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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때리라던 선생님…우린 모두 울었다

1970년대 중반 필자의 중학교는 서울이라도 꽤 변두리에 있었다. 덜컹거리는 버스를 타고 비포장도로를 달려 논길, 산길 지나 골짜기에 닿으면 버스 종점이었다. 거기서 내려, 매일 산허리 교사를 등산하듯 오가야 했다.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로 알려진 그곳 마을 사람들은 몹시 가난했다. 인문계 고교 진학생은 한 반 70명의 학생 중 10여 명에 그쳤다. 공부를 꽤 잘하는 학생들도 가정형편 때문에 실업계 고교를 택했다. 학업 부진까지 겹쳐 상급학교 진학이 언감생심이었던 학생도 여럿 있었다. 사춘기는 그때 학생들에게도 찾아왔다. 일찌감치 공부와 담 쌓고 반항을 일삼는 문제아도 몇 있었다. 다만 학교 규율만큼은 체벌금지가 화두인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엄했다.

3학년 1반 우리 담임선생님은 그중에서도 엄하기로 유명했다. 실연의 충격 때문에 노총각으로 남으신 선생님은 수학과 우리를 애인으로 삼으셨다. 머리카락이 산발이 다 되면서까지 열정적으로 진행하던 수업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말씀과 더불어 쉴 새 없이 튀기는 이물질 때문에 앞자리에선 비옷, 우산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올 지경이었다.

1학기 중간고사 결과가 나온 종례시간. 호랑이 담임선생님은 봉걸레 자루를 들고 교실로 들어오셨다. 초라한 성적에 대한 책임을 단체로 물으실 모양이었다. 나무 몽둥이가 엉덩이 살에 가져다 줄 통증을 앞두고 교실은 싸늘한 정적으로 고요했다. 선생님은 한동안 우리를 말없이 노려보셨다. 앞줄 학생부터 앞으로 부르셨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그 몽둥이를 학생에게 주고는 당신을 때리라는 것이었다. 우리들이 공부를 못한 것은 당신 탓이라는 이유다. 어쩔 줄 모르는 걸레 자루는 허공만을 맴돌고 교실 전체는 울음바다가 됐다. 우리는 선생님과 부둥켜안고 울었다. 어린 학생들이었지만 그때 가난에서 벗어날, 공부와의 외통수 함수관계를 선생님의 사랑과 열정으로 우리는 이미 느꼈을 터였다.

그 이후 정말이지 ‘같이 열심히’ 공부했다. 모두들 새벽같이 학교에 나와, 공부를 좀 하는 학생들이 도와주는 방법으로 협동 공부를 했다. 학급 회의에서 수업에 집중하자, 모르면 그냥 넘어가지 말고 질문을 하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순박한 학생들은 이 말에 모두 동의했다. 첫 국어시간에 질문이 쏟아졌다. 선생님도 ‘웬일이니’ 하시면서 신이 나 답해 주셨다. 그런데 계속 이어지는 질문은 하품 날 정도로 한심한 것이 많았다. 워낙 학력이 떨어지는 학생들인지라 질문 역시 수준 이하일 수밖에. 드디어 수업이 끝날 무렵 국어 선생님은 무언가 감을 잡으셨다. ‘이것들이 수업 방해를 하려고 장난질하는구나’. 하여 그날 수업 중 질문을 한 학생들은 모조리 불려나와 기합을 받았다. 세월이 지난 지금도 그때 일만 떠올리면 쿡 웃음이 나온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당시로서는 전례 없이 반 학생 모두가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감격을 맛보았다.

몇 해 전 어느 지방도시에서 일진회 퇴학생들에 대한 재판을 했었다. 중학생 후배들을 붙잡아 겨울 군고구마 장사를 억지로 시키고 돈을 갈취한 일을 벌인 맹랑한 아이들이었다. 얘들 때문에 학교 분위기가 얼마나 좋지 않았을까 싶었다. 형량에 엄히 참고하려고 학생주임 선생님을 증인으로 나오시게 했다. 증언을 들어보니 예상대로였다. 증언이 끝났는데 마지막 할 말이 있다면서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쪽지들을 꺼내 읽으셨다. 그 쪽지를 준 사람들은 아이들의 이전 담임선생님들. 잘못 가르친 선생이 문제이지 그 아이는 원래 천성이 곱고 착한 학생이니 선처를 바란다는 요지였다. 학생주임이 증인으로 나간다고 하니 담임들이 뒤늦게 알고 서둘러 쪽지를 전해주셨던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선생님은 선생님이시군요.” 울컥하여 법정에서 더 말을 잇기 힘들었다. 이들 담임선생님의 말씀으로 당초 엄벌 계획을 바꿔야 했다. 6개월 후 한 아이 어머니가 재판부에 편지를 보내왔다. “세상 살면서 한 번도 뜻대로 된 일이 없었지만, 이번 재판같이 소망이 이루어진 일은 처음이에요. 앞으로 잘 키우겠습니다.”

30여 년이 지나 중학생도 이제는 커서 강단에 서게 됐다. 종강을 하고 학점을 매겨 보니 보람도, 후회도 교차한다. 학생들 얼굴과 이름이 제각각이듯 수업 중 저마다 이해한 바도 그랬다. 더 잘 가르쳤더라면…. 학생들 성적을 어루만지며 책임의 죽비로 스스로를 때린다.
한 해 마무리하는 시점, 세상은 참 어수선하다. 그래도 이 말만은 꼭 전해 드리고 싶다.
“선생님! 힘내세요. 정말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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