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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기업인의 약속은 빚이다







이상재
경제부문 기자




안과용 의료기기를 유통하는 기산과학의 강태선 대표는 대학 입시철인 요즘 은근히 설렌다. 20여 년 전의 약속을 지킬 수 있어서다. 1987년 두 명의 직원을 데리고 창업할 때 그는 “앞으로 20년 뒤 임직원 자녀에게 대학 등록금을 지급할 만큼 넉넉한 회사를 만들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강 대표는 “내년에는 수혜 대상이 3~4명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며 “이런 사소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아무리 힘들어도 다시 힘을 내곤 했다”고 회고했다.



 버스운송회사인 KD그룹 임직원 9000여 명은 올해도 어김없이 김치 두 상자(15㎏)씩을 받았다. 이 회사는 2001년부터 김장철 때마다 회사에서 담근 김치를 선물하는 ‘전통’이 있다. 김치 맛이 유별나게 좋아 직원 가족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그런데 최근 배추·무·고춧가루 등 재료 값이 다락같이 오르면서 직원들 사이에선 ‘혹시 올해는 (김치 지급을) 건너뛰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다. 그러나 허명회 회장은 아무 말 없이 ‘김장 결재서류’에 사인했다. 회사 관계자는 “예년에 비해 김장비용이 두 배로 들었다”면서도 “그러나 회사가 약속을 지킨 덕분에 직원의 기쁨도 두 배가 됐다”며 웃었다.



 건자재 전문기업인 이건창호는 90년부터 일반인을 초청해 무료로 정통 클래식 음악을 들려주는 ‘이건음악회’를 하고 있다. 지난달로 21회째를 맞았다. 연인원으로 13만여 명이 이 음악회를 다녀갔다. 외환위기 당시 적자 상황에서도 박영주 회장은 “음악회는 회사의 브랜드”라며 음악회를 개최했다. 덕분에 지금 이 회사는 ‘메세나 기업의 대명사’로 불린다. 박 회장은 2005년부터 한국메세나협의회장을 맡고 있다.



 사정이 어려워지면, 특히 불황이 오면 기업들은 ‘마른 수건도 다시 짠다’며 비용 줄이기에 나선다. 외환위기 때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그랬다. 형편이 어려운 중소기업일수록 더 절박하다. 물론 아낄 것은 아끼고 줄일 것은 줄여야 한다. 그러나 강태선 사장과 허명회 회장, 박영주 회장에게 약속은 반드시 갚아야 할 ‘부채’였다. 약속을 이행한 덕분에 이들은 충성스러운 직원을 둘 수 있었고, 신뢰감 있는 브랜드를 만들 수 있었다. 연말이다. 송년회 일정 챙기기 전에 올 초 직원과, 주주와, 사회와 약속한 내용을 다시 꺼내볼 때다.



이상재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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