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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Insight] 세계 1위 업체 중국 ‘알리바바닷컴’ CEO 웨이저

‘아라비안 나이트’ 속 알리바바는 ‘열려라 참깨’라는 주문을 외치고 동굴 문을 열어 보물을 얻는다. 1999년 중국 기업가 마윈(46·馬雲·영문이름 잭 마)은 전자상거래 회사를 세우면서 알리바바닷컴(alibaba.com·이하 알리바바)이라 이름 붙였다. 세계를 상대로 무역하는 중소기업에 성공의 열쇠, 마법의 주문이 되어주겠다는 의미다. 11년이 지난 지금, 알리바바는 세계 5700만 개 중소기업을 회원사로 가진 세계 최대 기업 전자상거래(B 2 B) 회사로 성장했다. 알리바바 본사가 있는 중국 동부의 항저우(杭州)에서 최고경영자(CEO) 웨이저(40·衛哲·영문이름 데이비드 웨이)를 만났다. 창업주 마윈은 2006년 영국계 유통업체 B&Q 중국법인 사장이던 그를 발탁해 경영을 맡겼다.



“알리바바 코리아가 아니다, 답은 한국식 알리바바다”

항저우=박현영 기자











웨이저 CEO를 만난 곳은 항저우에 있는 저장(浙江)성 인민대회당. 알리바바가 세계적인 기업인과 명사를 초대해 개최한 중소기업 포럼인 ‘알리 페스트’ 행사장에서였다. 해마다 저명인사를 초청해 온 알리바바는 올해는 아널드 슈워제네거 미 캘리포니아 주지사와 존 도너휴 e베이 사장, 류촨즈 레노보그룹 회장 등을 연사로 불렀다. 청중은 중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온 온라인 무역상인들. 1박2일간의 행사에 2000명이 참여할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2대8’ 비율로 반듯하게 가르마를 탄 웨이저 CEO의 머리 모양은 중국 엘리트 공무원을 연상케 했다. 그러나 원어민에 가까운 영어를 구사하며 수치와 근거를 제시하는 화법은 서구의 정보기술(IT) 기업인과 다르지 않았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에도 알리바바 분위기가 활기찬 게 인상적이다.



 “2008년 이후 많은 기업이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데, 우리는 오히려 성장했다. 2008년엔 유료 회원 증가율이 역대 최고였다. 경기가 안 좋을 때 중소기업 경영자는 비용을 줄이고 효과는 배가시킬 수 있는 창의적인 마케팅 방법을 찾는다. 출장비와 전시회 참가비를 아끼려다 보니 온라인 무역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알리바바가 불황을 무난히 넘기고 있는 이유는 경제 위기를 사전에 감지하고 대응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알리바바는 2008년 2월 세계 경제 위기를 경고하는 내부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해 7월엔 이를 대외적으로 알렸다. 그로부터 2개월 뒤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졌다.



●금융위기를 어떻게 예측했나.



 “알리바바 회원이 알리바바에서 상품을 문의하고 상담한 뒤 실제로 주문을 넣는 데까지 3~6개월의 시간 차가 있다. 때문에 우리는 3~6개월 앞서 무역량을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통계에서 의미 있는 정보를 추출하는 ‘데이터 마이닝’을 통해 변화를 감지했고, 위기에 대응하는 전략과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경제 위기가 닥치자 알리바바는 회비를 60% 내렸다. 그러자 유료 회원이 오히려 늘었다. “고객이 첫째, 직원이 둘째, 주주가 셋째”라는 알리바바의 비전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전략은 적중했다. 유료 회원은 2007년 30만에서 2008년 43만, 지난해 61만으로 늘었다. 과감하게 회비를 깎아주면서 전통적인 무역에만 종사하던 중소기업이 온라인 거래에 눈뜰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주로 회비로 구성된 매출액은 2008년 30억 위안(약 5200억원)에서 지난해 39억 위안(약 6700억원)으로 뛰었으나 순이익은 12억 위안에서 10억 위안으로 줄었다.



