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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 당돌한 10대, 클래식을 흔들다





“한동안 연주가 아니었어요, 피아노 치고 돈 받고 끝
직장인 같았죠, 정말 하고 싶은 공연 따로 있는데 … ”
아홉 살에 콩쿠르 우승, 지휘자 쿠르트 마주어와 협연
키신이 속한 세계적 매니지먼트사와 계약 그리고 8년
이제 홀로 섰다, 무용·패션까지 섞는 새 클래식 꿈꾸며





다음 이야기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한 가족이 부산에 살았다. 아버지는 학교 윤리 교사였다. 성악을 공부한 어머니는 피아노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다섯 살 터울인 딸과 아들이 있었다.



이 평화로운 집에 변화가 생겼다. 둘째인 아들의 피아노 실력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자신에게 드문드문 피아노를 배우고도 곧잘 치는 아들의 재능을 알아봤다. 재주 넘치는 아이는 각종 콩쿠르에서 1위에 올랐다. 부모는 아들을 서울에 보내 한국예술종합학교 예비학교에 입학시켰다. 피아노 잘 치는 전국의 아이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아들에게는 이 물조차 좁아 보였다.



가족이 모두 미국으로 떠난 건 2000년이다. 막내가 아홉 살 되던 해다. 부모는 뉴저지의 세탁소에 취직했다. 아이들은 백인 학생만 다녔던 학교인 세인트 피터 아카데미에 최초의 유색인종으로 입학했다. 한국에서 부족함이 없었던 막내 아들은 ‘나는 왜 다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는 어떻게 끝날까? 아이를 신동으로 확신한 부모의 과감한 투자 말이다. 그 후 10년, 아이는 짧은 기간에 세계 최고의 무대에 올라갔다. 하지만 음악계는 수많은 미끄럼틀의 조합이다. 미끄러졌다가 다시 올라오며 아이는 분투를 거듭하고 있다. 피아니스트 지용(19)의 이야기는 이제 시작된다



글=김호정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지용은 최근 세계적 매니지먼트사인 IMG와 결별했다. 예프게니 키신·이츠하크 펄먼·조슈아 벨 등 유명 연주자들이 소속된 곳이다. 2002년 지용은 이 회사와 계약을 맺은 것만으로도 뉴스의 중심에 있었다.



“안정된 직장에서 퇴사한 기분이었죠. IMG와 계속 계약을 맺었다면 많은 연주 기회가 보장되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케스트라와 협연할 수도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그는 ‘홀로서기’를 선택했다. “열한 살에 계약을 하고 8년 동안 활동하면서 ‘신동’ 피아니스트 이미지가 벗어지지 않았어요. 저는 성장하면서 아이디어가 많아졌고, 하고 싶은 게 많았는데 보수적인 클래식 음악 매니지먼트에서 할 수 있을까, 두려웠죠.”



2000년 미국에 간 지용은 뉴욕 필하모닉이 주최한 영아티스트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최연소였다. 그 부상으로 뉴욕 필하모닉, 지휘자 쿠르트 마주어와 함께하는 데뷔 기회를 얻었다. IMG는 이 공연을 보고 지용을 소속 아티스트로 불러들였다.



“열여덟이 되면 카네기홀에서 데뷔를 하고,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한다는 게 회사에서 계획해준 저의 경력이었어요. 물론 중요한 연주지만, 저는 정말 하고 싶은 게 따로 있어요.”



지용은 대신 올 4월 서울 명동 한복판에서 연주했다. 오색으로 칠한 피아노를 거리에 놓고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는 시도였다. 제목은 ‘스톱 앤 리슨(Stop & Listen)’으로 붙였다. “이 콘서트는 제 아이디어의 10만분의 일도 안 돼요. 제가 원래 계획했던 건 더 큰 공연이었어요.”



피아노로 패션쇼를 하자











지용이 처음 냈던 아이디어는 패션쇼였다. “서울시청 광장이면 좋겠어요. 엄청나게 크고 긴 런웨이를 놓고 모델들이 나오는 거예요. 사람들은 그게 패션쇼인 줄 알지만, 마지막에 나오는 사람은 저예요. 그리고 피아노로 걸어가는 거죠. 그때부터 피아노 독주회를 시작하는 거예요. 패션쇼가 아니고 클래식 공연이라는 걸 알게 된 놀라움이 곧 즐거움으로 바뀌겠죠.”



