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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을 버리면 신보다 위대한 존재가 될 수 있다”

스리랑카에 있는 아우카나 불상은 5세기 이후 작품이다. 스리랑카에서는 결혼식 전날 스님들이 축복 의식을 올릴 때 『숫타니파타』에 나오는 구절을 낭송한다.
“나는 무엇을 먹을까?”
“나는 어디서 먹을까?”

세상이 주목한 책과 저자 <10>『 숫타니파타』

“어젯밤 나는 잠을 편히 자지 못했다.”
“오늘밤 나는 어디서 잘 것인가?”

집을 버리고 진리를 배우는 사람은, 이러한 네 가지 걱정을 극복하라.
이 구절들은 최고(最古) 불교 경전인 『숫타니파타』에 나온다. 마지막 질문을 제외하곤 음주나 야근으로 수면이 부족한 직장인들이 점심에 무엇을 어디서 먹을지 ‘고민’하는 일상의 장면을 연상하게 한다.

비교종교학의 관점에서 보면 불교는 심원한 철학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적어도 『숫타니파타』가 드러내는 초기 불교는 생활인을 위한 근심·걱정 탈출 프로그램을 제시하는 종교이기도 했다.

법정(法頂) 스님이 우리말로 옮긴 『숫타니파타』(도서출판 이레)
기원전 1세기경 스리랑카서 문자화
남전대장경(南傳大藏經)에 속하는 『숫타니파타』는 1세기경 스리랑카에서 문자화됐다. 부처의 말을 가장 충실히 보존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구송(口誦)을 위한 1149수의 운문시(韻文詩)로 구성됐다. 숫타는 팔리어로 ‘말의 묶음(經)’, 니파타는 ‘모음(集)’을 뜻한다. 우리나라에 잘 알려져 있지 않던 『숫타니파타』를 번역해 널리 소개한 사람은 법정(法頂) 스님이다. ‘부처님 말씀 모음집’인 『숫타니파타』는 사성제(四聖諦)·팔정도(八正道)·십이연기(十二緣起)와 같은 원시불교의 중심 교리도 쉬운 말로 풀어냈다. 『숫타니파타』의 초점도 일상적인 문제에 맞춰져 있다.

근심·걱정이 없는 사람은 없다. 근심·걱정을 없앤다면 삶이 더 풍성해질 것이다. 근심·걱정을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부처에 따르면 근심·걱정의 원인인 집착을 제거해야 한다. 부처는 이렇게 말한다.(이하 고딕글자는 숫타니파타 경전 말씀. 명조글자는 필자해설)

-우리들을 생존에 얽어 매는 것은 집착이다. 그 집착을 조금도 갖지 않은 수행자는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린다.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버리듯.
우리는 뭔가를 버릴 때 과연 그 물건이 쓸모가 없는지 따진다. 집착을 버려도 되는 것일까. 집착에도 용도가 있지 않을까. 파피만이라는 악마가 부처에게 집착의 효용성을 그럴듯하게 역설한다.

-자녀가 있는 이는 자녀로 인해 기뻐하고, 소를 가진 이는 소로 인해 기뻐한다. 사람들은 집착으로 기쁨을 삼는다. 그러니 집착할 것이 없는 사람은 기뻐할 것도 없으리라.
사랑과 그리움에 고통이 따른 법

-자녀가 있는 이는 자녀로 인해 근심하고, 소를 가진 이는 소 때문에 걱정한다. 사람들이 집착하는 것은 마침내는 근심이 된다. 집착할 것이 없는 사람은 근심할 것도 없다.
인간이 사랑만큼 집착하는 것도 없다. 그런데 부처는 사랑을 근심과 결부시켜 이렇게 말한다.

-만남이 깊어지면 사랑과 그리움이 생긴다. 사랑과 그리움에는 고통이 따르는 법. 사랑으로부터 근심·걱정이 생기는 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투쟁·논쟁·근심·슬픔·인색·오만, 거친 말은 사랑하고 좋아하는 데서 일어난다.
부처는 사랑뿐만 아니라 우정이나 가정생활에 대해서도 경계하는 발언을 한다.