●회원 증가세보다 매출과 수익 증가 폭이 작은 건 문제이지 않나.



 “가능한 한 많은 중소기업이 참여하도록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해 회비를 낮게 유지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투자자에게는 3개년 모델이 있다고 설명한다. 고객이나 상품, 플랫폼에 투자하면 첫해에는 회원이 증가하고, 그 다음 해에 매출이 뛰며, 셋째 해에 수익이 늘어난다.”



 경제 위기 예측이 적중한 이후 알리바바는 중국 정부에 분기별로 중국 수출 동향에 관한 보고서를 제출하고 있다.



●최근 보고서에는 뭐라고 적었나.



 “세계 경제 위기의 최고 암흑기는 지났지만, 견고하고 지속가능한 경제 회복은 아직 이르다. 거시경제와 중소기업 근황에 대해 매우 조심스러운 견해를 제시했다. 중국의 수출은 계속 증가하겠지만, 향후 몇 분기 동안 전년 대비 증가율은 꾸준히 하락할 것이다. 임금 상승, 원재료 가격 인상, 위안화 절상 압력 같은 불확실성과 선진국 시장의 경기 침체가 근거다.”



 알리바바는 2007년 홍콩 증시에 상장하면서 17억 달러(약 1조9000억원) 규모 공모에 성공했다. 2004년 구글의 나스닥 상장 이후 인터넷 기업의 기업공개(IPO) 중 최대 기록이다.



●알리바바의 성공 비결을 꼽는다면.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중소기업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알리바바는 인터넷을 통해 중소기업이 무역에 참여하고 경쟁력을 갖도록 돕기 위해 탄생했다.”



 그는 마윈 회장을 2000년 하버드비즈니스스쿨에서 만났다. 둘 다 연사로 초대됐다. 서른 살 청년이던 그는 IT기업의 미래를 믿지 않았다고 한다.



●전자상거래를 믿지 않은 건가.



 “잭(마윈)이 풀어놓은 이야기는 훌륭했지만 회사의 미래에 대해서는 큰 점수를 주지 않았다. 당시엔 인터넷 기술이 그다지 신뢰할 만하지 않았다.”



●6년 후 알리바바에 합류한 계기는.



 “2003년 B&Q 사장으로 있을 때 구매 담당 직원들이 ‘알리바바를 통해야 좋은 상품을 찾을 수 있다’고 얘기하더라. 알리바바를 이용하면서 직원들의 출장비가 확 줄고 그들이 찾아낸 상품의 질은 획기적으로 나아졌다. 여러 물건을 비교 평가하기 쉬워졌기 때문이다. 한번은 우리 구매팀이 세라믹 양변기 1만 개를 산 적이 있다. 우리가 산 가격의 10분의 1에 알리바바에서 같은 변기를 팔더라. 2005년 B&Q 매출액이 10억 달러를 달성했다. 7년 만에 10배로 키운 것이다. 이때 잭은 타오바오(알리바바그룹의 온라인 쇼핑몰)를 3년 만에 매출액 22억 달러짜리 회사로 키운 이야기를 들려줬다. 전자상거래가 얼마나 혁명적일 수 있는지 깨닫고 알리바바로 옮겼다.”



●중소기업이 경쟁력을 갖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가.



 “미래에는 주문 제작형(customized) 상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이다. 전자상거래는 기업이 시장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해준다.”



 웨이저 CEO는 상하이(上海)외국어대를 졸업한 뒤 상하이 둥팡(東方)증권,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 상하이사무소를 거쳐 런던비즈니스스쿨에서 기업재무 전공으로 석사과정을 이수했다.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영국 유통업체 B&Q의 중국법인 사장을 맡아 5년 만에 중국 최대 가구주거용품 할인점으로 키웠다.



●외국 기업 입장에서 중국은 까다로운 시장일 텐데.



