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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치유하는 ‘밤의 전사’ … 세계 최고 꿈꾸는 바텐더들





칵테일 쇼의 달인 현상무씨



바텐더들의 화려한 플레어(병을 돌리는 기술) 이면에는 남모르는 피나는 연습이 숨어 있다. 왼쪽부터 최정근·안재혁·김상민·현상무(‘메트로 바’ 대표)·양아름씨는 패기, 젊음, 열정이 넘치는 바텐더다. [조영회 기자]















칵테일 쇼의 명소에서 스트레스 ‘싹~’



성탄절을 한달 앞둔 지난달 24일 저녁 천안시 신부동의 한 골목. 99㎡ 남짓 작은 공간에서 화려한 파티가 시작됐다. 칵테일 쇼를 알리는 음악과 함께 가지각색의 조명이 분위기를 한껏 띄웠다.



 가게를 찾은 손님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바텐더들에게 파이팅을 외쳤다. 불이 모두 꺼지고, 하얀 수증기 사이로 국내 가수 ‘싸이’의 곡 ‘챔피언’이 서막을 알렸다. 최정근(24) 바텐더가 가장 먼저 나서 흰색 줄에 야광봉을 달아 현란하게 돌리는 기술(포이쇼)을 선보이자 탄성이 터져 나왔다.



 곧 바로 바텐더 기술의 진수를 보여주는 본격적인 ‘플레어 쇼’(병을 돌리는 기술) 막이 올랐다. 2명의 바텐더가 각각 2개의 ‘바틀’(병)을 들고 현란한 솜씨를 뽐냈다.



 등 뒤에서 ‘쉐이커’(칵테일을 섞는 컵)를 앞으로 던져 받거나 머리 위로 던져 한 바퀴 돌아 받는 ‘턴’, 3개의 바틀을 돌리는 ‘저글링’, 쉐이커와 바틀을 동시에 던지는 엇박자 기술이 이어지면서 분위기가 뜨겁게 달아 올랐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주인공 현상무(34)씨가 무대에 올랐다. 믹싱 음악에 맞춰 부드러우면서 재빠른 동작으로 쉐이커와 바틀을 돌리는 동작이 무대를 압도했다. 바틀을 입 위에 세우거나 팔꿈치로 치고 한 손으로 다시 받아 치는 등의 동작에 박수가 절로 나왔다.



 2개의 바틀이 허공에 떠 있는 상태에서 쉐이커를 자유자재로 끼워 넣거나 5개의 바틀로 손·다리·팔꿈치·머리·턱 등 온몸으로 ‘저글링’을 연출하자 곳곳에서 감탄사가 쏟아졌다. 바텐더들이 웬만해선 흉내내기 힘든 기술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선명하고 아름다운 빛깔의 칵테일이 완성되고, 기념일을 맞은 연인에게 칵테일 잔이 선물로 돌아갔다. 바텐더들의 실력이 입소문을 타면서 이미 명소가 됐다.



‘최고의 바텐더’ … 토박이들이 나섰다



서로 다른 무게 중심을 가진 바틀(병)과 쉐이커(칵테일을 섞는 컵)를 자유자재로 다뤄야 하기 때문에 오랜 시간 연습은 필수적이다.



 김상민(27)씨는 지난해 9월 ‘메트로 바’에입사했다. 김씨는 세계 최고의 바텐더가 되기 위해 2008년 캐나다에 갔다. 바텐더는 외국이 낫다는 생각에 무작정 떠났지만 아무것도 배울 수 없었다.



 한국에 잠시 들렀다 고향에서 ‘플레어’를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곳이 생겼다는 소식에 두말 없이 지원했다. 2달 후 다시 캐나다로 간다던 시간이 벌써 1년이 지났다. 처음엔 기초조차 몰라 꾸중을 듣기 일쑤였다. 자세와 시선처리 등 바텐더가 갖춰야 할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수많은 연습에 손에는 상처가 생기고 부상을 당하기도 하지만 노력만큼 실력은 크게 늘었다.



 20살부터 바텐더를 꿈꿔온 안재혁(26)씨. 제대 후 바텐더 매력에 빠져 오게 된 최정근(24)씨도 최고의 바텐더를 목표로 매일 4시간 이상 피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세계 대회에서 입상하는 것이 목표다.



 김상민씨는 “바텐더가 비록 사회적 지위가 있거나 많은 돈은 벌지 못하지만 한 분야의 최고가 되기 위한 열정과 자부심만은 크다”며 “한 설문조사에서 직업 만족도가 가장 높은 직업으로 바텐더를 꼽았는데 이유는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배움·도전의 연속은 시련을 극복하는 열쇠



지역에서 후배를 양성하는 현상무씨는 천안 토박이다. 고등학교 시절 가정형편이 어려워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업을 마쳐야 했다. 졸업 후 공장을 다니며 12시간 넘게 일했지만 당시 수익으로는 가정은 고사하고 자신도 돌보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군 제대 후 우연히 바(bar)에 취직했지만 당시 바텐더라는 직업이 생소한 데다 칵테일을 만드는 법도 몰랐다. 어느날 천안의 한 대형할인점에서 열린 칵테일 쇼를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바텐더 업계 최고 실력자들의 현란한 손놀림은 그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서울에서 낮에는 학원, 밤에는 직장을 다니며 경험을 쌓았다. 능력을 인정 받기 위해 시간만 나면 플라스틱 바틀(병)을 들고 인적이 드문 곳에서 외로운 연습을 계속했다. 결국 2002년 6월 괌에서 열린 세계바텐더대회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자신감을 얻은 그는 이후 국내·외에서 치러지는 각종 대회에서 각종 상을 휩쓸었다. 우수 인재로 두각을 나타내면서 중국 등 해외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선보이며 국내 바텐더의 위상을 높였다.



 해외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와 세계적인 바텐더의 꿈을 펼치려다 큰 시련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천안에 정착하면서 다시 우뚝 일어섰다. 2004년 한국플레어바텐더협회가 창립하면서 직책을 맡거나 심사위원 활동을 하면서 본격적인 후배양성의 길을 걷고 있다.



 현상무씨는 “수많은 시련이 있었지만 항상 도전은 나에게 너무나 즐거운 삶을 안겨 준다”면서 “아가씨 위주의 바(bar)에 밀려 정통 바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지만 배움의 열정으로 똘똘 뭉친 후배들을 보면서 희망을 꿈 꾼다”고 웃음 지었다.



글=강태우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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