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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욱 대기자의 경제 패트롤] 사라져 간 것들을 추억하며




박태욱
대기자


송이 굵은 눈다운 눈이 내렸고 알싸한 아침 공기에 귓불도 시린 게, 이제 겨울답다. 거리 곳곳을 치장한 색색 전등들은 크리스마스가 머지않았음을 깨우쳐 주고, 잊을 것 보낼 것 딱히 없어도 습관처럼 송년회다 망년회로 휩쓸려 들어가는, 연말이다. 그래서 일까?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인터넷판에서, 인터넷 때문에 사라지거나 바뀌는 것들을 콕콕 짚어준 기사(본지 12월10일자 12면)가 더욱 눈에 띈 것은. 모든 게 제 수준 따라 가는 법이라 했던가. ‘사실(fact)’이나 ‘예의 바른 태도(civility)’ 같은 성찰적(省察的) 주제보다 내게 더 가까이 다가온 것은 ‘편지쓰기’나 ‘CD’, 또 ‘휴가’ 같은 거였으니 말이다.

 되짚어 생각하면 참 익숙한 것들이었다. 이젠 e-메일조차 거의 하지 않고 있지만 한땐 편지 제법 썼었다. 문안편지며 위문편지 같은 ‘의무’ 편지부터 그때그때 마음을 적어 건넨 쪽지 편지에서 장문의 편지들까지. 가물한 기억을 아무리 늦춰 잡아도 편지란 걸 쓴 게 벌써 15년 저쪽 일이다. 내가 안 쓰는데 뭘 바랄까. 이젠 받아보는 것도 혼사나 장례와 관련된 인쇄된 감사편지 정도가 다인 듯싶다. 하긴 이번 기사가 아니라면 편지가 그렇게 사라졌구나 하는 느낌을 새삼 가졌을까조차 의문이지만.

 CD를 이젠 벼룩시장에서나 찾아볼 수 있게 됐다는 내용은 나로선 좀 의외였다. 지난 10월 말 일본 소니가 그 유명한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 ‘워크맨’의 일본 발매를 31년 만에 중단한다는 보도를 접했을 땐 ‘아 그럴 때가 됐구나’ 했던 것이, CD를 인터넷 전 시대의 유물로 취급한 뉴스위크 기사를 보곤 ‘아니 벌써’란 느낌이 훨씬 강했던 걸 보면. 집에 상당한 CD는 물론 LP-듣는 건 차치하고-를 갖고 있기도 하지만, CD의 쓰임새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일 거란 내 생각이 얼마나 흐름에 뒤떨어졌나를 새삼 느꼈다고 할까. 세월에 한 대 맞은 느낌, 뭐 그런 거였다.

 휴가란 항목에 눈이 간 건 좀 다른 이유에서였다. ‘인터넷과 함께 하는 휴가를 진정한 휴가라고 말하기 쉽지 않다’는 얘기, ‘e-메일이 생기기 전엔 블랙베리가 아닌 책 한 권 들고 불안감 없이 휴가를 즐기기가 훨씬 쉬웠다’는 얘기가 마음에 와 닿았기 때문이었다. 기술의 발달이 항상 사람을 편하게 한 건 아니란 얘기가 있듯 인터넷-휴대전화도 그런 면이 있지만-이 휴가지조차 일터로 바꾸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나 혼자만의 것은 아니었구나 하는 일종의 안도감마저 들었다. 일상에서 벗어난다는 것, 벗어난 데 대한 불안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 진부하게 들릴지라도 휴가의 본령은 그런 거라는 믿음에 다시 한 번 대못질을 했다.

 사라지거나 바뀌고 있는 주위의 것들과, 그에 대한 느낌이 누구나 같을 순 물론 없다. 사라져 아쉬운 것이 있는 만큼 사라져 고마운 것도 당연히 있을 게다. 그래도 그 모든 게 추억이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이 즈음, 그런 사라진 것들을 한번 생각해 보는 것도 좋겠다. 잊자는 망년회라 한들 남길 것이 왜 없겠는가. 그렇게 기억의 창고에 쌓아온 것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사라져간 모든 것들에 대해, 그동안 고마웠다는 감사의 마음을 다해, 앞으로도 마음엔 남아 있으리란 믿음을 더해, 어디론가 떠나 한잔하고 싶은 겨울 초입이다.

박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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