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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의 시시각각]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는가





변호사가 너무 많아 문제라고?
자격증 하나로 먹고살 순 없다
김앤장의 도전을 기억하라



이철호
논설위원




내년 한 해 동안 로스쿨과 사법연수원 출신 2500여 명이 변호사 시장에 쏟아진다. 변호사 2만 명 시대는 시간문제다. 사법연수원과 로스쿨에선 “변호사 되기 겁난다”고 야단이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판·검사 인기는 상한가다. 사법연수원에서 판사는 150등, 검사는 300등 안에 들어야 하는 모양이다. 한창 고민할 예비 법조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게 있다. ‘김앤장’ 이야기다.



 국내 간판 로펌인 김앤장은 김영무 변호사가 초석을 놓았다. 그러나 김앤장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은 1971년 5월 17일의 신민당사 농성 사건이다. 3선 개헌과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서울대생 10명이 야당 당사에 몰려가 “총선거를 보이콧하라”고 요구했다. 박정희 정권은 당연히 이들을 모두 구속 기소했다.



 서울형사지법의 31살 장수길 판사가 주심(主審)을 맡았다. 최연소 사시 합격 출신의 그는 온갖 국제 판례를 파고 들며 고심했다. 결국 10명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앞길이 창창했던 그는 미운털이 박혔다. 1973년 법관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갈 곳이 없어졌다. 그가 대학 동기 김 변호사와 손잡고 세운 게 김앤장이다.



 당시 서울대 법대 3학년 정계성은 피고였다. 석방된 그는 시골 부모님을 떠올리며 책을 팠다. 74년 사시에 차석으로 합격한 뒤 사법연수원은 수석으로 마쳤다. 판사가 되려고 기를 썼지만 구속 전력이 발목을 잡았다. 도리 없이 단 두 명의 변호사(김영무와 장수길)가 일하던 사무실을 찾아갔다. 그에겐 출구 없는 선택이었지만 김앤장으로선 물꼬가 터졌다.



 정 변호사를 따르던 후배들이 과감한 선택을 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대부분 서울대 수석입학이나 수석졸업, 사법고시 수석합격자 출신이었다. ‘수석’이 너무 많아 ‘차석’은 명함조차 못 내밀 정도였다. 김앤장에 인재들이 집합한 배경에는 당시의 암울한 시대상도 깔려 있었다. 권위주의 정권 아래 판·검사를 하는 데 심리적 부담감이 적지 않았다. “군 법무관 시절 김재규·박흥주의 사형 장면을 지켜보면서 판사직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는 변호사도 있다.



 편안한 길을 마다한 ‘젊은 피’들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갔다. 김앤장은 욱일승천(旭日昇天)했다. 도중에 망설이는 후배들도 나왔다. “잠시라도 판·검사를 하고 로펌에 가라”는 주변의 읍소(泣訴)에 흔들렸다. 이들은 서로를 다독이며 한발씩 나아갔다. “판·검사는 엄격한 도덕이 요구되는 막중한 자리다. 개인의 경력 관리 차원이라면 도덕적이지 못하고, 올곧은 법조인의 도리가 아니다”라며….



 김앤장의 성공 스토리를 보면 변호사의 숫자는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도전정신과 국제경쟁력이다. 이들이 기득권에 안주했다면 오늘날의 김앤장은 없었다. 그동안 국내 변호사 업계는 경쟁을 피하려고만 했다. “변호사가 너무 많으면 질이 떨어진다”는 말이 얼마나 엄살인지 두말하면 잔소리다.



 내년부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한·EU FTA로 법률시장이 개방된다. 자국 시장이 큰 미국 로펌들은 신사다. 문제는 가장 공격적인 영국계 로펌들이다. 세계 1~3위인 이들은 매출액의 80%를 해외에서 올린다. 프랑스·독일은 이들에게 초토화된 지 오래다. 그런 영국 로펌들이 요즘 한국계 변호사를 싹쓸이하며 우리 시장에 진출할 채비를 하고 있다. ‘영감님’ 소리나 듣고, 어깨에 힘만 주던 국내 변호사들이 이겨낼 수 있을까.



 사법고시 합격과 로스쿨 졸업장이 편안한 삶을 보장하는 시대는 가고 있다. 그렇다고 경쟁을 두려워할 일도 아니다. 참고로, 한·칠레 FTA 때 우리 정부는 국산 땅콩과 참외를 지킨다며 관세 600~700%를 고집했다. 반대급부로 닭고기·돼지고기 관세는 20%로 내주었다.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땅콩·참외는 쑥대밭이 됐고, 닭·돼지고기는 살아났다. 개방과 경쟁 속에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단련하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는 대표적 사례다.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는 꼭 공산주의자들의 교과서만은 아닌 듯싶다. 자격증 하나로 높은 담 속에서 살아온 모두에게 해당되는 경구(警句)다.



이철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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