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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다시 세모를 앞두고







문태준
시인




조선 중기 여류시인 이옥봉(李玉峰)의 시를 읽었다. 그녀는 서녀(庶女)의 신분이었다. 정실부인이 되지 못하고 소실(小室)로 들어가 살았으나 친정으로 다시 내쳐졌다. 생몰이 분명치 않으나 온몸에 시를 적은 종이를 수백 겹 묶은 채 한 포구에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는 설이 있다. 그녀는 시 ‘몽혼(夢魂)’에서 이렇게 썼다. “그대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달빛이 비단 창가에 비추니 저의 한이 한층 깊습니다. 만약 제 꿈 속 넋에게 발이 있어 걸어다니며 자취를 남길 수 있다면 그대 집 문 앞 깔려 있는 돌길의 반쯤은 모래가 되었을 거예요.”



 사랑하는 이에 대한 그리움이 지극하게 표현되어 있다. 나는 “돌길의 반쯤이 모래가 되었을 거예요”라는 대목에서 그 뭐랄까 수없이 반복되는 간곡한 행위와 길디 긴 시간의 지속 같은 것을 실감하고선 뭉클하게 압도되었다. 돌이 모래가 되는 시간이라니. 그녀의 그 시간들에는 얼마나 애절하고 가슴 태우는 심사가 가득 차 있었을까. 최근 내가 시간에 대해 나름 궁구하게 된 것은 이 시를 읽고 난 직후부터다.



 시간은 밤낮 없이 흐른다. 중국 송나라 명문가 소동파는 황저우(黃州) 유배 시절에 지은 ‘적벽부’에서 이렇게 읊었다. “물은 밤낮 없이 흐르지만 한 번도 저 강이 가버린 적이 없고, 달은 찼다가 기울지만 끝내 조금도 없어지거나 자란 적이 없다오.” 이 시를 통해 항심(恒心)이라는 고상한 뜻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유장하게 흐르는 시간과 그에 비하여 유약하기 그지없는 인간 존재를 읽어낼 수도 있겠다.



 시간은 흐르는 물 같고 차고 스러지는 달 같지만, 주체에 따라 시간을 감각하는 내용은 달라진다. 시간은 균질하지 않다. 가령 시다야크족은 하루치의 시간 각각에 의미를 부여했다. 일출 때에는 수렵과 낚시와 여행을 삼갔지만 이 시간대에 태어나는 아기는 행복하다고 믿었다. 오전 아홉 시는 특히 불행한 시각으로 여겼다. 길을 떠나면 강도를 만난다고 했다. 정오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오후 3시는 전투의 때로 적과 강도를 만나더라도 능히 물리칠 수 있다고 믿었다. 일몰의 시각은 잠시 길한 때라고 믿었다. 하루치의 시간 안에서도 강약이 있고, 묽은 것과 짙은 것이 있다고 믿었다.



 세모(歲暮)가 턱 밑이다. 송년회 등 약속이 많은 때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공유한 추억의 한 자락을 끄집어내기도 한다. 세모 즈음의 이 시간에 대해 느끼는 감회도 각양각색이다. 그러나 세모라는 시간이 일단락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삶의 시간은 멀고 먼 여행이다. 그래서 세모라는 시간에 우리가 완결된 구조를 만들려고 하는 것은 헛되고 미덥지 못한 일이 될지도 모른다.



 우리에겐 새로운 창조 속에서 새로운 생을 시작하려는 갈망이 있다.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신성한 시간 속에서 언제나 살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이유로 우리는 이 세모의 시간을 내일의 신성을 위한 준비의 시간으로도 살아야 한다. 마치 파종할 씨앗을 준비해 밭에 나가는 봄의 농부처럼. 새로운 내일이 ‘밀려온다’고 말하면 너무 버겁게 느껴질까. 그러나 간조와 만조가 반복되는 게 우리의 일상이다.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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