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이웃 종교 성지를 가다 [상] 6대 종교 지도자들, 이스라엘 첫 순례





예수의 십자가 길 걸으니 공자의 천도가 보이더라



국내 6대 종교 지도자들이 예루살렘의 십자가의 길을 걷고 있다. 길바닥에 보이는 큼직한 돌은 2000년 전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도로다. 예수 당시에도 있던 길이다. 왼쪽부터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 유교 최근덕 성균관장, 원불교 김주원 교정원장, (한명 건너)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이광선 대표회장, 민족종교협의회 한양원 회장, 천주교 김희중 대주교.



궁금했다. 과연 어떤 풍경이 빚어질까. 9~16일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이하 종지협)는 ‘이웃종교 성지순례’의 일환으로 이스라엘과 로마를 방문했다. 종교계 최고 수장들이 대거 참석했다. 종지협 의장을 맡고 있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이광선 대표회장을 비롯해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 천주교 주교회의 종교간대화위원장 김희중 대주교, 원불교 김주원 교정원장, 유교 최근덕 성균관장, 민족종교협의회 한양원 회장 등 6대 종교 지도자가 동참했다. 천도교 임운길 교령은 건강상 이유로 이번 순례에서 빠졌다. 각 종교계 수장들의 첫 이웃종교 해외 성지 순례를 두 차례 연재한다. 다음 주에 로마·아시시 편을 싣는다. 종지협의 다음 번 순례지는 인도 등 불교 성지가 될 전망이다.



9일 종교계 수장을 태운 비행기는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도착했다. 캄캄한 밤이었다. 예수가 태어나고, 자라고, 가르침을 전하고, 십자가에 못 박힌 땅. 6대 종교 지도자들은 각자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게 될까. 예루살렘에서 첫 밤을 보냈다. 이튿날 아침, 그리스도교 성지의 핵심으로 꼽히는 ‘십자가의 길(Via Dolorosa)’로 갔다. 일행은 오래된 골목을 돌고 돌아 빌라도 총독의 관저였던 옛 건물로 갔다. 그곳은 성전 경비병에게 체포돼 끌려온 예수가 ‘십자가 처형 선고’를 받았던 곳이다.



 수장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신약성경에서 읽고, 영화에서 보고, 말로만 듣던 ‘예수의 무대’가 눈앞에서 생생하게 펼쳐졌기 때문이다. 2000년 전, 예수는 이곳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리고 채찍질을 당해 피투성이가 된 채 가시 면류관을 머리에 썼다. 그리고 70㎏에 달했다는 십자가를 어깨에 멨다. 그는 절뚝거리며 군중의 조롱 속에서 ‘십자가의 길’을 걸었다. 수장들은 그 길을 따라갔다.



 그때 현지인이 와서 ‘십자가의 길’에 대한 간단한 팸플릿을 팔았다. 자승 스님은 그걸 일행 수만큼 구입했다. 그리고 수장들에게 하나씩 드렸다. 흐뭇한 풍경이었다. 종교계 지도자들이 얼굴을 맞대고, 피부를 맞대고, 때로는 소소하게, 때로는 진지하게 이웃종교의 성지를 밟아가는 모습은 아름다웠다.









6대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의 시신을 염했다고 전해지는 골고타 언덕 성묘교회 안 바윗돌에 손을 얹고 있다. “생생하게 남아있는 2000년 자취가 놀랍다”고 말했다.



 십자가의 길은 오래된 길이다. 로마 시대 때 깔았던 큼지막한 돌들이 지금도 바닥에 깔려있다. 예수는 바로 그 돌 위를 걸었던 것이다. 그 앞에 쪼그려 앉았다. 돌 위에 손을 대봤다. ‘예수는 이 돌 위를 지났을까. 처참하게 비틀거렸을 그의 걸음이 이 위를 지났을까. 이 돌은 봤을까. 예수의 마지막 풍경을 고스란히 목격했을까.’



 수장들의 표정은 진지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이웃종교인은 이웃종교인으로서 예수의 삶을 되짚고 있었다. 원불교 김주원 교정원장은 “성경으로만 읽었던 예수님의 생애가 피부에 와서 감긴다. 예수님이 살았던 역사적 무대를 직접 보니까 성경 속 메시지가 훨씬 생동감 있게 다가온다”고 말했다. 그건 힘이었다. 종교간 대화, 종교간 이해의 시선에서 솟아나는 소통의 힘이었다.



