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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지역 명장] 일제~1960년대 풍경 민화로 재현





김만희(79·서울무형문화재 제18호 민화장·사진) 옹이 안경을 살짝 들어올리자, 잿빛의 왼쪽 눈동자가 드러났다. 40대에 백내장이 와 시신경이 죽어버렸다. 민화를 시작한 지 10년쯤 됐을 때다. 독학으로 민화를 배우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눈을 혹사한 탓이다. 김옹은 “민화에 미쳐 뭔가가 가슴을 울리는 통에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는 대전의 사범학교를 나온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 하지만 그림이 그리고 싶었다. 1960년대 후반 초가집·서낭당 등이 이곳저곳에서 없어지자 그림으로 남겨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김옹은 “뿌리가 중국에 있는 동양화보다는 우리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는 민화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1968년 사표를 낸 후, 민화를 시작했으나 배울 곳이 없었다. 전국의 박물관, 사찰, 개인 수집가를 찾아다니며 만 점 이상의 민화를 조사했다. 낯선 곳을 찾아 사진을 찍어 대다 간첩으로 오해받은 적도 여러 차례였다. 72년 첫 전시회는 대성공이었다. 맥이 끊겨 버린 민화를 되살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국내에서 50회, 외국에서 15회 개인전을 열었다.

 김옹은 “민화는 그림에 담긴 뜻을 읽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민화에 흔히 등장하는 호랑이와 까치는 산신과 전달자를 의미한다. 옥황상제한테서 좋은 소식을 들은 까치가 산신한테 소식을 전하고, 산신은 백성에게 다시 전한다는 의미다. 커다란 잉어가 펄떡이는 그림은 ‘등용문’을 상징한다. 액막이용으로 민화가 쓰이기도 했다.

 김옹은 “우리나라 민화는 샤머니즘적인 성격이 강하지만 불교(십이지), 유교(효제충신·孝悌忠信), 도교(십장생) 등이 한데 섞여 복합적이고 다양하다”고 특징을 말했다. 그는 요즘 일제시대부터 60년대까지 한국의 풍경을 민화로 그리는 데 몰두하고 있다. “내가 겪은 풍속을 붓을 들 수 있는 그날까지 그릴 거예요.”

한은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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