-친한 데서 두려움이 생기고 가정생활에서 더러운 먼지가 낀다. 그러므로 친함도 없고 가정생활도 없다면 그것이 바로 성인의 생활이다.
집착을 끊어 근심·걱정을 없애려면 사랑·우정·가정이 주는 기쁨과 행복도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부처는 행복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부모를 섬기고 아내와 자식을 사랑하고 보호하는 것, 일에 질서가 있어 혼란스럽지 않은 것,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다.

-남에게 베풀고 이치에 맞게 행동하며 적을 사랑하고 보호하는 것, 비난을 받지 않게 처신하는
것. 이것이 더 없는 행복이다.
부처는 사랑과 같은 인간의 기쁨과 행복에 반대하는 게 아니다. 그가 우려하는 것은 집착이라는 ‘불순물’이 끼어 사랑·우정·가정의 본질이 훼손되는 것이다.

물론 부처는 출가한 수행자들이 세상이 주는 기쁨과 행복을 초월해 보다 큰 진리를 지향하기를 바랐다. 출가자의 길과 재가 신자의 길에는 차이가 있었다.

출가자들이 지향해야 하는 것은 해탈이다. 다시 태어나지 않는 것이다. 해탈을 위해서는 모든
인간적인 욕망을 포기해야 한다. 부처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욕망에 머무르지 않고 집착을 없애고 온갖 의혹을 초월한 사람, 그에게는 따로 해탈이 없
다.

-온갖 빗나간 생각에 흔들리지 말고, 계율을 지키고 지혜를 갖추어 모든 욕망에 대한 집착을 버린 사람은 다시는 인간의 모태에 드는 일이 없을 것이다.
모든 욕망을 포기한 출가자들은 부처처럼 될 수 있다. 부처란 무엇인가. 부처를 이르는 말 중에는 ‘신(神)과 인간의 스승’이라는 게 있다. 돈·권력·명예·섹스뿐만 아니라 사랑·우정·가정 같은 욕망을 포기한 출가자는 그 대신 신보다 더 위대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불교의 이상이 『숫타니파타』에도 나와 있다. 잃는 것과 얻는 것을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출가자들과 달리 재가자들은 ‘좋은 곳’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부처는 말한다.

-열심히 살고 있는 재가자는 죽은 후 ‘저절로 빛이 난다’는 신들 곁에 태어나리라.
그러나 출가자와 재가자의 차이는 미리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인간 각자의 선택 문제다. 부처는 지극한 ‘평등주의자’였다. 그는 말한다.

출신 천해도 행동 삼가면 고귀해져
-몸을 가지고 태어난 생물 사이에는 각기 구별이 있지만, 인간에게는 그런 구별이 없다. 인간 사이에서 구별이 있는 것은 다만 그 이름뿐이다.
그러나 부처가 처한 현실에도 귀천의 차이가 있었다. 부처는 귀천의 차이가 출생이 아니라 행위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출생을 묻지 말고 행위를 물으라. 불은 온갖 섶에서 일어나는 것. 천한 집에 태어난 사람이라도 믿음이 깊고 부끄러워할 줄 알고 뉘우치는 마음으로 행동을 삼가면 고귀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날 때부터 천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바라문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 행위에 의해 천한 사람도 되고 바라문도 되는 것이다.

바라문(婆羅門·브라만)은 부처 당시 브라만교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사제계급이었다. 초기 불교에서도 이상적인 수행자를 바라문이라고 불렀다. 부처는 사문(沙門)이라고 불리는 신흥사상가 중 한 명이었으나 『숫타니파타』에서 부처는 바라문이라고도 불린다. 고귀한 바라문이 되려면 행동이 중요하다는 부처의 말은 초기 불교가 깨달음 못지않게 행위를 강조한 종교라는 것을 예시한다.

