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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시장 원칙 깨더라도 ‘스페인 독감’ 꼭 잡겠다

통화의 지킴이는 중앙은행 총재들이다. 그들의 어깨에 통화 가치를 사수하는 의무가 지워져 있다. 그들이 돈의 신전 지성소를 지키는 제사상으로 불리는 까닭이다. 그런데 최근 유로화의 지킴이가 바뀌고 있다. 유로 신전의 지성소를 지키는 의무가 장 클로드 트리셰(68)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에서 앙겔라 메르켈(56·사진) 독일 총리한테로 이전되고 있다.

유로화 파수꾼 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유럽연합(EU)과 ECB의 협약이나 규정이 바뀌어서가 아니다. 사실상 유로의 운명이 메르켈 총리에 달렸다는 얘기다. 유럽의 재정위기 탓이다. 위기가 그리스와 아일랜드를 넘어 포르투갈과 스페인으로 번지고 있다. 그리스나 아일랜드에서는 긴축에 따른 침체 때문에 정치·사회적 갈등마저 불거지고 있다. 사태가 트리셰 ECB 총재 혼자 유로 시스템을 지킬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섰다. 최대 흑자국 독일의 메르켈이 나서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러나 “메르켈은 독일이라는 한 나라의 차원을 뛰어넘은 과제들을 해결해야 하는 운명”이라고 영국 BBC 방송이 최근 보도했다. 당장 그는 스페인으로 번지는 위기의 불길을 잡아야 한다. 스페인은 그리스나 아일랜드·포르투갈과는 차원이 다르다. 경제 규모가 유럽 4위다. 유로존 총생산의 11.2%를 차지한다. 스페인의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11.2%다. 유로 회원국 가운데 아일랜드(14.3%)와 그리스(13.5%) 다음으로 재정적자가 심하다.

스페인에도 구제금융 투입 뜻 밝혀
스페인이 유럽 금융회사들에 짊어지고 있는 부채는 6566억 달러(750조원)나 된다. 게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불어나는 눈덩이 같다. 스페인은 앞으로 3년 동안 해마다 1600억 달러 이상을 빌려야 한다. 기존 부채의 원금을 상환해야 할 뿐만 아니라 해마다 1600억 달러에 이르는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서다. <그래프 참조>

반면 스페인의 돈 들어올 구멍은 거의 막혀 있다. 경제는 침체다. 경상수지 적자는 GDP의 3% 수준이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늑대들(헤지펀드 등)’에겐 딱 좋은 먹잇감이다. 이미 늑대들이 포위공략 중(울프팩)이다. “헤지펀드들과 채권 트레이더들이 스페인 국채를 덤핑하고 있다.” 헤지펀드들에 투자자문을 해주고 있는 로리 나이트 전 옥스퍼드 비즈니스스쿨 학장은 2일 중앙SUNDAY에 보낸 e-메일을 통해 이렇게 진단했다.

스페인 사태 때문에 자금경색 조짐마저 나타났다. 영국 런던의 3개월 만기 달러리보(은행 간 금리)가 지난달 22일 이후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석 달짜리 달러리보는 세계 단기 자금시장의 온도계다. 주가보다 먼저 위기를 감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금융위기 초기에 글로벌 주가가 고공행진했지만 리보금리는 요동하며 위기 시그널을 보냈다. 그리스 사태 때는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리보금리가 빠르게 오르고 있다는 점은 시장이 스페인 사태를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일 수 있다.

실제 “요즘 유럽 기업들이 단기 자금을 조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가 이달 1일 보도했다. 월가 사람들이 말하는 ‘스페인 독감(스페인발 금융위기)’이 본격화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스페인 독감은 1910년대에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스페인에서 시작돼 세계로 퍼져 2000만 명을 희생시킨 사태를 말한다.

메르켈 실험, 절반의 성공
메르켈은 일단 긴급 처방에 매달리고 있다. 구제금융 투입이다. 올 5월 조성해 놓은 구제금융 9700억 달러를 아낌없이 쏟아붓고 있다. 그리스와 아일랜드에 각각 1000억 달러 이상을 배정했다. 두 나라가 약속대로 허리띠를 졸라매면 돈을 주는 방식이다. 그는 사태가 스페인으로 확산되면 추가 구제금융을 조성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그러나 구제금융과 긴축 처방은 양날의 칼이다. 금융 상식에 비춰보면 빚을 진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매며 돈을 갚아야 한다. 문제는 ‘어느 정도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가’다. 지나친 긴축은 그리스·아일랜드뿐 아니라 유로존 경제를 침체에 몰아넣을 수 있다. 이러면 멀쩡한 다른 나라들도 위기를 맞아 결국 채권자 전체가 손해를 본다. 긴축은 채무국 국민의 격한 반발을 부르기 십상이다. 요즘 그리스나 아일랜드에서 벌어지는 시위도 그래서다.

메르켈은 통념을 깨는 패를 내놓았다. ‘금융시장에 대한 정치 우위(Primacy of Politics over Financial Markets)’를 천명했다. 정치적으로 필요하면 금융시장 원칙도 저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아일랜드 국민이 빚을 갚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니 채권자인 금융회사와 펀드 투자자들도 희생해야 한다는 의미다. 메르켈 같은 우파 정치인들이 1980년 이후 진리처럼 여기는 시장주의에 반하는 주장이다. 유럽 금융전문지인 유로머니는 이를 ‘메르켈의 실험’이라고 불렀다.

대형 금융그룹 사람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그들은 “금융시장 신뢰를 얻지 못하면 재정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고 소리쳤다. 양쪽이 정면 충돌할 기세였다. 하지만 위급한 상황에 눌려 양쪽은 타협했다. ‘경우에 따라’ 투자자(채권자)들도 원금 탕감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선에서 정리됐다. 메르켈의 주장에 ‘경우에 따라’라는 말을 덧댄 수준이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메르켈의 실험이 절반은 성공했다”고 지난주 평가했다.

문제는 구제금융 처방에 대한 원초적인 의구심이다. 많은 전문가는 유럽사태가 유동성 위기가 아니라 지급불능 사태라고 지적했다. 자산을 다 처분해도 빚을 다 갚을 수 없는 지경이라는 얘기다. 구제금융은 유동성 위기에나 맞는 처방이다. ‘닥터둠’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스페인 사태가 본격화하면 구제금융 처방의 한계가 분명히 드러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
로 지킴이 메르켈의 운명이 스페인에 달려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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