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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용의 근대의 사생활] 회사원 연말 보너스, 1920년대 중반에 처음 지급



1896년에 설립된 한성전기회사 사옥. 이 회사는 한성전기주식회사, 한미전기 주식회사, 일한와사전기주식회사, 경성전기주식회사, 한국전력주식회사를 거쳐 한국전력공사로 이어졌다. 설립 당시에는 서울시내의 전차·전등사업만을 담당하던 작은 회사였으나 115년이 지난 지금은 2만 명에 달하는 사원을 거느린 세계적인 회사가 됐다. 회사는 회사원과 함께 근대화를 이끌었으나 지금은 둘 사이의 연계가 약해졌다. [사진 출처=『사진으로 본 한국백년』]

오늘날 직업을 가진 한국인의 반 이상은 ‘회사원’이다. 법무법인 변호사와 언론사 기자, 증권사 펀드매니저와 공장의 생산직 노동자는 서로 다른 직업인이지만 그래도 모두 회사원이다. 회사원이 아닌 사람도 회사를 상대하지 않고는 살지 못한다. 지금은 먹는 것 일부를 제외한 거의 모든 생필품에 회사 이름과 로고가 붙어 있다.

 1883년 10월 21일, ‘한성순보’에 ‘회사설’이라는 논설이 실렸다. 우리 역사 무대에 회사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이 논설은 ‘회사란 여러 사람이 자본을 합하여 여러 명의 농업, 공업, 상업의 시무를 잘 아는 사람에게 맡겨 운영하는 것’이라고 하여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회사의 첫째 특징으로 규정했다. 그 얼마 뒤 의주 상인들이 ‘의신회사’를 창립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회사다. 이후 회사는 계속 늘어났고 체계도 정비돼 1890년대 말에는 합자회사·주식회사 등의 이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주식회사는 1898년의 부선주식회사이고, 지금껏 원이름을 유지하고 있는 회사로 가장 오래된 것은 1905년에 설립된 광장주식회사다.

 그런데 이 시절에는 회사원이라는 말이 투자자와 같은 뜻으로 쓰였다. 회사의 운명에 연대책임이나 무한책임을 지는 사람들만 회사원이었고, 회사에 고용돼 급료를 받는 사람들은 ‘고원(雇員)’이나 ‘용인(傭人)’으로 불렸다. 고용인에도 여러 부류가 있어 부기나 경리 업무를 전담하는 사무원, 영업을 담당하는 외교원, 공장의 직공 등으로 나뉘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의 예를 따라 사원은 취체역이나 중역이라는 새 이름을 얻었고, 대신 사무직과 영업직 고용인이 회사원이라는 이름을 차지했다. 그러자 놀라운 ‘이름의 마술’이 펼쳐졌다. ‘지금 다니는 회사’가 갑자기 ‘우리 회사’로 바뀌었고, 회사와 자신이 운명적으로 결합됐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회사원과 그 가족들은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가 아니라 ‘같은 물건이면 우리 회사 제품’을 골랐다. 회사들은 고용인의 명칭을 살짝 바꿔 줌으로써 충성심에 불타는 엄청난 지원군을 얻었다. 회사들은 1920년대 중반부터 연말 보너스를 지급해 사원들의 충성에 답했다.

 그러나 지금의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다시 고용인이 됐다. 더불어 회사를 가족에 견주던 기업문화도 약해졌다. 차별 대우가 심한 데다 ‘정규직 전환’ 약속도 제대로 이행되지 않은 탓에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자기가 다니는 회사를 사랑하기보다는 원망한다. ‘사원들이 서로 사랑하기를 친척과 같이 하라’던 100년 전의 회사 규칙이 새삼 떠오르는 연말이다.

전우용 서울대병원 병원역사문화센터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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