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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그리려는 사람들

사막! 하늘과 땅, 그 사이에 모래, 그리고 하룻밤에 지형을 바꾸는 바람…. 사막은 그런 곳이었다.

2003년 4월 아랍에미리트(UAE) 토후국 중 하나인 샤자에서 비엔날레가 열렸다. 중동 국가 전시를 해본 적이 없었던 나는 이슬람문화의 정교함과 생활 그 자체였던 종교의 경건함에 놀랐다.
전시 준비를 하면서 주말을 이용해 몇몇 작가들과 사막여행을 떠나게 됐다. 자동차로 한 시간 달린 후 도착한 사막, 우리는 낙타의 등에 올라탔다. 우리를 태운 낙타가 일어나는 순간, 낙타 등이 의외로 높아 눈앞에 모래바람이 휘돌고 있는 것처럼 아뜩해졌다.

낙타를 타고 줄지어 가던 중이었다. 공교롭게도 내가 무리의 맨끝에 가게 되어서일까? 뭔지 모를 불안이 가슴을 스쳤다. 그리고 불안은 언제나 현실이 된다. 눈 깜짝할 새 낙타를 끌던 사람이 낙타를 앉혀놓곤 사라졌다. 앞서가던 일행의 낙타 그림자도 사라졌다. 나는 진공 상태가 됐다. 어디를 봐도 모래뿐인 사막에 홀로 남겨진 것이다. 모래바람 외에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더위를 피해 해질녘의 걸음을 선택한 탓에 어둑어둑한 불안감은 점점 나를 옥죄어오고 있었다.

그 순간 낙타몰이가 나타났다. 의사소통도 할 수 없는 그가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모르는 절박한 상황이었지만, 광활한 사막에서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침착할 수 있는 용기는 생겨났다. 우리는 부지런히 걸었다. 얼마를 그렇게 갔을까? 드디어 함께 온 일행의 낙타 그림자가 보였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시계를 보니 불과 10여 분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러나 내게는 10시간보다 더 길게 느껴졌다. 그때의 두려운 느낌은 그 후로도 내 기억 저 밑바닥에 가라앉아 비슷한 상황이 생길 때마다 얼굴을 쳐들고 나타난다.

하지만 나는 그때, 그 공포의 순간에 바람을 보았다. 아름다운 능선을 순식간에 만들고 또다시 어디론가 미련 없이 이동하는 바람, 나는 내가 본 많은 바람에 대해 생각했다. 봄볕 아래 소꿉질하는 소녀의 살랑거리는 여린 머리카락에서는 봄바람을, 억수로 쏟아지는 소낙비에 뒤집어진 까만 우산에서는 여름바람을 보았다.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 속에서 숨은 가을바람을 찾았고, 두꺼운 코트 자락을 감아올리며 나를 괴롭혔던 겨울바람을 기억했다.

사계절. 그 대자연의 변함없는 변화 속에서 바람은 끊임없이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엄밀하게 말하면 바람은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다. 하지만 아주 명징하게 느낄 수 있다. 예술가란 바로, 볼 수 없는 것을 보여주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스스로를 사기꾼이라 하기도 하고 종교인에도 비유된다. 예술이란 그들과 마찬가지로 대답 없는 선(禪)을 향하여 던지는 무수한 자기독백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이유 없는 작품을 만들고 싶지 않다. 단지 유행을 좇듯 변화를 작품에 녹여내고 싶지 않아서다. 빛으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욕망이 카메라를 발명하게 했고, 안테나의 소음에서 우주의 기원과 빅뱅이 밝혀졌다. 친구의 장난을 뒤집어쓰고 퇴학을 당해 정규 대학의 입학 기회마저 박탈당한 뢴트겐은 X선이라는 새로운 광선을 발견해냈다.

아주 우연한 경험이 필연적으로 나의 눈을 열어 줄 때가 있다. 그것은 세상이 보내는 신호와 흔적을 좀 더 세심하게 응시하게 도와준다. 그래서 나는 믿는다. 내게 다가온 그것들을 예리하게 인지해 시대와 영역을 아울러 변화시킬 때, 사막의 길잡이 북극성이 내 머리 위를 환하게 비춰줄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맞바람 맞으며 난 오늘도 바람을 그려본다.





안필연 환경조각가. 서울대 미술대학과 대학원에서 조소를 공부했다. 설치미술에 행위미술을 접목해 새롭고 강한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들을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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