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한자로 보는 세상] 漏泄

중국 전국(戰國)시대 한(韓)나라의 현인 당계공(堂谿公)이 소후(昭侯)에게 물었다. “여기 밑바닥이 없는 백옥(白玉)그릇과 밑이 있는 질그릇(瓦器)이 있습니다. 폐하께서 목이 마르다면 어느 그릇을 사용하겠습니까?” 소후가 대답했다. “질그릇을 사용하겠지.” 당계공이 다시 물었다. “백옥으로 만든 그릇은 아름다운데도 사용하지 않는 것은 밑이 없기 때문입니까?” “그렇소.” 소후가 대답했다. 당계공은 “군주가 신하의 말을 누설(漏泄)하면, 마치 옥배에 밑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라고 말했다. 당계공을 만나고 온 뒤로부터 소후는 언제나 혼자서 잠을 잤다. 잠꼬대를 하다가 국가대사를 처첩(妻妾)에게 누설하지나 않을까 염려해서였다.



 한나라의 재상이었던 신불해(申不害)는 이렇게 말했다. “남에게 자기를 보이지 않고 자기만이 보는 것을 명(明)이라 하며, 남이 자기 말을 모르고 자기만이 남의 말을 듣는 것을 총(聰)이라고 한다. (명과 총에 의해서) 자기 혼자서 판단하는 자는, 천하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제왕학의 교과서로 불리는 『한비자(韓非子)』 가운데 각종 일화를 모아놓은 ‘외저설(外儲說)’에 나오는 이야기다. 자신은 숨기고 남은 들여다보라는 식으로 비밀 보호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한비자』에 비밀 누설을 경계하는 구절은 ‘나라가 망할 징조(亡徵)’편에 다시 나온다.



 ‘군주의 사람됨이 천박하고, 밖에서 쉽게 엿볼 수 있으며, 비밀을 간직하지 못하고 바로 누설하며, 주의는 산만하고 신하들의 말을 밖에 알리는 그러한 나라는 망한다 .’



 최근 누설된 미국의 외교 전문(電文)이 위키리크스를 통해 공개되면서 전 세계가 충격에 빠졌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FT)는 1일자 칼럼에서 이번 누설이 마치 ‘쇠락하는 미국의 파워를 보여주는 것 같다’고 평했다. 한비자의 논리라면 미국에 ‘망조(亡兆)’가 든 셈이다.



 하나 새는 것이 꼭 부정적인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두보(杜甫)는 시 납일(臘日)에서 ‘버들가지가 봄소식을 살짝 보여주네(漏泄春光有柳條)’라 노래했다. 장궈룽과 량차오웨이의 탱고가 인상적이었던 영화 ‘춘광사설(春光乍泄, 구름 사이로 잠깐 비치는 봄 햇살)’이란 제목 같은 용례도 있지 않은가.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