 예수도 그랬다. 예수 당시 사마리아인은 이방인이었다. 유대인은 그들을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다. 아예 말조차 걸지 않았다. 예수도 유대인이었다. 그러나 예수는 달랐다. 우물가에 물을 길러 온 사마리아의 여인에게 말을 걸었고, 위안을 줬고, 한없이 따뜻한 눈으로 쳐다봤던 것이다. 그게 바로 이웃종교인, 낯선 이방인에 대한 예수의 태도였다.



 우리는 어떨까. 오늘을 사는 우리는 이웃종교를, 이웃종교인을 ‘예수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그리스도인에게 이건 무척 중요한 문제다. 왜 그럴까. 그 ‘눈’에서 멀어질수록 예수에게서도 멀어지기 때문이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의 구체적인 메시지가 바로 그 속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십자가를 짊어진 예수는 세 번이나 쓰러졌다. 쓰러진 곳마다 예배당이 세워져 있었다. 처음 쓰러진 곳에 세워진 예배당 벽에는 홈이 파져 있었다. 가이드를 맡은 김진산 목사는 “예수님이 쓰러질 때 손으로 짚었다는 일화가 전해지는 벽”이라고 설명했다. 수장들도 돌아가며 그 홈에 손을 갖다 댔다. 2000년 전 예수의 체온이 지금도 흐르는 걸까. 김희중(광주대교구장) 대주교는 홈에 손을 댄 채 눈을 감았다. 예수의 체온, 예수의 고난에 대한 묵상이리라.



 빌라도 법정에서 골고타 언덕까진 약 800m였다. 종교계 수장들은 그 오르막길을 따라갔다. 올해 88세인 민족종교협의회 한양원 회장은 지팡이를 짚으면서도 또박또박 그 길을 걸었다. 한 회장은 “예루살렘 순례는 처음이다. 88세를 살면서 한 번쯤 와보고 싶었던 땅이었다. 말로만 듣던 예수님의 자취를 직접 보니까 감회가 새롭다. 유대교·이슬람교·기독교로 갈라진 이 땅에는 종교적·정신적 아픔이 있다. 한반도에도 아직 냉전이 있다. 이들의 아픔이 우리의 아픔과 닮은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골고타 언덕에 도착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매달리고, 숨을 거둔 곳이다. 무덤까지 있었다. 그곳에 교회가 세워져 있었다. 성묘교회였다. 안으로 들어갔다. 바닥에 붉은빛이 도는 기다랗고 네모난 돌이 놓여 있었다. 십자가에서 내린 예수의 시신을 염할 때 썼던 돌이라고 한다. 각국에서 온 순례객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다. 수장들은 “2000년 전의 자취가 이렇게 생생하게 남아있다는 게 놀랍다”고 말했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이슬람의 꾸란까지 다 읽었다는 최근덕 성균관장은 “유교는 종교에 대해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곳을 둘러보면서 종교가 굉장히 처절한 본능의 발로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 밑바닥에는 평화에 대한 처절한 희구가 깔려있다는 얘기다. 평화에 대한 본능적 희구, 그걸 유교에선 천도(天道)라고 부른다. 여기에 와서 그리스도의 길과 하늘의 길을 따르려는 공자의 천도가 통한다는 걸 실감했다”고 말했다.



 수장들은 예루살렘을 거쳐 예수가 40일간 단식하며 기도했던 광야, 사해문서가 발견된 쿰란공동체 유적, 예수가 산상수훈을 설했던 갈릴리 호숫가와 나자렛도 방문했다. 순례 도중 식사 때마다 테이블에 빙 둘러앉은 수장들은 상대의 종교에 대해서 묻고, 답을 듣고, 자신의 종교에 다시 비추어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기총 이광선 대표회장은 “이번 순례를 통해 각자의 종교적 특성을 가지면서도 인간의 존엄성 등 보편적인 가치에서는 하나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예루살렘(이스라엘)=글·사진 백성호 기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