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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 드라이어로 그곳을? 골프장 파우더룸의 무법자

“윙~.”
남자가 든 헤어 드라이어는 사타구니를 향하고 있다. 건장한 체격의 사내는 반쯤 눈을 감은 상태로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골프장에서 라운드를 마친 뒤 클럽 하우스 목욕탕에서 샤워를 끝내고 나오는 길이었다. 나는 이 사내의 행동을 목격하곤 갑자기 화가 났다. ‘헤어 드라이어’는 말 그대로 머리카락을 말리는 도구이지 은밀한 곳까지 말리는 도구는 아니지 않은가. 나는 건장한 체격의 사내에게 다가선다. 한바탕 호통이라도 쳐야 할 듯싶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에티켓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그렇다면 정의의 사도를 자처하는 내가 이대로 지나칠 순 없지 싶다.

정제원의 골프 비타민 <143>


“저어, 이봐요.”
“나 말입니까. 무슨 일입니까.”
사내의 굵은 목소리엔 짜증이 묻어난다. 마치 곤히 낮잠 자는 사람을 왜 깨웠느냐는 듯한 표정이다. 그 순간에도 사내의 아랫도리를 향하고 있는 헤어 드라이어는 “윙”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다. 사내의 거친 반응에 나는 움찔하고 만다. 처음엔 호통이라도 칠 기세였지만 갑자기 내 목소리는 움츠러든다.

“아, 그게~말입니다. 시원하십니까.”
“뭐요? 시원하건 말건 당신이 무슨 상관입니까.”

사내는 나를 윽박지른 뒤 하던 일을 계속한다. 아, 헤어 드라이어로 사타구니를 말리면 기분이 어떨까. 아랫도리가 뽀송뽀송해져서 좋긴 하겠지.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은가. 저 사내가 쓰던 헤어 드라이어로 내 머리를 말릴 순 없지 않은가.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그 사내는 오른쪽 다리를 척 하고 테이블 위로 올린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보란 듯이 궁둥이 쪽으로 헤어 드라이어를 들이민다. 오우, 이럴 수는 없다. 머리카락을 말리는 헤어 드라이어로 궁둥이까지 말리다니-. 내가 호통을 치려는 순간, 사내는 갑자기 헤어 드라이어를 테이블 위에 ‘탁’ 하고 내려놓는다. 그러고는 옷을 입고 파우더 룸 바깥으로 사라진다. 나는 조심스럽게 사내가 사용하던 헤어 드라이어를 집어든다. 그러고는 그 헤어 드라이어로 머리카락을 말린다. 찝찝하다. 머리카락 속으로 벌레가 스멀스멀 기어들 듯한 기분이다.

다음 날 아침, 출근을 앞두고 샤워를 마친 뒤 머리를 말리기 위해 헤어 드라이어를 집어들었다. 그때 갑자기 골프장 목욕탕에서 만났던 사내가 생각난다. 나는 문득 헤어 드라이어로 은밀한 곳을 말리던 그 사내가 어떤 기분이었을지 궁금해진다. 그래서 나는 헤어 드라이어의 끝을 사타구니로 향하게 한다. 더운 바람이 나온다.

그때 갑자기 욕실 문이 열리더니 아내가 빽 하고 소리를 지른다.

“도대체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아니 말이야. 어제 골프장에서 보니깐 누가 이렇게 하더라고. 어떤 기분인지 느껴 보려고….”

2010년이 저문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그동안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골퍼들을 도와준 수많은 사람이 있었음을 기억하자. 당신이 어떻게 잔디를 잘 떠낼까 고민할 때 떨어진 잔디를 어떻게 살릴까 고민하는 이가 있다. 당신이 몇 번 클럽을 선택할까 고민할 때 당신이 선택한 그 클럽이 자신의 손에 들려 있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새해에는 헤어 드라이어로 머리카락 이외에 다른 물건을 말리는 이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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