 “중국은 매우 독특한 시장이기 때문에 독특한 해법을 필요로 한다. 서구의 비즈니스 모델을 중국에 그대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 타오바오에 메신저 기능을 넣은 게 한 예다. 여기서 판매자와 구매자가 메신저 대화로 값을 흥정한다. 중국의 전통 시장에 아직도 남아 있는 흥정 문화를 반영한 것이다.”



●외국 기업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는 뭔가.



 “외국 기업들은 중국 진출 초기에 어느 정도 시장을 선도하다 그들이 들여온 새로운 가치를 잃어버린다. 더이상 새로움을 주지 못하고 구태한 방식을 자꾸 쓰려 하면 듣지 않는다. 현지 시장을 과소평가하지 마라. 중국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월마트와 카르푸가 이마트에, 구글이 네이버에, e베이가 G마켓에 손을 들었다. 아시아인은 학습능력이 뛰어나다. 다국적 기업은 세계가 다 자기 시장인 줄 아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중국에서 성공하길 원하는 한국 기업에 조언해 달라.



 “개별 국가의 문화를 존중하고, 현지 상황을 잘 아는 파트너와 손잡는 게 알리바바의 해외 진출 전략이다. 현지 파트너의 경험에서 배우고, 관계당국과도 이해도를 높인다. 예컨대 한국에서는 ‘알리바바 코리아’식이 아닌 ‘한국식 알리바바’ 스타일로 경영하는 것이다. 초기에 삼성과 손잡은 테스코(영국 대형마트)의 한국 진출 성공이 이에 해당한다.”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 알리바바 창업주 마윈











가까이서 본 마윈은 어떤 사람인지 웨이저 CEO에게 물었다. “꿈꾸는 사람(dreamer), 희망을 버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중국 소도시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그가 세계적인 정보기술(IT) 기업을 일군 바탕에는 바로 ‘꿈’이 있었다. 마윈은 항저우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릴 땐 삼륜차 운전, 신문팔이에 나서야 했다. 공부에는 흥미가 없었지만 영어에 대한 열정은 컸다. 12살 때부터 8년간 매일 자전거를 타고 40분 거리에 있는 호텔로 가서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무료 가이드를 해주면서 영어를 배웠다. 대입에 두 번 실패한 뒤 간신히 항저우사범대학에 입학했다. 그에 따르면 고향에서 제일 안 좋은 대학이었다. 21살이던 1985년 여름, 펜팔 친구의 초청으로 호주에서 한 달을 지내면서 개안(開眼)을 했다. 교과서와 바깥 세상은 많이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대학에서 교편을 잡았지만 그의 꿈은 비즈니스계에 몸담는 것이었다. 하지만 입사 지원을 할 때마다 떨어졌다.



 1995년 중국 기업 사절단의 통역사로 미국을 방문했다. 이때 접한 인터넷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인터넷에서 ‘맥주’를 검색해 봤는데, 미국과 독일 맥주만 잔뜩 소개될 뿐 중국 맥주는 없었다. 귀국하자마자 학교를 그만두고 인터넷 홈페이지 제작업체 를 차렸다. 그는 키보드를 만져본 적도 없는 ‘컴맹’이었다.



 중국의 수출 드라이브 정책 속에서 99년 알리바바닷컴을 창업하며 전자상거래 시장에서 입지를 넓혀 갔다. 중국의 값싸면서 경쟁력 있는 제조업 인프라를 전 세계와 연결하는 작업이었다.



 2003년 출범한 온라인 쇼핑몰 타오바오는 중국에 진출한 미국의 e베이와 치열한 접전 끝에 e베이를 눌렀다. e베이가 중국 시장에서 철수하기에 이르자 세계 언론은 마윈을 ‘골리앗을 무찌른 다윗’에 비유했다. 키 1m60㎝가 안 되는 단신인 마윈과 신생기업 알리바바를 다윗에 빗댄 것이다. 마윈의 비전은 기업과 소비자가 인터넷으로 모든 거래를 할 수 있는 전자상거래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온라인 결제시스템인 알리페이를 개발하고, 야후 차이나를 운영하고 있으며, 중국의 중소기업에 경영관리 소프트웨어를 제공한다.



