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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불안·핫머니 동시에 못 잡으면 정치 생명 위태

저우샤오촨은 중국 역사에서 최초의 서구식 중앙은행 총재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선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공산당 내에선 비판에 취약하다는 평이다. [블룸버그 뉴스]
저우샤오촨(周小川·62) 중국 인민은행장이 다시 칼을 빼 들었다. 지난주 금요일인 19일 물가를 잡기 위해 은행의 지급준비율(지준율)을 0.5%포인트 올렸다. 이른바 중국의 ‘금요일 이벤트’다. 영국계 은행인 HSBC의 이코노미스트인 쿠홍빈은 “올 들어 저우샤오촨은 금요일마다 빅 이벤트를 벌였다”고 말했다.

19일 올 들어 5번째 지준율 올린 저우샤오촨 중국 인민은행장

이날 인상으로 중국 빅4 은행의 지준율은 18.5%로 높아졌다. 빅4는 공상은행(ICBC)·중국은행(BOC)·건설은행(CCB)·농업은행(ABC)을 말한다. 기타 대형은행 지준율은 18%이고 중소은행은 16%다. 경제 부문별 사정을 고려한 중국 특유의 차등화된 지준율 시스템이다.

일반적으로 지준율이 인상되면 은행은 대출 여력이 줄어든다. 예컨대 예금 100위안을 유치할 경우 4대 은행은 18.5위안을, 기타 대형 은행은 18위안을, 중소 은행들은 16위안을 남겨두고 대출해줘야 한다. 돈이 은행 문을 계속 들고 날 때마다 지준율이 적용된다. 그만큼 돈이 증폭되는 양(신용창출)이 줄어든다. 인민은행은 지준율 0.5%포인트 인상으로 대출이 3000억 위안(50조원) 정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저우샤오촨은 이달에만 지준율을 두 차례 인상했다. 올 들어서만 모두 다섯 번째다. 그만큼 물가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얘기다. 올 10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4.4%에 달했다. 중국 공산당이 올 3월 설정한 목표치(3%)를 넘어섰다. 그는 직접 물가를 통제하는 방안까지 동원할 태세다. 전시 경제처럼 식료품 물가를 아예 국가가 통제하는 것이다.

올해 안에 지준율·기준금리 더 올릴 듯
화근은 돈 풍년이다. 올해 10월 말까지 중국 은행권의 신규대출은 6조6000억 위안에 달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 정도 늘어났다. 2009년 증가율 32%보다는 낮다. 하지만 여차하면 중국 공산당에 보고한 억제목표치 7조 위안을 넘어설 태세다.

저우샤오촨의 어깨를 짓누르는 변수는 물가만이 아니다. 단기부동자금(핫머니)도 골칫거리다. 핫머니는 순식간에 들어왔다 빠진다. 미 달러와 견준 위안화 환율을 뒤흔들어 놓을 뿐만 아니라 주식과 부동산 시장을 요동시켜 결국 중국의 실물경제를 불안하게 할 수 있다.

중국은 핫머니의 최대 표적이다. 위안화 가치는 꾸준히 오르는 추세다. 핫머니 플레이어들로선 환차손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경제 성장률이 높아 미국이나 유럽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도 있다. 이미 막대한 핫머니가 중국으로 흘러들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요즘 핫머니 배후엔 양적 완화가 있다. 최근 미국 벤 버냉키(57)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양적 완화를 단행했다. 인쇄기로 6000억 달러를 찍어 시장에 풀기로 했다. 시라카와 마사하키(61) 일본은행(BOJ) 총재는 오래전부터 양적 완화를 실시하고 있다.

여차하면 장 클로드 트리셰(68)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도 양적 완화에 뛰어들 태세다. 그는 현재까지 양적 완화를 거부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 채무 위기가 최근 아일랜드를 엄습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구제금융과 재정긴축 등의 처방이 잇따르며 유로사용권(유로존) 실물경제가 침체에 빠질 수도 있다. 트리셰가 화폐 인쇄기를 돌려야 하는 상황이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

물가 불안과 핫머니 유입은 저우샤오촨을 다급하게 만들고 있다. 현재 상태로라면 당이 제시한 중대 과업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꼴이 된다. 그의 다급함은 기준금리를 올린 지 한 달 만에 지준율을 두 번씩이나 인상한 사실에서 잘 드러났다. 그래서 미국 월가와 홍콩 금융시장 전문가들은 저우샤오촨이 올해 안에 지준율과 기준금리를 한 차례 정도 더 올릴 것으로 보고 있다.

버냉키·트리셰에 비하면 권한 별로 없어
저우샤오촨은 최근 신화통신을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미국·유럽·일본의 돈 풍년이 엄청난 압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민은행은 이번 지준율 인상 직전에 대책을 마련해 내놓았다. 이른바 ‘저우샤오촨 풀(Pool)’이다. 저우샤오촨 정책조합이라는 의미다. 이는 ▶경제구조를 수출에서 내수로 전환하는 것을 지원해야 하고 ▶경제가 8% 성장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위안화의 신뢰성을 높여 통화패권 인수를 준비하고 ▶중국이 일본처럼 거품에 시달리다 위기를 겪는 사태를 예방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 물가안정과 핫머니 차단까지 포함해 중국인들은 ‘저우샤오촨의 6대 과업’으로 부른다.

