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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진옥섭
한국문화의 집 코우스 예술감독




연말이면 나 홀로 시상식이 있다. 올해의 명장면을 뽑는 거다. 11월까지는 단연코 ‘인셉션’이었다.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꿈을 추적하는 꿈같은 영화였다. 북극의 빙산이 무너져 내리듯 빌딩숲이 한없이 쏟아져 내리는 장면. “꿈아 꿈아 무정한 꿈아” 하고 ‘육자배기’가 OST로 울려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인상적인 꿈속의 꿈이었다.



 그러나 11월 18일 서울 삼성동의 풍류극장, 할리우드의 액션을 뒤엎는 명장면이 벌어졌다.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벌인 춤판에 이매방(李梅芳·1927~) 선생이 나선 것이다. 일생 동안 춤의 꿈을 꾸었고, 마침내 꿈의 춤을 춘 명무 중의 명무. 춤 때문에 세상을 몰랐고, 세상을 알아도 춤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분. 그 세상 속에 방치한 부인과 딸 또한 춤의 길을 걸어 ‘대를 잇는 예술혼’이란 판에 함께 오른 것이다. 따져보면 춤을 통해 가족의 화해가 주선되는 판이기도 했다. 그러나 또다시 뒤에 출연하는 가족을 잊었다. 무대에 나서자마자 홀로 판을 막아버린 것이다.



 84세의 고령이라 장삼을 뿌리고 법고(法鼓)까지 치는 ‘승무’가 벅차 보였다. 그러나 춤은 몸속에 고인 시간이 흘러나오는 과정이었다. 무대에 돗자리를 깔았는데, 여백 속의 자신을 줄여 여백을 늘려갔다. 공기의 저항을 파고들고파 유선형으로 진화한 야윌 대로 야윈 몸. 근육이라도 춤에 쓸모 없다면 과감히 퇴화시켜 이룬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었다. 중력에 구애 없이 선율에 둥둥 떠다녔다. 제자들이 법고를 눈높이로 들고 나왔다. 키가 줄고 허리가 굽어 북틀에서 내려 든 거다. 기운도 쇠진하여 그저 몇 가락 두드렸을 뿐이다. 그러나 그 소리, 잘 여문 여드름 살짝 누르면 똑 튀어 나오듯, 이내 귓전에 송골송골 맺혔다. 한 폭의 돗자리는 곧바로 장엄한 신성비례의 공간이 되었다.



 장차를 장담할 수 없는 장면이라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순간 옛분들이 말하던 “앵두를 똑똑 딴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구나 생각했다. ‘앵두’는 ‘눈물’이란 뜻이니, 눈물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좋았던 모양이다. 이렇게 춤을 치켜세워 주는 멋스러운 말들이 사라진 시대에 홀로 춤의 멋들을 지켜 온 것이다. 장내가 떠나가는 박수를 뒤로하고 퇴장하는데, 뒷모습이 천근만근이었다. 이제 춤에서 삶으로 돌아간 것이다. 84세의 위태위태한 몸을 보며 세상 떠나는 것보다 춤 떠나는 것을 더 두려워할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극장을 나와 한참 동안 서있었다. 춤이라는 것, 그렇게 몸이라는 거푸집을 비우고 비우는 일 같았다. 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기쁨이 솟아나고 눈이 열리는 지경을 만들어 냈다. 야광거미줄이 쳐져 있는 도시의 야경이 ‘인셉션’처럼 하나 둘 쏟아져 내렸다. 돗자리 한 폭에 올라 선 춤이라는 미동이 격동에 찬 액션 블록버스터의 명장면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얼마 만에 찾아낸 “심봤다!”인가. 이 정도라면 정화수 떠놓고 빌어서 되는 게 아니라, 점지 받고 태어나야 만나는 장면이란 생각이 들었다.



진옥섭 한국문화의 집·코우스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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