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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박’ 선생님의 은밀한 제안

50대 후반의 사업가인 P선생의 별명은 ‘골박’이다. 골프 실력도 실력이거니와 골프 규칙에도 정통해 언제부터인가 주변 사람들은 그를 골프 박사, 즉 ‘골박’이라 불렀다. 필드에 나가 라운드를 하던 도중 골프 규칙 적용을 놓고 동반자와 옥신각신하는 상황이 벌어졌다면 골박 선생을 찾으면 된다. 이른 새벽이건, 휴일 저녁이건 상관없다. 전화를 걸면 그는 기다렸다는 듯 주저 없이 명쾌한 판결을 내려준다. 이를테면 이런 경우다.

정제원의 골프 비타민 <140>

“티샷을 하기 위해 어드레스를 취했는데 공이 고마 티펙에서 떨어지고 말았습니더. 이럴 땐 1벌타 아잉교.”

“허허, 그런 경우가 곧잘 발생하지. 그렇지만 그런 상황이라면 벌타는 아닐세. 왜냐하면 말이지….”

골박 선생은 언제나 ‘왜냐하면 말이지’를 외친 뒤 신이 나서 설명해준다. 마치 이런 상황을 기다리기나 했다는 듯이-. 때로는 판례, 아니 골프 대회 도중 발생했던 프로골퍼들의 구체적인 사례까지 들어가며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한 번은 골박 선생에게 물었다.

“골박 선생님, 내기 골프를 하다 보면 골프 규칙 해석을 놓고 싸우는 경우가 허다하잖아요. 본의 아니게 저도 이런 논쟁에 휘말린 적이 있는데 이런 일을 미연에 방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래 그런 일이 무척 많이 일어나지. 왜냐하면 말이지, 그건 사람들이 너무 골프 룰에만 집착하기 때문이야.”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왜냐하면 말이지. 골프 규칙은 상황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있거든. 그러므로 나는 항상 이렇게 말하네. 골프 규칙은 동반자에게는 후하게, 본인에게는 엄격하게 적용하라고 말일세.”

“아, 좋은 말씀이군요. ‘동반자에게는 후하게, 본인에게는 엄격하게’ 하란 말씀이지요.”
“왜냐하면 말이지. 예를 들어 워터해저드에 공이 빠졌다고 가정해 봐. 만약 내가 그랬다면 1벌타를 먹은 뒤 공이 해저드에 들어간 지점의 직후방 지점이나 원래 샷을 했던 지점에서 다시 샷을 하란 거지. 그런데 만약 동반자의 공이 해저드에 빠졌다면 설령 그가 해저드의 앞쪽으로 걸어 나와 드롭을 한다 해도 얼굴을 붉히거나 화를 내지 말란 말이야. 다시 말하지만 본인에겐 골프 규칙을 엄격하게 적용하고, 동반자에겐 약간의 여유를 준다면 필드에서 내가 맞았네, 네가 맞았네 하면서 아옹다옹하는 모습은 사라질 거란 거지.”

나는 골박 선생의 말씀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이 양반은 ‘골박’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다니까. 나는 그를 존경스럽게 쳐다봤다. 그러곤 며칠 뒤 골박 선생과 함께 라운드를 하게 됐다. 아니나 다를까, 골박 선생의 샷은 빨랫줄이었다. 폼은 엉성했지만 나이에 비해 샷거리도 짱짱했고, 쇼트 게임도 예술이었다. 그는 몹시 흡족한 표정으로 동반자들에게 가끔씩 필드 레슨도 해줬다. 우리 일행은 다시 한번 그를 우러러보았다. 그런데 15번 홀에서 그 사건이 일어났다. 골박 선생은 나와 드라이브샷 거리가 비슷했는데 선생은 그만 내 공을 자기 공인 줄 알고 쳐버린 것이었다.
“어, 골박 선생님. 공이 바뀌었네요. 남의 공을 쳤다면 오구 플레이니까 2벌타 맞죠?”
난감한 상황이었지만 골프 규칙을 확인하기 위해 내가 이렇게 묻자 골박 선생은 주위를 돌아보며 은밀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게, 1벌타만 먹으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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