 웨이저 CEO는 “마 회장을 보면서 성공은 꼭 돈을 버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성공한 기업가는 사람을 위해 가치를 창조하고, 자기 직원을 돌보는 사람이다. 남을 돕는 데 관심을 쏟다 보니 좋은 일들이 따라오는 게 성공인 것 같다. 성공과 이윤은 고객과 직원에게 관심을 기울인 결과이지 목표가 아니다.”















SERICEO의 성공 분석



최우수등급 판매자 물의 일으키자 알리바바, 관시 끊어




1999년 소규모 인터넷 업체를 운영하던 마윈 회장은 길거리에서 우연히 친해진 사람, 인터넷 채팅으로 만난 사람, 거래처 사람 등 일견 오합지졸에 불과한 10여 명의 사람을 모아 알리바바를 창업했다. 첫 3년간 연간 순익 1위안(약 200원)을 기록할 정도로 출발은 왜소했다.



 그러나 마윈 회장은 이를 중국 최대 인터넷상거래 기업으로 성장시켰고 2009년 시장점유율 80%, 매출액 39억 위안(약 6700억원), 순이익률 50%의 경이적인 성과를 창출했다. 이에 마윈 회장은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미래를 이끌 세계 100인 CEO’에 포함되고, 또 중국 기업가로는 처음으로 미국 경제지 ‘포브스’의 표지모델이 되기도 했다.



 그러면 알리바바의 성공을 이끈 마윈 회장의 비결은 무엇일까.



 우선 창의적인 모방을 추구했다. 기본적으로 알리바바의 수익은 인터넷을 통해 회원사 간 상거래를 중개하면서 발생한다. 마윈 회장이 스스로 고백한 것처럼 아마존·e베이 등 기존 업체의 수익모델을 모방했다. 그러나 마윈 회장은 평범한 답습에 그치지 않았다. 여기에 창의적인 서비스를 더했다. 알리바바 본사에 있는 300여 명의 고객센터 직원은 좀처럼 자리에 앉아 있는 법이 없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짓·발짓을 써가며 열정적으로 고객을 응대한다. 비교적 ‘느릿한’ 성향이 있는 중국에서 이들의 서비스 방식은 남달랐고 실제로 많은 고객을 감동시켰다.



 최근에는 최우수 등급의 판매자가 신용도를 조작했다는 첩보를 접하자 즉시 퇴출시켜 언론에 화제가 됐다. 인간관계, 소위 ‘관시’를 중시하는 중국에서는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다. 그러나 알리바바의 단호하고 발 빠른 대처는 중국인에게 새로운 믿음을 주었고, 심지어 물의를 일으켰던 판매자조차 감동을 받아 마윈 회장에게 감사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마윈 회장은 “알리바바는 정보기술(IT) 회사가 아니라 고객에게 서비스하는 회사다. 우리의 핵심 경쟁력은 바로 서비스”라고 분명하게 선언한다.



 둘째, 위기를 기회로 활용했다. 알리바바는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로 경영난을 겪고 있는 중국 중소기업을 위해 60억 위안(약 1조2000억원)을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1000만 개 중소기업에 자사 소프트웨어를 3년간 무상 제공하기로 했다. 이는 중국 내 중소기업의 40%에 달하는 숫자다. 비록 지금은 많은 이익을 안겨주는 고객이 아닐지라도, 고객 한 명 한 명의 성공이 결국 자신의 전자상거래 사업에 연결된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불황기를 맞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과 동반 성장하겠다는 전략이다.