규모와 예산 문제로 잠시 쉬고 있는 이 아이디어가 곧 세상으로 나올 태세다.



세계적인 매니지먼트를 박차고 나온 것도 이처럼 넘치는 아이디어 때문이다. “한동안 연주가 연주가 아니었어요. 피아노 치고 돈 버는 직업인이 된 기분이었죠. 제 안에 분명 이렇게 하고 싶은 공연이 따로 있는데, 그 열정이란 게 다 사라지는 것 같았어요. 연주하라는 곳에 가서 연주하고, 돈 받고 끝. 지난 1년 반 정도는 그냥 이렇게 살았어요.”



재주 많은 피아니스트가 쉽게 빠지는 함정이다. 지용은 “아주 우연한 일로 그 수렁에서 나왔다”고 했다. “열 살 때의 데뷔 무대를 아버지가 홈비디오로 찍어놓은 걸 슬쩍 보게 된 거예요. 모차르트의 d단조 협주곡이었어요. 5초 정도만 봤는데, ‘맞다, 나 저랬지’ 했어요.”



음악을 ‘비즈니스’로 알기 전, 피아노가 좋아서 무대를 즐기는 소년을 만난 것이다. 그는 IMG에서 나왔고, 자신이 하고 싶은 연주를 하기로 결심했다.



4월에는 발레리나 강수진과 한 무대에서 피아노를 쳤고, 내년에는 뉴욕의 현대미술관(MOMA)과 함께 새로운 형식의 공연을 기획한다. 기존에 있는 판 대신 처음부터 스스로 다 만드는 공연에 푹 빠져 있다.



무대를 뒤섞자



어린 시절 얘기를 들어보자. “대여섯 살 때쯤인가, 틈만 나면 놀이공원에 갔어요. 엄마를 졸라서요. 롤러코스터를 꼭 타야 했거든요.” 재미있어서? 아니다. “피아노를 칠 때요, 저는 그 느낌이 필요했어요. 롤러코스터가 뚝 떨어지는 그 순간의 느낌요. 키가 작다고 기구를 못 타게 하면 미친 듯이 울곤 했어요.”



미국에서도 독특했다. “제가 처음 간 초등학교엔 온통 백인만 있었어요. 저와 제 누나가 첫 유색인종이었죠. 그런데 전혀 기가 죽지 않아서 오히려 백인 친구들이 ‘너는 왜 보통 동양인들처럼 수줍어하지 않니?’라고 물어볼 정도였어요. 저도 처음에는 이상하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곧 알았어요. 아, 나는 그냥 다르구나 원래.” 조용하고 엄숙한 공연장, 정해진 룰대로 연주하는 사람들과 자신을 차별화하고 있는 이유다.



그는 이달 서울 독주회에서도 조명ㆍ영상을 직접 기획한다. “어려서부터 미술관에 가면 도무지 집에 돌아가려 하지 않았대요. 엄마가 기다리다 못해 가자고 하면 ‘엄마, 이 그림에 이 느낌 안 보여?’ 하면서 입을 헤 벌리고 서 있었다네요.”



지용은 음악회에 많은 장르의 예술을 섞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용·미술·영상뿐 아니라 패션·디제잉 등등 다 가능하죠. 이렇게 섞어야 해요. 몇백 년 전의 음악을 누구는 조금 이렇게 치고, 다른 사람은 저렇게 친다 정도로 사람들을 만날 순 없잖아요. 형식을 다르게 해야죠.”



‘다른’ 피아니스트 지용 덕분에 청중은 적어도 당분간 심심하지 않을 듯하다. 첫 앨범을 낸 지용은 28일 오후 2시30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한국 청중을 만난다.



지용



1991년생



2000년 미국 뉴욕필 영아티스트 콩쿠르 우승



2009년 미국 줄리아드 음대 입학



2009년 앙상블 디토 시즌 3의 멤버



2010년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 내한공연 협연



2010년 데뷔 앨범 ‘리스토매니아’ 발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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