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home&] 푹신해 보이는 의자, 쇠붙이랍니다




눈으로 보고 냄새 맡으면 가죽이다. 하지만 만져보거나 앉아보면 쇠붙이다. 못 믿겠다면 직접 보시라.

금속은 차갑다. 그래서 금속으로 만든 공예품도 온기와 감수성을 품어내기가 어려웠다. 금속으로 펼칠 수 있는 기존의 상상력은 금속을 황금으로 바꾸고자 했던 고대 연금술사의 꿈 정도였을 거다. 그런데 요즘의 작가들은 이런 금속에 온기와 이야기를 담은 새로운 상상의 세계를 열어간다. 15일부터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2010공예트렌드페어’ 주제전에서 볼 수 있는 새로운 금속의 상상을 미리 만나봤다.

글=이정봉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쇠를 수만 번 두드려 가죽의 질감을 얻다

금속공예가 김경환(46) 작가가 만든 의자는 한 발짝 앞에서 보면 영락없는 가죽 제품이다. 하지만 앉아보면 깜짝 놀란다. ‘삐그덕’ 하는 쇳소리를 내는 딱딱한 철 의자이기 때문이다. “전시회를 할 때마다 관람객들이 그저 가죽으로 만든 가구인 줄 알고 생각 없이 지나쳐요. 앉아본 다음엔 모두 깜짝 놀라죠.”

이 의자는 철을 수만 번 두드려 가죽의 푹신한 질감을 불어넣었고, 산성 용액에 부식시켜 가죽 색깔을 띠게 했다. 특수 제작한 정으로 철판의 표면을 수천 번씩 내리쳐 실로 누빈 느낌을 줬다. 철판을 이을 때도 끝부분을 가죽처럼 울퉁불퉁하게 다진 다음 안쪽에서부터 용접했다. 가죽용 마감재를 발라 마무리했다.

1999년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비철(동) 작품으로 대상을 수상했던 이 작가는 지금 철로 작품의 세계를 바꿨다. 철은 둔탁하고 무겁고 쉽게 녹슬어 공예 작가들에게서 버림받았던 재료였다. 하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날카롭고 선명한 금속색을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 수없이 두드리면 철은 도자기처럼 바뀌고, 가죽처럼 바뀐다는 것이다. 그는 “망치로 두드려 철을 성형할 때 ‘가죽이다. 가죽이다’하고 머릿속으로 되뇐다”고 했다. 그렇게 철은 감쪽같이 가죽의 질감을 띠게 됐다.

빛으로 몸에 문신을 새기는 장신구




빛이 바로 장신구 그 자체다. 달걀 모양의 금속 브로치 안에서 빛을 쏘면 피부에 영롱한 문신이 어른거린다. [사진 제공 김계옥]

장신구는 본래 치장을 위해 몸에 덧붙이는 도구다. 브로치·반지·목걸이 등 장신구 자체가 하나의 오브제다.

하지만 금속공예가 김계옥(33) 작가가 생각하는 장신구는 좀 색다르다. 달걀 모양으로 생긴 브로치는 그 자체가 장신구가 아니라 매개체다. 이 달걀 안엔 LED광원이 숨겨져 있고, 몸에 붙이면 그 안에서 빛이 밖으로 쏟아져 나와 얼굴·목·팔 등 몸에 빛으로 만든 문양을 쏘아준다. 손으로는 만질 수 없는 빛으로 새겨지는 문신이 바로 장신구가 되는 것이다.

김 작가는 “만질 수 없는 것도 장신구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을 보이고 싶었다”고 말했다. 문양은 아프리카인들이 흔히 쓰던 문신 형태에서 따왔다. 런던의 로열칼리지오브아트에서 석사 과정을 할 때 세계 각지의 문신 문양을 정리하면서 모티프를 얻었다. 이 문양들을 70 g 무게의 동브로치에 새겨, 그 안의 광원을 통해 몸에 비추도록 했다.

이야기가 있다, 딱 하나밖에 없는 철물




파스타 면을 계량할 수 있는 고리. 시중에서는 구할 수 없는, 딱 한 사람만을 위한 제품이다. [사진 제공 이근세]

이근세(39) 대장장이가 운영하는 화성공장에서 만드는 물건은 공산품이 아니다. 이야기를 담아 딱 하나밖에 없는 물건을 만든다.

“친구 중에 조각가가 있습니다. 인체를 만드는 작업을 하는데, 두개골을 만들고 안구를 거기 넣기도 합니다. 그런데 안구를 넣는 모습이 딱해보이더군요. 그래서 ‘안구이식집게’를 만들어 줬습니다.” 이 집게라는 물건은 생김새도 다른 곳에서는 본 적 없고, 안구를 집어넣을 때 말고는 쓸 데가 없다.

이런 식으로 그는 필요한 사람 외에는 쓸 데가 없는 물건들을 만든다. 파스타 국수 묶음을 셀 수 있는 파스타 계량용 고리, 왼손잡이용 칼 같은 것들이다. 그래서 이번 전시회에 나온 그의 작품들은 작업 과정뿐 아니라 왜 만들게 됐는지도 들어야 한다. 그에게 공예는 기술·디자인이 아니라 스토리와 감성이다.

“현대에는 공산품 같은 차가운 물건이 넘쳐납니다. 기술도 훌륭하고 모양이나 디자인도 아름답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없어요. 물건에 이야기를 담는 것이 바로 공예의 핵심이고 감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올해 5회째 공예트렌드페어는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주관하는 ‘2010공예트렌드페어’는 국내 유일의 공예 전문 전시회다. 올해 5회째를 맞는 이 전시회는 15~19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회의 주제는 ‘Next Craftmanship-계승에서 응용으로의 전환’이다. 이제까지 공예 기술의 현대화를 이야기했다면 이번에는 공예 본연의 이야기, 그 인간적인 느낌을 더하자는 것이다. 이번 전시회의 하이라이트는 전시회장 한가운데 설치된 주제전이다. 김경환·김계옥·이근세·이광호 작가가 참여한다. 이광호(29) 작가는 각목·전깃줄 등으로 전시회 기간 동안 하나의 공예 작품을 완성하는 퍼포먼스를 펼친다. 작품을 만드는 동안 관람객들은 그와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다. 김형석 예술감독은 “그가 무엇을 만들지는 아무도 모른다”며 “관람객과 작가가 함께 할 수 있는 재미있는 행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회 관람료 5000원, 세미나 참가비 오전 세션 3만원, 오후 세션 4만원. 홈페이지(craftfair.kcdf.kr) 참조. 문의 02-398-7921.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