행위의 강조에 있어서 부처는 ‘래디컬(radical)’한 입장이었다. 일반인들은 인간이 다음 세상에서 다시 인간으로 태어난다는 게 쉽다고 ‘오해’하기 쉽다. 부처의 잣대는 엄격했다. 『숫타니파타』에는 ‘12가지 파멸의 문’이 나온다. 인간을 지옥이라는 파멸로 이끄는 문이다. 이런 것들이다.

늦잠, 자기 자랑도 파멸의 길
-아무 때나 잠자는 버릇이 있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버릇이 있고, 분발하여 정진하지 않고 게으르며, 걸핏하면 화를 내는 사람이 있다. 이것은 파멸의 문이다.

-혈통을 뽐내고 재산과 가문을 자랑하면서 자기 친척을 멸시하는 사람이 있다. 이것은 파멸의 문이다.

-크샤트리아 집안에 태어난 사람이 권세는 작은데 욕망만 커서, 이 세상에서 왕위를 얻고자 한다면, 이것은 파멸의 문이다.
부처의 말에 따른다면 늦잠 자는 사람들, 자기 자랑 좋아하는 사람들, 능력이 안 되는데 대권을 노리는 정치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파멸이다.

부처는 거짓말도 용납하지 않는다. 부처에게 거짓말은 누구나 하면서 살아가는, 눈감아 줄 만한 인간적 약점이 아니라 지옥에 떨어질 죄다. 부처는 말한다.

-거짓말을 하는 자는 지옥에 떨어진다. 또 했으면서 안 했다고 하는 자도 마찬가지다. 둘 다 똑같이 행동이 비열한 사람들이라, 죽은 후에는 똑같은 지옥에 떨어진다.
부처가 말하는 지옥과 지옥살이의 실상도 끔찍하다.

-피고름이 가득 찬 솥이 있어, 죄를 지은 자는 그 속에서 삶긴다. 그는 어디로 가든지 피고름 때문에 더럽혀진다.

-죄를 지은 자가 살아야 하는 지옥에서의 삶은 실로 비참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생명이 남아있는 동안 해야 할 일을 하고 헛되이 지내지 말아야 한다.

-홍련지옥(紅蓮地獄)에 떨어진 자의 수명은 수레에 실은 깨알의 수만큼 된다고 지혜로운 사람들
은 헤아렸다. 즉 그 햇수는 5조 년과 5000만 년이다.
현대인들은 부처의 말을 수용할 수 있을까. 수용을 막는 게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 부처는 말한다.

-논쟁을 좋아하고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하는 수행자는, 눈뜬 사람의 설법을 알아듣지 못한다.
부처가 살던 시대가 오늘과 너무 다르다는 게 주저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부처의 설법을 향해 마음을 열면 오늘의 문제에도 영감을 얻을 수 있다. 예컨대 빈부 문제에 대해 부처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그는 우선 모두에게 해당하는 다음과 같은 대원칙을 말한다.

-모든 괴로움은 물질로 인해 생긴다. 물질에 대한 집착을 남김없이 없애버리면 괴로움은 더 이상 생기지 않는다.
부처는 부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엄청나게 많은 재물과 먹을 것이 풍족한 사람이 그것을 혼자서만 독차지한다면, 이것은 파멸의 문이다.
가난한 이들에게는 이렇게 말한다.

-‘이것이 내 것이다’ 또는 ‘이것은 남의 것이다’ 하는 생각이 없는 사람, 그는 내 것이라는 관념이 없으므로, 내게 없다고 해서 슬퍼하지 않는다.
부처의 생각은 어쩌면 수월성을 강조하는 교육과도 맞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뛰어나다’든가 ‘나는 뒤떨어진다’ 또는 ‘나는 동등하다’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다종교사회의 종교 갈등에 대해서 부처는 어떤 생각을 할까. 그는 말한다.

-진리는 하나일 뿐, 둘은 없다. 그 진리를 안 사람은 다투는 일이 없다.
진리가 하나라는 인식이 종교 분쟁의 원인이 아니라 오히려 종교 평화의 원인이라는 게 기원전 6세기 사람인 부처가 오늘에 던지는 신선한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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