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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주는 끝났어”라고 할 때 다음을 준비한 대가

지난 16일, 순천향대학에서 체육을 전공하는 학생들을 상대로 특강을 했다. 열렬한 농구팬인 이광수 교수께서 주선한 자리였다. 많은 사람을 상대로 말해본 일이 없어서 처음엔 사양했다. 그러나 학생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말에 어렵게 결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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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 있는 집에서 순천향대학이 있는 아산까지 자동차를 운전하는 동안 줄곧 눈이 내렸다. 앞 유리창에 쌓이는 눈을 와이퍼로 밀어낼 때마다 지나간 시간들이 어른거렸다. 그러는 동안 내가 경험한 일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됐다. 이날 나는 미리 준비해 둔 내용보다 아산까지 가는 길에 떠올린 생각들을 더 많이 말했다.

어린 시절, 나는 그냥 농구를 좋아하는 소녀였을 뿐이다. 그런 나에게 함께 운동하는 친구가 자극이 되었다. 인성여고 동기 정은순이 고교 재학생으로서 태극마크를 달자 나에게도 목표가 생겼다.

1990년,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에 태극마크를 달고 나갔다. 한국이 우승했고, 나는 득점왕과 최우수선수(MVP)상을 수상했다. 그때 함께 뛴 후배 전주원과 정선민은 지금도 신한은행에서 선수로 뛴다. 이후 승승장구, 국가대표 부동의 포워드로 활약하며 스타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첫 시련이 닥쳤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예선에서 발목을 다쳤다. 치료를 제대로 못해 악화되는 바람에 큰 수술을 했다. 모두 “유영주는 끝났다”고 말했다. 나는 이를 악물고 재활을 거듭한 끝에 가까스로 일어섰다. 그런데 1998년, 금융위기로 소속팀(SK증권)이 해체됐다. 농구대잔치 결승에서 코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당하고도 끝까지 뛰어 우승한 그해에.

동료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정선민은 신세계로, 김지윤은 국민은행으로 갔다. 나는 라이벌 팀인 삼성생명에 가서 오랜 친구이자 라이벌인 정은순의 동료가 됐다. 삼성생명은 정은순의 팀이었다. 적응이 쉽지 않았다. 거기다 무릎 부상이 닥쳤다. 나는 떠나야 할 때가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001년 9월, 조용히 은퇴했다.

은퇴한 지 한 달 만에 국민은행에서 코치직을 제의했다. 나는 의욕에 충만했다. 2002년엔 감독대행으로서 두 시즌을 보냈다. 값진 경험이었다. 2003년에 국민은행을 떠난 나는 2006년 쌍둥이를 출산했다. 주부로서의 삶은 또 다른 도전이었다. 물론 그동안에도 농구에서 눈을 뗀 것은 아니다. 시간이 허락하면 아기들을 안고 경기장에 가서 경기를 관전했다. 중계방송은 반드시 시청했고, 농구와 관련한 책을 읽었다.

나는 지난해 SBS 스포츠의 해설위원이 되었다. 해설은 스포츠의 또 다른 영역이다. 선수에게 훈련이 필요하듯 해설에도 훈련과 준비가 필요하다. 나는 즐기고 있다. 예상하지 못했던 기회, 새로운 도전이 즐겁다. 행운이라면 내가 어느 정도 준비가 됐을 때 도전할 기회가 왔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기회를 기회로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고, 따라서 도전할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프로의 삶이 어떤 것인지, 시련을 이겨내는 힘이 어디에서 오는지, 준비된 삶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나름대로 말했다.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에게는 자신을 돌아보고 미래를 생각할 기회가 되었다. 인천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눈이 그치지 않고 내렸다. 자동차 앞 유리창은 미래를 향해 열린 스크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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