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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北 민중을 깨워라

1980년 5월 필자는 광주의 고등학교 2학년생이었다. 언론이 통제돼 눈앞의 참극에 대한 정보의 갈증이 극에 달하자 북한 라디오방송을 듣게 됐다. 물론 과장된 선동 일색이라 가치 있는 정보는 얻을 수 없었다. 80년대 대학가에 주사파(主思派)가 등장하고, 북한의 대남방송을 듣는 운동권들이 적지 않았는데, 필자도 북한의 ‘구국의 소리’ 방송을 듣다가 구속된 적이 있다. 당시 주사파는 단일한 지도부가 없었지만, 경쟁세력인 민중민주(PD) 그룹에 비해 통일성이 잘 유지됐다. 북한의 대남방송 역할이 컸다.

북한 인권단체들이 대북 단파방송을 시작한 것은 2004년부터다. 현재 4개 방송사가 활동 중인데, 이 방송을 듣고 탈북을 결심했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예컨대 ‘김정일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비밀’이 대북 방송을 통해 널리 퍼져 그것이 다시 북한발로 한국에 전달될 정도다. 북한 정권은 주파수 고정형 라디오만 허용하는 한편, 주민들이 남한 방송을 들으면 가혹한 처벌을 하고 있다. 하지만 정보통제의 한계에 부닥쳐 그 역시 임계점을 넘은 것으로 파악된다.

흔히 북한 체제를 왕조체제에 비유하는데, 일인독재와 권력세습이 유사한 건 사실이지만 주민 통제와 억압에 있어서는 왕조체제와도 비교 불가능하다. 전(前) 근대사회에서는 기술적으로 완벽한 통제가 불가능했고, 노동당과 대규모 상비군 같은 통치조직을 가질 수 없었다. 고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증언에 의하면, 북한의 최고권력층조차 물 샐 틈 없는 도청과 동선의 감시를 벗어날 수 없다.
지난해 10월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북한을 ‘지구상의 지옥(Hell on Earth)’이라고 불렀다. 지난 6월 미국의 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는 1에서 7까지 등급이 분류된 ‘정치적 권리’와 ‘시민적 권리’ 부문에서 북한에 대해 모두 최악의 점수인 7점을 주었다. 북한은 이미 이런 등급의 의미조차 상실된 곳이다.

북한 정권은 폭압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외부 정보를 철저히 차단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대북 방송과 풍선을 이용한 전단 살포 등이 무너지는 둑의 작은 구멍 역할을 하고 있다. 향후 북한에 어떠한 변화가 일어날지 구체적으로 예상하긴 힘들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주민들의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각성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동구권 체제 붕괴 과정에서 경험했듯이 대안세력의 존재 여부가 혼란의 최소화, 재건의 성공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북한에는 체코의 하벨, 폴란드의 바웬사와 같은 재야의 저항세력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폭압체제에서 오로지 지하활동만 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을 계기로 지난 15일 민간 대북 방송사들이 청계광장에서 공개방송을 한 데 이어 한나라당 초선 의원들 일부가 실명으로 대북 전단 보내기를 추진하고 있다. 북한 주민을 직접 상대로 하는 정보전달은 그들에게 정신적인 양식을 제공하고 희망을 불어넣어 줄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으로 망명한 드골이 라디오방송을 통해 독일 점령하에 있는 프랑스인들의 저항을 호소해 자유 프랑스의 희망을 유지했듯이.

대북 방송사들의 역할에 비해 그동안 사회적 관심은 부족했다. 이들은 외국의 주파수를 임대하고 있으며, 관련 비용을 미국 정부와 민주주의재단(NED) 등에서 지원받아 왔다. 대북 포용정책 하에서 해외의존형 운영이 불가피했던 것이다. 북한 인권을 개선하기 위해 외부 압력도 지속돼야 한다. 하지만 북한 주민 스스로 다른 삶이 존재하고 이를 쟁취할 수 있다는 의식화가 더 중요하다고 볼 때, 대북 방송사들에 대한 한국 사회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




홍진표 서울대 총학생회 사무국장, 범민련 간사 등을 역임하며 세 차례 투옥됐으나 1997년 이후 북한 민주화운동과 뉴라이트운동을 펼치며 보수 논객으로 활약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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