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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개성공단은 어찌할 것인가







김진국
논설위원




국가의 첫째 임무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다. 이 일을 잘하라고 국민은 세금도 내고, 병역 의무도 진다. 그것도 못하는 정부라면 존재할 가치가 없다.



 그러면 개성공단은 어찌할 것인가. 개성공단에는 121개 남한 기업이 가동 중이다. 지금은 404명으로 줄어들었지만 지난해까지만 해도 남한 근로자 936명이 일했다. 아마도 곧 회복되고 갈수록 늘어날 것이다.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국회 답변에서 “추가 도발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인내의 한계를 건드리는 북한의 도발을 보면 우리가 강력히 반격해야 할 순간이 조만간 닥칠 가능성이 크다. 그때 개성에 있는 우리 국민은 어떻게 될까. 인질, 심하게는 인간방패가 되지는 않을까. 재산을 북에 맡겨놓은 기업주야 그렇다 치고 월급 몇 푼에 목숨을 저당잡혀야 하는 직원들은 누구의 보호를 받아야 하나.



 연평도가 공격당하자 필리핀은 한국에 있는 자국민 대피 문제를 일본과 협의했다고 한다. 노동자 파견도 당분간 중단하기로 했다. 제3국에서 유사한 분쟁이 발생했다면 우리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신속한 조치가 없어 사고가 터지면 비난 여론이 들끓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교전 상대인 북한에 거주하는 우리 근로자는 왜 계속 머물러 있어야 하는 걸까. 돌발 사태 때 귀환시킬 방법은 있는가. 국익이란 이름으로 국민의 생명을 적의 손에 맡겨놓은 건 아닌가.



 개성공단은 남북 교류협력의 상징이다. 정치·군사적 외풍(外風)에도 불구하고 지난 9월 누적 생산액이 10억 달러를 넘어섰다. 이 때문에 어떻게든 유지해야 한다는 반론(反論)이 만만치 않다. 한번 철수하면 다시 복구하기 어렵고, 전면전으로 가겠다는 잘못된 신호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빠진 자리에 중국 자본이 들어와 북한 경제를 예속시킨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개성공단의 효과에 대해 환상에 빠져 있는 건 아닌지 근본적으로 재검토해볼 때다.



 개성공단을 만들 때 내세운 효과는 접경지역의 긴장완화다. 그러나 서해5도를 향한 북의 도발을 경험하면서 그 효과에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북한 주민의 생활 향상이라는 것도 확인하기 어렵다. 우리가 지급한 임금은 북한 정권이 받아 챙긴다. 주민의 생활보다는 전력 강화에 투입될 가능성이 훨씬 크다. 당초의 명분은 사라지고 정권의 비위를 맞추기에 급급했다. 그러니 통일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가설도 허구에 가깝다. 우리는 돈과 물품을 반입하면서 국제 제재를 요청하는 것도 우스운 노릇이다.



 개성공단을 통해 북한이 시장경제를 배운다는 것도 수긍이 가지 않는다. 대부분 임가공 형태다. 판매도 한국 업체가 맡고 있다. 신용을 잃어도, 국제 제재로 교역이 중단돼도 북한은 걱정이 없다. 시장 논리가 먹혀들지 않는다. 굳이 학습효과를 따지자면 우리 기업이 있던 자리에 중국 자본이 들어오는 게 더 효과적일지 모른다.



 우리가 던진 자본의 미끼를 놓지 못해 도발을 못할 것이란 생각은 환상이다. 2000년 6월15일 남북정상회담 이후 김대중 전 대통령은 “더 이상 전쟁은 없다”고 선언했다. 넉넉할 만큼 지원했다. 그러나 2년 뒤 제2 연평해전을 일으켰다. ‘을(乙)’이어야 할 북한은 언제나 ‘갑(甲)’으로 행세했다. 정부가 쥐어야 할 카드는 남한 내 이념 갈등으로 오히려 북한의 손에 쥐여주기 일쑤다. 선군(先軍)정치는 경제 개발보다 군사력으로 살아가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북한을 ‘약탈경제’에 길들여온 셈이다.



 송(宋)은 중국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번영을 구가했다. 화려한 문화는 주희, 소식, 구양수, 사마광이란 이름만 들먹여도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다. 화약과 나침반, 인쇄술이라는 3대 발명이 이뤄졌다. 해로(海路)가 열리고, 상업이 발달해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이 유행했다. 그러나 끊임없이 북쪽의 약탈자들에게 시달렸다. 전력(戰力)은 돈에 비례한다지만 송은 그 반대였다. 병력만 많았지 전쟁을 두려워했다. 출세의 수단으로 전락해 재정만 축냈다. 20만 대군이 6만 군사와 대치해서도 전쟁보다 돈으로 평화를 사려 했다. 침략자의 비위를 맞추느라 주전파(主戰派)의 목을 바쳤다. 결국 요(遼)와 금(金)과 서하(西夏)에 바친 엄청난 세공(歲貢)에 재정이 거덜났다.



 한때 송이 국경 방비를 튼튼히 하자 서하는 스스로 강화를 요청했다. 교역 중단으로 생필품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동냥 쪽박은 한번 차면 벗기 힘들다고 한다. 돈푼이 생겨도 밭을 살 생각은 않고, 더 크고 튼튼한 쪽박으로 더 얻어낼 궁리만 한다. 그러니 돈만 많이 준다고 거지 신세를 면하는 게 아니다. 약탈경제도 마찬가지다. 이념과 정치적 이해를 떠나 정말 진지하게 대북정책을 재검토해볼 때가 됐다.



김진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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