 감원 역풍을 맞고 있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우수 인력도 적극적으로 채용하고 있다. 세계 경기 침체로 감원에 나선 구글·야후 등 다른 인터넷 기업과는 대조적인 움직임이다. 마윈 회장은 “경기 침체가 우리에겐 보물과 같다”고 말한다. 지금 위기상황을 통해 예전에는 접하기 힘들었던 우수 해외 인재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마윈 회장은 열린 문화를 지향한다. 본사 건물의 5층 휴게실에는 빨간색 벽돌로 만들어진 조형물이 있다. 알리바바는 5년 이상 다닌 직원이라면 누구에게나 이곳에 ‘명예의 벽돌’을 쌓아준다. 누구나 노력하면 인정받을 수 있는 직장. 이것이 바로 ‘열린’ 기업문화의 표상이다.



 중국에서도 수많은 기업인이 인터넷 사업에 도전했다. 그러나 마윈 회장처럼 글로벌 성공을 달성한 기업가는 극소수다. 마윈 회장의 성공 방정식은 많은 기업인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김상범 삼성경제연구소 경영전략실 수석연구원



j 칵테일 >>‘열려라 참깨’의 알리바바 다 알더라



“샌프란시스코의 카페에 앉아 사명을 짓는데, 알리바바란 이름이 떠올랐다. 웨이트리스에게 ‘알리바바를 아느냐’고 물었더니 안다더라. 거리에 나가 30명에게 물었는데, 인도·독일·일본·중국 등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간에 알리바바를 알고 있었다. 알리바바하면 도둑이 떠오르지만 실은 그는 영리한 상인 아니었던가. 어느 나라 사람이라도 발음하기 쉽고 쓰기 편하다. 알리바바는 중소기업에 ‘열려라 참깨’가 되어 줄 수 있다.”



 알리바바닷컴 창업주 마윈 회장이 소개한 작명 일화다. 마 회장은 처음부터 세계 진출을 염두에 뒀다. 그 꿈이 실현돼 알리바바닷컴의 총 등록회원은 240개 국가와 지역의 5700만 개 기업이다. 알리바바는 세계를 무대로 하는 수출입 업체를 위한 글로벌 무역시장(alibaba.com)과 중국 내 무역을 위한 중문 내수시장(1688.com) 등의 전자상거래 플랫폼을 운영한다. 매일 수천만 명의 바이어와 제조업체가 이곳에서 필요한 상품을 검색하고 무역 상담을 한다. 글로벌 무역시장의 회원 1500만 개는 미국(16%), 인도(11%), 영국을 제외한 유럽(10%) 순으로 많다.



 알리바바의 이사회를 포함한 주요 회의는 영어로 진행된다. 최고 경영진은 모두 중국어와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알리바바의 ‘바바’가 중국어로 ‘아빠’와 발음이 같다는 데 착안해 일찌감치 알리마마(엄마)도 브랜드로 등록했다. 지금은 그룹 산하의 온라인 광고업체가 알리마마 브랜드를 쓴다.



>> ‘30분 안에 마오타이 18잔’ 몸으로 때운 CEO 웨이저



웨이저 CEO는 증권회사 근무 시절 ‘몸으로 때워’ 거액의 거래를 성사시킨 적이 있다. 한 화학업체 사주가 회사채 발행을 맡기면서 “30분 안에 마오타이 18잔을 마시면 3잔째마다 수수료를 0.5%씩 올려주겠다”고 제안한 것. 증권 종사자들은 진정한 책임감이 없다며 신뢰할 수 있는지를 보여달라는 요청이었다. 웨이저 CEO는 58도짜리 독주 18잔을 마시고 수수료 3%를 더 얻어냈다. 전자상거래가 아무리 발달해도 마오타이 18잔과 같은, 사람 냄새 나는 거래는 어렵지 않을까. 비즈니스의 핵심은 역시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아니냐고 물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인터넷을 신뢰하지 않던 그다.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비즈니스에서 사람 간 접촉은 여전히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같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는 시간과 장소에 제약이 없고, 저비용 고효율인 전자상거래의 장점은 더욱 뚜렷해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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