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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양적 완화

금융버블이 발생하면 부수적으로 신조어들이 탄생하기 마련이다. 1980년대 후반 사무라이본드, 스시본드, 하라키리스와프, 토킨계정 등 선뜻 이해하기 힘든 일본식 금융 용어들이 만들어졌다. 이들 용어는 도쿄뿐 아니라 미국 뉴욕, 영국 런던, 독일 프랑크푸르트 등 세계 금융 중심지에서 즐겨 쓰였다.

On Sunday

일본의 거품 붕괴 이후 상황이 돌변했다. 주식과 부동산 가격이 폭락했다. 거품시대 일본의 위상을 짐작하게 한 일본식 금융용어들도 사라졌다.

대신 20년에 걸친 초장기 침체가 낳은 일본식 금융용어가 유행어로 자리잡았다. ‘료테키킨유칸와(量的金融緩和)’다. 우리말로는 양적 완화(Quantitative Easing)다. 일본은행(BOJ)이 2001년 공식적으로 사용해 유명해졌다. 돈의 가격인 금리를 내려봐야 침체와 디플레이션이 치유되지 않자 화폐 인쇄기를 돌려 돈의 양을 늘린다는 뜻이다.

양적 완화는 2008년까지 일본에나 적용될 수 있는 특수한 정책이었고 용어였다. 하지만 2009년 9월 미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미국과 영국·스웨덴 등이 돈을 풀기 시작하면서 양적 완화라는 말이 보편성을 띠었다. 요즘엔 금융위기를 치유하는 묘책으로 여겨지고 있다.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6000억 달러를 추가로 찍어내 풀겠다고 발표했다. 이른바 ‘양적 완화(QE) 시즌Ⅱ’다. 경기 회복이 성에 차지 않은 탓이다.

정작 양적 완화 정책을 처음 개발한 인물이 버냉키 정책이 일본과 마찬가지로 효과를 내지 못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주인공은 리하르트 베르너(사진) 영국 사우스햄프턴대 경제학과 교수다. 그는 94년 자산운용사인 자딘플레밍(현 JP모건자산운용)의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일하면서 “일본이 장기 불황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양적 완화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베르너 교수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일본과 미국이 실시하는 양적 완화는 내가 개발한 양적 완화와 다르다”며 “금융시장에 통화를 풀어서는 돈이 다시 돌기 시작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중앙은행과 정부가 돈 떼일까 두려워 공격적으로 대출하지 않는 시중은행을 움직여야 한다”며 “이를 위해 정부가 직접 은행에서 돈을 빌려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어 “한 나라에서 신용등급이 가장 높은 정부가 대출받으면 은행의 자산 상태가 아주 좋아진다”며 “자산건전성이 좋은 은행은 쉽게 자금을 조달해 적극적으로 대출해주기 시작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베르너 교수의 처방은 아직까지 정통 경제정책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논란의 대상이다. 정부가 시중은행에서 대출받아 사업을 벌여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은행들이 적극적으로 돈을 빌려주기 시작할지 확실하지 않다. 다만 그의 음울한 예상은 맞아떨어지고 있다. 버냉키 의장은 지난주 ‘양적 완화 시즌Ⅲ’를 시사했다. 두 차례 양적 완화에도 경기가 되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아서다. 베르너 교수의 말대로 지금 미국·일본이 하고 있는 양적 완화가 진짜 양적 완화가 아닐 수 있다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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