹음기를 받았지요. 그리고 72년의 추억들을 녹음하기 시작했습니다. 72년 이야기를 끝낸 뒤 73년 이야기로 넘어갔어요. 국경에 이르렀을 때는 89년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요. 녹음 테이프가 부족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어요. 해가 지날수록 이야기할 내용도 점점 줄어들었거든요. 점점 더 이야기할 것이 없었어요. 그 길이가 거의 일률적으로 짧아졌어요. 왜 그럴까요? 인생에서 반복되는 일이 점점 더 많아지는 걸까요? 나이가 들면 저장되는 경험들이 점점 적어질까요? 젊은 시절에는 집중력이 좋을까요? 나는 이 가정들 사이에서 결정을 내릴 수가 없군요.(『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공장』중)”

두 번째 가설은 바로 이것이다. 일어난 사건이 많을수록, 새로운 경험이 많을수록 시간이 더 길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기억 속에서의 시간 감각은 정보량에 따라 재구성되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는 매일이 새롭고 모든 것이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는다. 정보량도 많고 세세한 부분까지 생생하게 기억된다. 하지만 어른의 경험은 반복적이고 일상적이게 마련이다. 또 나이가 들수록 뇌를 통과하는 정보의 양은 줄어들고 기억력마저 쇠퇴한다. 따라서 나중에 떠올렸을 때, 어린 시절이 다채로운 경험과 인상적인 기억의 연속인 반면, 단조로운 경험뿐인 어른의 시간은 하루하루가 흐리멍덩해지고 1년이 날아가버린 듯 사라진다.

‘기억의 저장’에 따른 시간 지각의 차이에 대해 연세대 심리학과의 김민식 교수는 이런 얘기를 덧붙인다.

“낯선 길을 갈 땐 멀게 느껴지지만 돌아올 땐 더 가깝게 느껴지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같은 거리여도 우리가 느끼는 소요 시간은 다르지 않나. 갈 때는 새로운 정보가 많아서 주위를 살피면서 가지만 올 땐 이미 알고 있는 길이라 집중하지 않는다. 늘 새로운 경험을 하는 아이들에게 시간은 처음 가는 길과 같을 것이다.”

이 가설에 대해 의아해할 수도 있다. 재미있는 영화를 보거나, 친구를 만나 대화를 할 땐 쏜살같이 시간이 지나가고 기차를 기다리는 시간은 아주 천천히 간다. 그렇다면 기억할 것이 많을수록 시간이 길게 느껴진다는 앞서의 설명과는 모순되는 것이 아닐까. 기억의 저장량만으로 시간의 속도를 잴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심리학자들은 두 가지 개념을 구분해 설명한다. 바로 현재적인 ‘시간의 흐름 판단(passage of time judgement)’과 ‘회고 시간의 판단(retrospective time judgement)’이다.
영국의 맨체스터대에서 ‘아마겟돈’이라고 이름 붙은 실험이 이뤄졌다. 각각 9분씩 한 그룹은 영화 ‘아마겟돈’을 봤고, 또 다른 그룹은 대기실에서 기다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판단하도록 했을 때 영화를 본 그룹이 기다린 쪽보다 금세 시간이 지나갔다고 답했다. 다음 실험과의 분리를 위해 두 그룹은 10분간 소설을 읽었다. 그러고는 앞선 9분에 대한 시간 판단을 요구받았다. 앞의 실험과 반대로 영화를 본 피험자들은 시간을 더 길게, 기다린 피험자들은 시간을 더 짧게 판단했다. 즉 피험자가 영화를 보는 상황 안에 머무는 순간엔 시간을 짧게 느끼지만, 상황이 종료된 후엔 상대적으로 긴 시간을 느끼게 된다는 얘기다. 이런 현상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시간에 대한 관심이 심리학적 시간 판단에 영향을 준다고 할 수 있다. 초침이 시계를 도는 것만 바라보고 있으면 1분조차 상당히 길게 느껴지지만 흥미로운 일에 집중할 땐 시간의 경과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것은 마르셀 프루스트의『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도 잘 묘사돼 있다. 화자인 는 스테르마리아 부인에게 저녁식사를 함께하자고 초대하는 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기다리고 있다.

