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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의 기적 소리 마지막 울림 … 추억 잡으려는 인파 몰려





폐선 하루 전, 중앙일보 기자 동승취재



추억 열차 경춘선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마지막 운행을 하루 앞둔 19일 경춘선 열차가 MT객들의 낙서가 가득한 강촌역사를 떠나고 있다. [김경빈 기자]





세월은 추억을 지운다. 2010년 12월 20일 오후 10시3분. 대한민국 중년은 두툼한 ‘청춘 앨범’ 하나를 잃었다. 대성리·가평·강촌…, 이름만으로도 설레던 MT 열차, 연애를 시작하면 꼭 다시 타리라던 낭만열차, 그 경춘선이 마지막 기적(汽笛)을 울려서다. 일제 강점기였던 1939년 7월 25일 사설 철도로 개통한 지 71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기자는 ‘고래사냥’을 내지르던 열정 대신 석별의 정 한 아름을 안고 춘천 가는 기차에 몸을 기댔다. 경춘선 마지막 열차가 서울을 떠나기 하루 전이다.









청량리역 플랫폼



 19일 오후 2시, 경춘선 폐선을 하루 앞둔 마지막 주말. 청량리역 플랫폼은 인파로 붐볐다. 알록달록한 파카를 입은 대학생들, 아이들 손을 잡고 나온 부부들, 등산복 차림으로 단체 나들이에 나선 중년들…. 이들은 다시 볼 수 없는 오렌지색 무궁화열차와 차체에 붙은 ‘청량리→남춘천’ 노선 안내판 앞에서 ‘인증샷’을 담느라 분주했다.



 오후 2시30분, ‘쉬익, 철컹~’ 열차가 몸을 움직였다. 가족여행을 온 박명인(39·서울 휘경동)씨는 발판을 밟아 좌석을 돌렸다. 아내와 아들 대운(7)군을 마주 보고 앉아 김밥과 삶은 계란, 생수를 차창 턱에 가지런히 정렬했다. 박씨는 “연애 시절 추억이 많았던 곳인데 없어진다니 무척 서운해 한 달 전에 예약했다”고 말했다.



 객실 내 통로 바닥엔 주로 중년 부인들이 신문을 깔고 앉았고 객차와 객차 사이엔 연인들이, 등을 마주 댄 좌석과 좌석 사이 삼각형 모양 공간은 아이들이 차지했다. 코레일 임석규 홍보팀장은 “경춘선이 사라진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올해 11월에만 승객 34만1000명(이용률 69.41%)이 이용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만5000여 명 늘었다”고 설명했다.









낭만·추억의 이동매점



 기차는 10분 뒤 첫 정차역인 성북역에 도착했다. 이용복(52) 승무원의 콧소리 섞인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우리 열차는 마주 오는 열차와 교행하도록 돼 있습니다. 옆 선로에 청량리행 열차가 들어오는 대로 출발하겠습니다.”



 7분간 정차했던 열차는 공사가 한창인 퇴계원역엔 정차하지 않고 지나쳐 오후 3시1분 사릉역에 멈췄다. 코레일 측은 퇴계원 하차 승객을 위해 사릉역에서 무료 연계 버스를 제공했다. 그때 4호칸에 작은 소란이 일었다. “카트 온다.” 앞 칸을 수도 없이 들여다보며 ‘이동매점’이 오기를 기다리던 영오(10)·진오(8) 형제가 엄마 박선영(42·서울 신대방동)씨에게 달려오며 외쳤다. 박씨는 “경춘선은 목적지보다 가는 과정 자체가 즐거운 코스였다”며 “아이들에게 느림과 여유를 맛보게 해 주고 싶어 데려왔는데 카트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며 웃었다. 빨간 제복을 입고 ‘낭만과 추억의 열차 식당’이라는 빛바랜 글자가 붙은 카트를 밀고 온 승무원 정영자(48)씨는 “1호칸에서 출발해 3호칸도 지나기 전에 물건이 모두 팔려 되돌아가 다시 물건을 채워 오는 길”이라며 “평일 매출에 비해 이날 세 배 이상 팔렸다”고 말했다. 이동매점은 21일부터 운행되는 경춘 전철에서는 더 이상 운영되지 않는다.



 오후 3시20분 열차는 대성리역에 도착했다. 경춘선에서만 36년을 근무한 신영수(55) 김유정역장은 “경춘선에서 내리는 젊은이들의 짐 보따리는 세월이 지날수록 작아졌다”고 회고했다. 70~80년대 학생들은 텐트에 먹을거리·기타·카세트리코더까지 싣고 왔으나 90년대 들어 현지에 노래방이 생기면서 기타를 가져오는 수가 줄고 카세트리코더는 ‘워크맨’이 대신했다. 90년대 들어서는 민박집이나 주변 식당에 아예 식단을 주문하고 오면서 짐은 더욱 간편해졌다. 신 역장은 “일요일 오후가 되면 대성리역 플랫폼은 거대한 노래방이었다”며 “서울로 돌아가려는 청춘들은 기차를 기다리며 둥그렇게 앉아 술판을 벌이거나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고 말했다. 그는 “비둘기가 운행하던 시절엔 창문으로 뛰어오르던 탑승객도 많았다”며 “이들이 떠나고 난 자리엔 점퍼·코펠·가방 등 분실물이 꼭 있었다”고 회상했다.









가평역



 오후 3시50분 열차가 가평역을 출발하자 객실 여기저기서 작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왼쪽 차창으로 북한강의 경치가 펼쳐졌기 때문이다. 곧이어 나타난 북한강철교 한가운데서 행정구역이 경기도 가평에서 강원도 춘천으로 넘어간다. 강 건너 나오는 경강역은 경기도와 강원도의 경계에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절경은 강촌역까지 10분 가까이 계속됐다. 박창재(37) 기관사는 “계절마다 산빛·물빛이 달라지고 물안개라도 끼는 날엔 그림처럼 아름다운 노선”이라며 “기관사들도 더 이상 이 길로 다니지 못하는 데 대해 친한 친구를 잃는 것처럼 아쉬워한다”고 말했다. 복선전철은 고가 철로여서 북한강 조망 위치가 좋아지지만 감상할 시간은 절반 가까이 줄어든다.



 오후 4시20분, 다시 콧노래 같은 안내방송이 나온다. “잠시 후 열차는 예정시간보다 7분, 7분 늦게 종착역인 남춘천역에 도착합니다. 교행열차 대기와 승하차 시간 지연으로 늦어진 점, 양해바랍니다. 내리실 때는 잊으신 물건이 없도록….” 중년 남성이 남춘천 역사를 나서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잘 가라, 경춘선아.”



경춘선=박태희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경춘선 역사는



- 1939년 7월 25일 경춘철도㈜가 사설 철도로 개통.



-1946년 5월 17일 경춘철도 국유화



- 1970년대 후반~90년대 대학가에 MT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수도권 청춘 문화의 상징이 됨



-2004년 3월 31일 통일호 운행 마감



-2005년 10월 1일 수도권 전철 공사로 춘천역 영업 중단



-2009년 1월 20일 마석 ~대성리 철로 새로 건설



-2009년 9월 1일 대성리~청평~상천 철로 새로 건설



-2010년 12월 20일 경춘선 시대 마감



-2010년 12월 21일 복선전철 운행 시작



-2011년 시속 180㎞ 전동열차 투입(서울~춘천 44분 주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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