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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말 놓기









가수 타블로는 한때 MBC ‘꿈꾸는 라디오’의 DJ였다. 이 프로그램의 백미라 할 코너가 바로 ‘어디야 뭐해’. 타블로가 사연을 보낸 청취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반말을 건넸다. “어디야?” “뭐해?” 그럼 받는 쪽도 “집이야” “공부해”라고 대꾸하는 게 규칙이다. 간혹 “공부해…요”라며 ‘반칙’하는 사람 역시 항의에 못 이겨 기어이 ‘요’자를 떼곤 했다. 나이 어린 학생도, 학생의 부모도 반말 공세 앞에 평등했다. 딸 전화를 대신 받은 어머니에게 “엄마야? 나 타블론데 ○○ 좀 바꿔줘” 식이다. “친근하다” “가족 같다”며 열성 팬들의 지지가 대단했다. 하지만 동방예의지국에서 웬 상놈의 방송이냐는 노여움도 분명 있었을 터다.



 외국 물 먹은 힙합 전사의 일탈이라 치부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한국 문단의 거목인 비평가 김현의 반말 예찬은 어떤가. 생전에 그는 어울리는 문인들에게 서로 말을 놓으라고 강요했다고 한다. 말을 높이면 벽이 생겨 관계가 원만해지기 어렵다는 게 이유였다. 출판사 ‘문학과 지성’ 그룹 중 막내뻘인데도 한두 살 많은 김치수·김주연은 물론 대학 3년 선배인 김병익과도 말을 트고 친구처럼 지냈다. “말을 놓지 못하면 벌로 술값을 내라”고 할 만큼 김현의 ‘말 트기 주의’는 집요했다(정규웅, 『글 속 풍경, 풍경 속 사람들』).



 그 어느 나라보다 존댓말과 호칭에 민감한 게 한국이다. 나이에 따른 위계질서가 뿌리 깊어서다. 흔히 다른 일로 시작된 싸움도 “왜 반말이냐” “주민등록증 꺼내 봐라”로 번지기 일쑤다. 이런 문화에 긍정적인 면이 있는 게 사실이지만 소통의 흐름을 가로막은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이에 반기를 든 것이 김현과 타블로만은 아니다. 한국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으로 오자마자 거스 히딩크가 뜯어고치려 한 것도 호칭 문제였다. 선후배 간의 엄한 규율 탓에 그라운드에서 의사소통이 매끄럽지 않은 점을 간파한 것이다. “무조건 서로 이름을 부르라”는 그의 주문에 당혹한 선수들. 변화의 물꼬를 튼 건 김남일이 최고참 홍명보에게 던진 한마디였다. “명보야, 밥 먹자!”



 얼마 전 미국 고교에 다니던 한국인 유학생끼리 주먹다짐을 벌인 끝에 한 명이 숨지는 참사가 벌어졌다. 동급생이지만 두 살 차가 나는데 이름을 부른 게 갈등의 원인이었단다. 요즘은 한국에서도 나이만 따지는 분위기는 아닌데 본고장인 미국까지 가서도 배우지 못한 게 안타깝다.



신예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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