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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실패 딛고 자라는 R&D







심재우
경제부문 기자




구미의 연구개발(R&D) 전문가들은 ‘Fail Fast, Fail Cheap’라는 말을 자주 쓴다. ‘빨리 실패하는 게 저렴한 실패’라는 뜻으로, 성공 확률이 낮은 일을 길게 끌어 봐야 손실만 커지니 빨리 손 떼라는 경구다. 하나 현장에선 이게 어디 쉬운 일인가. 연구과제 기안자나 이를 선택해 밀어준 관리자 입장에서 돈이 꽤 들어간 일의 중도 하차를 자인하기 힘들다. 인사 불이익이 돌아오기 일쑤니 생존의 문제다.



 삼성전자를 새 주인으로 맞게 된 국내 최대 의료기기 업체 메디슨을 보자. 과도한 사업 다각화와 투자에 발목 잡혀 2002년 부도를 맞은 메디슨은 법정관리를 거쳐 ‘턴어라운드(회생)’에 성공해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에 우량 매물로 나왔다. 극적 회생의 비결로 원만한 R&D 문화를 꼽는 이가 많다. 지난해 4월부터 대표이사를 맡아 온 손원길 부회장은 “R&D 인력들 간의 신뢰가 남달랐다”고 평했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꽤 진행된 프로젝트를 접을 때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연구원을 심하게 나무라지 않는 풍토”였다.



미국 IBM 회장을 지낸 톰 왓슨은 “성공을 원한다면 실패율을 두 배로 높여라”라는 역설을 폈다. 우리 기업과 정부의 R&D 체질은 아무래도 실패 자체를 용인하지 않는 쪽이었다. 현장에서도 실패를 피해 가는 길을 즐겨 선택해 왔다. 우리나라 고도성장에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 전략이 큰 힘이 됐지만 기실 해외 1등 업체가 닦아 놓은 길을 추종하는 ‘실패 기피형 R&D’였다. 지식경제부가 정보기술(IT) 융합 선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추격’을 지양하고 ‘퍼스트 무버(First Mover)’ 전략으로 전환하겠다고 20일 다짐한 건 반갑게 들린다.



 그러나 앞으로 글로벌 첨단 기술 경쟁은 더욱 격화하고, 개발비용은 꾸준히 불어날 수밖에 없다. 과제 건수가 많아지고, 그에 따른 연구 관리도 힘들어질 것이다. 그럴수록 예의 100% 성공지상주의는 곤란하다. 재원은 빤한데 싹이 노란 프로젝트를 끝까지 끌고 가도록 내모는 풍토를 개선해야 한다. 그 탓에 다른 귀중한 기회가 날아가고 있다. 시장 선도자 전략에는, R&D 방향을 뜯어고치고 투자비를 늘리는 것에 앞서 실패를 용인하는 연구실 안팎의 분위기 조성이 우선이다.



심재우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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