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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귀족 태자당중국 대륙 움직이는보이지 않는 파워

1989년 6월 천안문사태 직후 최고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은 ‘깜짝 카드’를 꺼내 들었다. 중앙무대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장쩌민(江澤民) 당시 상하이시 당서기를 공산당 총서기로 발탁한 것이다. 민주화 시위에 동조해 정치 민주화를 주장하던 자오쯔양(趙紫陽)이 쫓겨난 자리였다. 자오는 덩의 유력한 후계자였다.

왜 그랬을까. 옛 소련 해체와 동구권 붕괴로 체제 위기감이 커지면서 혁명 원로들 사이에서 ‘믿을 건 핏줄’이라는 공감대가 확산됐기 때문이다. 장쩌민 전 주석의 부친은 일제에 맞서 싸우다 전사한 혁명 열사였다. 그래서 장쩌민 시대에는 상하이방(上海幇)과 태자당이 경쟁·협력구도를 만들어 나갔다. 태자당은 가문의 충성심(당성·紅)과 본인의 실력(전문성·專)을 겸비한 인재풀로 각광받았다. 홍·전은 7800만 당원 중에서 당 간부를 뽑는 기준이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은 마오쩌둥-덩샤오핑-장쩌민의 바통을 이어받은 4세대 지도자다. 태자당이 아닌 후 주석은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을 권력기반으로 삼아 자기 세력을 심어 나갔다. 후 주석은 공청단 출신으로 태자당을 견제하는 한편 공존을 모색했다. 예컨대 중국공산당의 권력 분포를 말해 주는 당 중앙위원회를 살펴보면 태자당의 위력은 막강하다. 권력 중추기구인 17기 중앙위원회(전체 371명)에서 7.6%(28명)나 된다. 7%였던 장쩌민 시대보다 더 높아진 것이다.

2012년 시작될 시진핑 시대에는 어떨까. 시진핑 국가부주석은 태자당의 간판 스타다. 부친 시중쉰(習仲勳) 전 부총리는 강직한 성품의 선비형 혁명 원로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래선지 태자당이 또 한번 재도약할 것이라는 관측이 무성하다. 혁명 원로들의 직계 자손에다 혼인 관계로 얽힌 친인척까지 더해질 경우 그 위력은 상상보다 훨씬 강력할지 모른다.

일각에선 태자당을 ‘현대판 붉은 귀족’으로 치부한다. 본인의 노력과 실력 못지 않게 부모나 장인·장모의 후광을 받아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비판적 시각이다. 이들에겐 중국식 부패를 조장한다는 의혹도 뒤따른다. 외국 기업 투자나 국유 기업·토지 매각에 관여해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 크고 작은 인사에도 개입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부패 공직자 가운데 태자당 비율이 비(非)태자당보다 높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 홍콩 언론에선 이따금 태자당의 파벌 싸움을 전하지만 베이징 쪽에선 ‘소설 같은 얘기’라고 일축한다. 태자당을 하나의 파벌로 간주하기엔 그들의 성향과 활동영역이 워낙 다양해서다.

태자당은 요즘 기업이나 학계·금융계로도 활발하게 진출하고 있다. 장쩌민 전 주석의 아들 장몐헝(江綿恒) 중국과학원 부원장, 주룽지 전 총리의 아들 주윈라이(朱雲來) 중국 국제금융공사 총재 등이 대표적 사례다.

태자당은 한국 사회와 한국 외교가 놓쳐선 안 될 인맥이다. 북·중 혈맹의 상징인 마오안잉(毛岸英:마오쩌둥의 장남)도, ‘6·25는 정의의 전쟁’이라고 말한 시진핑도 태자당이기 때문이다. 남북한을 오가며 한반도 외교를 주무르는 다이빙궈(戴秉國) 국무위원(부총리급)은 황전(黃鎭) 전 문화부장의 사위다. 이들은 심정적으로 친북한·국수주의 성향을 띠고 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정부든 기업이든 태자당 네트워크를 활용할 방안을 찾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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