‘그녀의 편지를 기다리던 그날 오후에 다른 사람이 나를 방문해 주었더라면 시간이 빨리 흘러갔을 것이다. 대화를 하며 시간을 보내다 보면, 시간을 의식하지 않게 된다. 시간이 사라졌다가 한참 후에 갑자기 다시 나타나는 것이다. 시간은 이렇게 게으름을 피우다가도 재빠르게 움직이곤 한다. 하지만 혼자 있을 때는 한결같은 속도로 똑딱거리는 시계추의 움직임 때문에 아직도 멀게만 느껴지는 그 순간을 더욱 의식하게 되면서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 그만큼 늘려놓게 된다. 친구와 함께 있었다면 1분, 1분 시간이 가는 것을 세지 않았을 텐데.’

죽음의 불안 느껴도 시간 빨라져
어른과 아이의 시간 인식 차이를 인간의 발달과 관련된 것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작은 어린아이에게는 모든 것이 커다랗게 들이닥친다는 얘기다.

어른이 되어 초등학교를 찾아가보면 “이렇게 운동장이 좁았나, 책상이 이렇게 자그마했나” 깜짝 놀란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운동장도, 책상도 예전 그대로인데 말이다. 이런 현상은 아이가 자신의 작은 몸을 기준으로 크기와 길이를 평가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른이 되고 몸이 자라면 상대적으로 교실이 작아 보이고 길도 좁아진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이처럼 상대적인 공간 지각은 시간에도 적용된다. ‘나’를 기준으로 시간의 흐름을 인식하면 같은 시간도 갈수록 짧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열 살짜리 아이에게 1년은 인생의 10분의 1이지만, 쉰 살의 어른에게 1년은 인생의 50분의 1밖에 안 된다. ‘평생’의 길이에 따라 비율이 달라지고 평가도 바뀐다는 것이다. 또 죽음이 점차 다가오면서 느끼는 불안감 탓에 시간의 속도를 더 빠르게 느낀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가설들을 뒷받침하는 과학적 연구 결과는 아직 없다.

일본 후쿠야마대 심리학과의 마쓰다 후미코 교수는 심리적 시간의 길이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네 가지를 꼽았다.

첫째는 `시간의 경과’에 주의를 기울일수록 시간은 길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지루하게 기다릴 때가 그런 경우다. 일어난 사건이 많을 때도 시간은 더 길게 느껴진다. 빛이나 소리와 달리 지각기관이 따로 없는 시간은 그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연속으로 보이기도 한다. 셋째는 생리적인 템포다. 체온이 오르거나 약물에 의해 몸의 템포가 빨라져도 시간은 빠르게 느껴진다고 한다. 마지막은 시간 경과의 길이다. 당연하지만 긴 시간이 흐를수록 심리적으로 느끼는 시간이 길어진다는 것이다.

심리적 시간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왜 나이가 들수록 시간은 빨리 흐르는지’를 설명하는 데도 역시 유효하다.

다만 학자들은 앞서 두 번째로 들었던 회상효과 탓에 시간이 점점 빨라진다고 느껴지는 것이라면 그 길이를 늘릴 수 있다고 말한다. KAIST 정재승 교수는 새로운 경험을 하고 삶에 변화를 줘서 기억할 거리를 만들어 노년을 다채롭고 변화무쌍한 것으로 바꾼다면 시간도 더 길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변화는 나이와 관계없이 얼마든지 경험할 수 있고 훈련을 통해 기억력 둔화 속도를 늦추는 것도 가능한 것이니 말이다.

◇도움말 주신분=정재승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 , 김민식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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