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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대구에서 품은 강군의 꿈 (235) 북한은 바다에 나설 수 없었다





NLL 북 주장은 들을 필요도 없다
연평도 등 서해 5개 섬 내준다면
서울·인천은 군사도시 되고
수도권 경제활동 마비돼 버릴 것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 해군 항공모함 위로 폭격을 마친 비행기가 불안하게 착륙하면서 5인치 로켓탄(하얀 점선 안)을 떨어뜨리고 있다. 다행히 로켓탄은 터지지 않아 피해는 없었다. 폭격을 마친 비행기는 남아 있는 폭탄을 모두 바다에 버리고 항모로 귀함하는 게 미 해군의 수칙이다. 그럼에도 이런 사고가 가끔 벌어졌다. [미 국방부 제공]





지금의 상황에서 보면, 한국을 후원했던 미군의 함대가 원산 앞바다에까지 올라가 함포로 북한 지역을 포격한다는 것이 조금 이상하게 들릴 법도 하다. 그러나 원산 앞바다뿐이 아니었다. 동해에서는 청진과 성진, 나아가 두만강 하구까지가 미 해군의 작전 해역이었다.











 서해에서는 더욱 그랬다. 미군 함대는 지금의 해상 북방한계선(NLL)에서 훨씬 넘어들어간 북한의 해상에서 작전을 벌였다. 평양과 붙어 있는 남포는 물론이고, 압록강 하구인 용암포 일대까지 미 해군이 장악하고 있었다. 나는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 자격으로 그런 미군 함대의 함포 사격 장면을 직접 관찰하기 위해 미주리 함에 올라 원산 앞바다를 제집 드나들 듯이 드나들었던 것이다. 서해로 북상해 미군이 펼치는 그런 작전을 내가 본 경험은 없지만, 마음만 있었다면 그것도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당시의 미군이 한반도에서 작전을 벌이면서 제해권(制海權)과 제공권(制空權)을 모두 쥐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미군은 압도적인 해상과 공중의 무기체계 및 화력으로 적을 압도하고 있었다. 따라서 판문점에서 휴전협상이 벌어지는 한편으로, 우리는 그런 우수한 제해권과 제공권을 활용해 아군의 작전지역을 훨씬 광대하게 유지하는 게 필요했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특히 서해의 NLL과 관련해서는 반드시 우리가 알아야 할 사항이 하나 있다. 그저 아군이 막강한 제해권과 제공권을 앞세우고 서해 5도를 차지한 것이 아니다. 만일 적군에게 서해 5도를 내준다면,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은 그 특유의 기능을 유지하기가 힘들어진다. 일단 백령도와 연평도, 대청도와 소청도 등이 북한의 손에 넘어간다면 수도 서울의 한강은 바로 ‘죽은 강’으로 변해 버린다.



 한강이 유장한 흐름을 접고 마지막으로 서해에 진입하는 하구(河口)는 적이 쉽게 도발을 해 올 수 있는 지역으로 변해 군사적인 통제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럴 경우 수도 서울을 감싸 안고 흐르는 한강은 생명력을 잃게 된다.



 이에 따라 인천을 비롯한 수도 서울 인근의 경기 서북부 일대에 대해서는 군사적인 통제를 강화할 수밖에 없고, 결국 서울을 비롯한 경기 북부 지역은 민간인의 자유로운 경제활동과 사회생활을 보장할 수 없는 곳으로 변해 버린다.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이해가 걸린 사안이다.



 따라서 NLL 바로 남쪽의 서해 5도를 두고 휴전협상 시기와 그 이후 20~30년 동안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다가 최근 들어서 점차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북한의 입장은 들을 필요도 없는 것이다. 아군은 당시 먼저 도발한 북한군에 비해 훨씬 우수한 해·공군력을 유지했고, 아울러 수도 서울과 경기 북부 일원을 지키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조치로 서해 5도에 대한 자위권을 확보한 것이다.



 요즘 북한이 백령도와 연평도 등에 대해 도발을 벌이는 것은 그를 만회하기 위한 기만적인 술책에 불과하다. 피와 땀, 그리고 다른 어느 누구보다 진지한 고민을 거쳐 확보한 우리의 해상 경계선인 만큼 추호의 흔들림 없이 이를 지켜야 한다는 것은 명명백백한 진리인 셈이다.



 1953년 3월 5일 나는 그렇게 원산 앞바다의 미주리 함상에 있었고, 느닷없이 전해진 소련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의 사망 소식을 듣고 많은 생각에 휩싸였다. 그는 한반도에서 벌어진 처참한 살육전을 김일성과 함께 기획했고, 한편으로는 옆에서 김을 부추긴 주인공이었다. 김일성은 그런 그의 후원을 업고 이 땅 위에 피바람을 몰고 왔던 것이다. 그가 죽었으니 결정적인 정세(政勢) 변화는 불가피했다. 그런 변화에 직면해 있던 게 양측의 휴전협상이었다. 공산권을 이끄는 핵심적인 인물이 돌연 사망했으니 그 당시에 서방과 공산 측 사이에 가장 치열하게 불붙었던 이 땅 위의 전쟁은 커다란 전기(轉機)를 맞을 게 분명해 보였다.



 원산 앞바다에 떠 있는 미군 함정에서는 함포들이 거세게 불을 뿜고 있었다. 규모가 큰 전함(戰艦)급의 함정에서 날아가는 함포는 위력이 대단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전함 함포의 포탄 한 발은 약 1만 달러 정도의 가격이었다. 당시 고급 승용차의 대명사였던 캐딜락 한 대가 그 정도의 값이었으니 아주 비싼 포탄이 날아가는 셈이었다. 그래도 미군의 함포는 여전히 거센 포격을 가하고 있었다.



 그날 마침 클라크 제독이 이끄는 함대에서는 사고 한 건이 벌어졌다. 북한 지역으로 날아가 폭격을 마친 뒤 항공모함으로 귀항(歸航)하던 폭격기가 항모 갑판에 커다란 구멍을 내는 사고였다. 북한에 폭탄을 퍼붓다가 남겨둔 폭탄을 그대로 장착한 채 항공모함으로 돌아와 착륙을 시도하다가 갑판에 충돌해 폭탄이 터져 버렸던 것이다.



 심각한 사고였다. 규정상 미 해군 조종사는 항공모함으로 돌아올 때 폭격하다가 남은 폭탄은 모두 바다에 버린 뒤 착륙을 시도해야 했다. 조종사가 그 수칙(守則)을 어기고 착륙을 시도하다가 그만 사고를 냈던 것이다. 클라크 제독은 그런 사고 내용을 들은 뒤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를 정도로 화를 냈다. 그는 그 조종사는 물론이고, 그의 상사들을 미주리 함상으로 불러 호되게 꾸짖었다. 그는 잔뜩 화가 나 있었다. 아주 긴 시간 동안 그는 부하들을 야단치고 또 야단쳤다. 계급의 상하(上下)를 엄격하게 구분하지 않는 자유스러운 미군 사이에서는 좀체 보기 힘든 진풍경(珍風景)이었다.



정리=유광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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