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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충무공 동상









청동의 비극성은 퍼렇게 스는 녹 때문만이 아니다. 석기시대를 끝내고 고대 문명을 꽃피운 청동이지만, 이내 철기에 자리를 내주는 것이다. 영화를 누린 시대가 너무 짧았다. 게다가 화려함은 황금에, 단단함은 철에 밀린다.



 그래서일까. 조각가 로댕이 ‘패배한 군인’을 구상한 작품에 ‘청동시대’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남자의 나신(裸身)을 너무 적나라하게 묘사해 비난을 받기도 했는데, 패배의 슬픔에서 청동문명의 비극성을 연상한 것일까. 하지만 청동은 철기시대 말기에 ‘정신의 물질화’로 부활한다. 바로 동상(銅像)이다.



 뭐니 뭐니 해도 동상의 핵심은 ‘스토리’다. 예술성과 역사성도 중요하지만, 스스로 얘깃거리를 만들며 생명을 가지기도 한다. 로댕의 ‘발자크상(像)’은 주문했던 문인들이 못생겼다고 거부했지만, 누추한 망토에 가려진 수많은 이야기로 화제다. 벨기에 브뤼셀의 ‘오줌싸개 소년’은 크기가 60㎝에 불과하지만, “적을 향해 당차게 누었다”는 등 스토리와 옷을 입히는 이벤트로 명소가 됐다.



 반면 18세기 후반 제국주의 시대에 세워진 동상은 대부분 상무(尙武)적이다. 영국의 넬슨 제독,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대표적이다. 영광스러운 과거의 향수와 찬란한 미래의 지향이 교차하는 것이다. 전국 3000여 곳에 이르는 충무공 동상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가운데 대표적인 광화문 동상이 40일에 걸친 전면 보수를 마치고 23일 귀환한다. ‘탈의 중’이라고 했으니 새로 옷을 입고 돌아오는 셈인가.



 당초 동상의 빈자리 처리를 놓고 세 아이디어가 있었다고 한다. 하나는 ‘수술 중’. 그러나 “내 죽음을 알리지 마라”고 했는데 수술을 알리는 게 부적절하다는 의견에 탈락. 다른 하나는 ‘휴가 중’. 스노보드를 옆에 낀 충무공 밀랍 조상을 세우자는 것인데, 너무 튄다는 의견에 탈락. 그래서 ‘탈의 중’으로 결정됐다고 한다.



 물론 충무공 동상은 갑옷이 중국식이다, 칼이 일본도다, 오른손으로 칼집을 쥔 것은 항장(降將)의 표시다라는 논란이 있다. 위치도 “왜 세종로냐, 충무로가 마땅하다” “광화문이 아니라 남대문 밖에서 지켜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럼에도 이 또한 스토리의 누적(累積)이고, 동상 스스로 역사성을 정립하는 과정이란 시각도 있다. 김지하의 희곡 ‘구리 이순신’도, 놋그릇으로 만든 과정도, 해군들이 동상을 향해 거수경례를 하며 전역신고 하는 것도 ‘탈의 중’과 함께 동상에 얽힌 스토리의 일부가 아니겠나.



박종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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