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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 의사의 삶 큰 울림, 청소년들 위해





추모영화 ‘울지마 톤즈’재상영



고(故) 이태석 신부(가운데)가 톤즈 마을 아이들과 목욕을 한 뒤 해맑게 웃고 있다. ‘울지마 톤즈’의 감독 구수환 PD는 영화에서 “이 신부의 헌신적인 사랑은 전쟁에 대한 두려움과 기아의 고통에 지친 아이들에게 웃음을 되찾아 줬다”고 말했다. [마운틴픽쳐스 제공]





지난달 17일 영화 ‘울지마 톤즈’의 개봉관 상영이 끝나는 날이었다. 아침 일찍 영화관을 찾은 인성교육단체 ‘밝은 청소년’의 임정희 이사장은 영화를 보는 90분 내내 눈물을 닦았다. 함께 온 아들은 “엄마, 내가 그동안 바보같이 산 것 같다”고 감동받은 느낌을 얘기했다. 다른 관객들도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까지 부은 눈으로 자리를 지켰다.



 ‘울지마 톤즈’는 아프리카 수단 남부의 톤즈 마을에서 8년간 의료 봉사를 하다 올해 초 대장암으로 선종한 이태석 신부의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다. 이 신부가 톤즈를 찾은 건 2001년. 한국인 신부로서는 최초였다.



 톤즈는 20여 년간의 내전으로 피폐해진 수단에서도 가장 가난한 동네였다. 이 신부는 톤즈의 유일한 의사였다. 그의 헌신적인 의료 봉사는 금세 인근에 알려졌다. “그곳(이 신부의 진료소)에 가면 살 수 있다”는 소문이 났다. 멀게는 100㎞ 밖에서 매일 300명이 넘는 환자가 찾아왔다. 그는 낮이든 밤이든 찾아온 환자들을 기다리게 하는 법이 없었다.



 병원이 자리를 잡자 이 신부는 학교를 세웠다. 이 학교엔 지금도 1400여 명의 아이가 다닌다. 그는 한센병 환자들에게도 관심이 많았다. 급할 때는 맨손으로 고름을 짜내고 약을 먹였다. 발가락이 없는 환자들의 발을 하나하나 그려 가죽샌들을 만들어 줬다. 톤즈 사람들은 이 신부를 “아버지”라고 불렀다. 그는 신부이자 아버지였고, 의사이자 선생님이었다.



 그러나 이 신부는 정작 자신의 병을 알지 못했다. 2008년 휴가차 한국에 들어온 그는 말기 대장암 진단을 받았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순간에도 그는 톤즈의 파다 만 우물을 걱정했다고 한다. 그리고 1년4개월의 투병생활 끝에 올해 1월 선종했다. 그의 죽음이 알려지자 전통적으로 눈물을 수치로 여기는 톤즈 주민들은 밤새워 울었다. 이 신부의 감동적인 스토리는 영화로 만들어져 지난 9월 개봉됐다. 다른 영화들처럼 대대적인 홍보를 하지 않았음에도 영화는 조용히 입소문을 탔다. 두 달간 상영돼 18만 명이 관람했다.



 하지만 임 이사장은 더 많은 청소년이 이 영화를 볼 수 있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경쟁에 내몰려 돈과 사회적 지위를 진로 선택의 기준으로 삼는 아이들에게 ‘이웃 사랑’과 ‘나눔’의 가치를 가르치고 싶었다. 삶을 돌아보는 계기도 갖게 해 주고 싶었다.



 이 영화는 그 교재로 안성맞춤이었다. 임 이사장은 감독인 구수환 KBS PD를 찾아가 재상영을 허락해 달라고 요청했다. 구 PD는 흔쾌히 승낙했다. 배급사인 마운틴픽쳐스는 수익을 포기했고, 롯데시네마는 상영관을 제공했다. 쉬운 결정이 아니었지만 임 이사장의 설득에 기업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롯데시네마는 학생들이 부담 없이 볼 수 있도록 관람료를 절반(2500원)으로 낮췄다.



 영화는 14일부터 31일까지 롯데시네마 전국 29개 상영관에서 조조영화로 관람할 수 있다.



이한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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