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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유주열] 중국전문가가 없다고?

갑자기 중국을 알아야 한다고 야단이다. 그럼 지금까지 우리는 중국을 모르고 있었다는 말인가. 사실 이 지구상에서 중국을 우리 만큼 아는 나라가 많지 않을 것 같다. 특히 중화민족이외 타민족으로서 중국을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비교적 속속들이 아는 민족은 우리가 아닐까 생각된다.

한때 중국을 알기 위해서는 모두 홍콩을 찾았다. 중국이 竹의 장막에 쌓여 있을 때 미국의 중국 전문가들은 인근 廣東省에서 쪽배를 타고 넘어 오는 대륙의 난민으로부터 중국 국내 사정을 직접 듣거나 홍콩에서 청취되는 중국방송을 모니터하여 장막 속의 중국을 파악하였다고 한다.

중국이 개혁 개방이 된 지금도 세계의 중국전문가가 가장 많이 몰려 있는 곳은 역시 홍콩이다. 그러나 10여년 전 홍콩이 중국에 핸드오버(반환)되고 나서는 홍콩에서 분석하는 중국이 예전 같지 못하다는 이야기가 많이 들린다. 그리고 어차피 중국이 개방되었으므로 아예 거점을 베이징 이나 상하이로 옮겨 가기도 한다.

우리는 수 천년간 중국과 이웃하여 살아 왔다. 다행히 중국 변방의 민족으로서 만주 동북지역은 차지한 적이 있지만 다행(?)인지 中原을 차지한 적은 없어 중국이라는 거대한 멜팅 포트에 빠져 녹아 없어지지 않고 지금도 건재하다. 오히려 중국을 한발 떨어져서 워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우리는 漢족 뿐만이 아니라 중원을 차지한 소수민족과도 전쟁을 포함해서 많은 교류가 있었다. 역사적으로 중국에서 한반도를 침입한 국가나 민족은 반드시 망한다는 징크스도 만들어 주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듯 작은 국가이지만 우리의 선조들은 총명하여 중국을 누구보다 잘 알아서 대처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와서 우리가 중국을 잘 모른다고 한다. 금년들어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사건등에서 나타난 중국의 반응에 실망하고 중국이 변했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중국은 변하지 않았다. 1949년 10월 마오쩌뚱의 신중국 건국이후 중국의 모습은 그대로다. 오히려 우리가 잘 되는 경제만 바라보고 중국을 우리 뜻대로 쉽게 생각했는지 모른다.

중국은 덩샤오핑이라는 불세출의 영웅을 맞아 한발 늦었지만 개혁.개방정책으로 사회주의 계획경제에서 사회주의 시장경제로의 전환(transitions)에 성공하였다. 천안문사태 이후 선진국이 인권 운운 하면서 머뭇거릴 때 우리는 수교를 이루어 내고 중국이 원하는 자본과 기술을 가지고 들어갔다. 한국의 대중 투자가 한 때 일본과 미국을 능가하였다. 한국과 가까운 중국의 어느 지방정부의 GDP의 60%가 한국기업이 만들어 낸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대중 교역규모가 한일과 한미교역을 합한 것 보다 많게 된 것이 이미 수년 전의 이야기다.

이렇게 급속 발전을 가능하게 만든 배경에 여러 가지 있겠지만 우리에게는 중국을 잘 아는 전문가가 많았기 때문이다. 중국에는 조선족 200만에 재중교포가 100만에 육박한다. 그리고 유학생이 상시 6만을 넘어 2위국가의 수보다 3배이상 많다. 이는 조기 유학등 비정규 유학생이 포함되지 않은 숫자이다. 이 정도 방대한 중국 전문의 인적자원을 가진 나라가 이 지구상에 또 있을까.

우리가 수교의 역사가 일천함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우리나라의 교역. 투자. 인적교류면에서 각각 1위가 될 수 있었던 된 것의 하나로 중국에 거주하는 조선족 동포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기업가들이 그렇게 부러워 한 것은 중국에는 조선족같은 일본동포가 없다는 것이다. 수교 초기 또는 수교이전부터 중국어 한마디 못하고도 중국사업에 성공한 것은 한국인의 입이 되고 손발이 되어 준 조선족 동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단지 언어통역뿐만이 아니고 우리가 잘 모르는 현대 중국인의 취향 징크스등 문화통역까지 완벽히 해주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인재를 조직적으로 계속해서 잘 활용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4-5만개의 우리 기업이 중국에 진출 각자 노력으로 중국 시장을 뚫고 성공을 이루어 냈지만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제반 문제에 대한 종합적인 분석이 잘 안되어 있는 것이다. 조선족 동포와 그들의 인맥의 도움으로 기업을 일으키고도 그런 내용은 쑥 빼고 오히려 실패한 사례만 알려 줘 있어 조선족 동포에 대한 인식만 나빠져 있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조선족 동포의 공헌을 제대로 평가하고 그들을 포함한 중국전문가를 흡수해야한다. 현재 국내 출신의 중국전문가의 역사는 비교적 짧다. 중국대륙에서 그들과 부딪치면서 공부한 역사는 아무리 길어도 한중 수교이후였다. 조선족동포들은 중국 독특의 대약진운동. 문화 대혁명등을 몸으로 체험 饑餓와 下放에서 살아 남았다. 그래서 그들은 동시대의 중국지도자와 체험을 공유하고 있다.

우리가 땅덩어리를 옮겨 어디론가 이사갈 수 없다면 한국의 미래와 깊은 관계를 가진 중국을 더욱 잘 알기 위해서는 擧國的인 중국연구기관이 필요하다. 그리고 동 기관에는 중국의 메가트렌드의 방향과 발전 및 문제점을 잘 아는 중국전문가들을 국내외“올 코리안”에서 널리 찾아 영입하여 좀더 조직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유주열 전 베이징총영사=yuzuyou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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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