그의 6대 과업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물가를 잡으면 단기적으로 성장이 둔화하는 일은 피할 수 없다. 저우샤오촨은 정책 지렛대를 절묘하게 움직여 조각 맞추기를 해야 한다. 하지만 그가 쥐고 있는 정책 수단이 시원찮다. 기준금리와 지준율 지렛대가 원하는 만큼 효과를 내지 못한다.

중국의 기준금리는 1년 만기 예금과 대출 금리다. 현재 중국 1년 만기 예금 금리는 2.5%다. 올 10월 말 현재 물가 상승률은 4.4% 수준이다. 올 연말께엔 5%대에 이를 수 있다는 게 일반적인 예측이다. 예금 금리에서 물가 상승률을 뺀 실질 예금 금리는 마이너스다. 은행에 돈을 맡겨봐야 손해란 얘기다. 풀린 돈이 중앙은행으로 되돌아올 가능성이 거의 없다.

1년 만기 대출 금리가 5.56%로 인상됐지만 돈이 풀려나가는 것은 생각만큼 잘 억제되지 않았다. 올 9월 말 현재 통화(M2) 증가율은 19.3%에 이른다. 지난해 25%와 비교하면 많이 낮아졌지만 여전히 억제목표치인 17%를 웃돌았다. 경제 성장률도 10% 이상이다. 적정 수준인 8~9%보다
높다. 과열이라는 진단이 우세하다. 거품 우려도 제기됐다.

중국은 콜금리나 연방기금금리처럼 초단기 금리를 기준금리로 쓰지 않는다. 금융회사들이 주축이 된 자금시장이 제대로 발달하지 않아서다. 중국의 금융통화정책 전달경로(Transmission Mechanism of Monetary Policy)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중앙은행이 기어(기준금리)를 변경해도 트랜스미션(자금시장)이 시원찮아 바퀴에 원하는 만큼 동력이 전달되지 않는 셈이다. 그 바람에 기준금리를 올려봐야 원하는 만큼 물가가 안정되지 않는다.

지준율 효과도 시원찮다. 저우샤오촨이 올 들어 지준율을 잇따라 올렸지만 은행권 대출은 늘어만 갔다. 더욱이 창구지도를 통해 부동산시장으로 흘러드는 자금줄을 죄었지만 효과가 거의 없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전했다. 저우샤오촨은 버냉키나 트리셰, 시라카와보다 몇 곱절 많은 과업을 짊어지고 있지만 이를 제어할 정책수단은 거의 쥐고 있지 못한 셈이다.

공산당 고위층 자제 ‘태자당’ 출신
저우샤오촨은 인민은행 11번째 인민은행장이다. 인민은행이 서구식 중앙은행으로 변신한 1995년을 기준으로 따지면 중국에서 두 번째 중앙은행 총재다. 그의 전임자인 다이샹룽(戴相龍·66)은 반쪽자리 중앙은행 총재였다. 그가 인민은행장이었던 1995~2002년엔 위안-달러 페그제(고정환율제)가 유지됐다. 그는 철저하게 국내 변수만 고려하면 됐다. 실제로 그는 대외 사정을 거의 고려하지 않고 공산당이 제시한 과업을 달성하기 위해 틈만 나면 금리를 인하했다. 오죽했으면 ‘금리 깎아주는 사람’으로 불렸을까.

하지만 저우샤오촨이 행장에 취임한 2002년 이후 중국 금융시스템은 빠르게 서구화됐다. 페그제가 폐지됐고 금융시장의 빗장이 풀려나갔다. 중국 경제 규모도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다. 세계 3대 경제 대국이 됐다. 막대한 무역흑자 덕에 그는 2조 달러가 넘는 외환보유액을 관리한다. 그의 말 한 마디에 글로벌 금융시장이 급격히 출렁거리기도 했다. 글로벌 금융시장 영향력이 이처럼 막강한 인물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저우샤오촨이 처음이다.

그런데 올 8월 홍콩 금융시장에 이상한 소문이 나돌았다. 저우샤오촨이 서방으로 망명했다는 루머였다. 그럴 듯한 이유가 곁들여져 있었다. 미국 재무부 채권에 투자했다가 본 손실이 4300억 달러에 달해 중국 공산당이 조사에 들어가자 그가 망명을 선택했다는 것이었다.

인민은행이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신화통신을 통해 저우샤오촨이 일본은행 임원들과 만난 모습을 공개했다. 그의 망명설은 금방 가라앉았다. 저우샤오촨 망명설을 통해 글로벌 시장은 “그가 여차하면 중국 공산당 반대파의 공격을 받을 수 있음을 다시 깨달았다”고 당시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보도했다. 공산당 내에서 그를 둘러싼 정치지형이 엿보였다는 얘기다.

저우샤오촨은 중국 공산당 내에서 태자당으로 분류된다. 공산당 고위층 자녀다. 젊은 시절 외국에서 공부해 국제감각을 갖춘 인텔리 축에 든다. 중국 내 정책목표뿐 아니라 국제공조도 중시한다. 중국 독자성을 강조하는 세력의 눈에 외국 앞잡이로 비치기 십상이다. 글로벌시장에선 막강해 보이는 그가 당내에선 그렇지 못한 셈이다. 수전 셔크 미국 UC샌디에이고 국제분쟁협력연구소장이 말한 ‘중국 엘리트의 양면성’이다. 저우샤오촨이 물가 안정과 경제 성장을 동시에 이루지 못하면 중국 공산당 내에서 어떤 궁지에 몰릴 수 있을지 가늠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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