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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속기는 과학의 잔디구장, 노벨상 위한 확실한 투자”

시위를 뜻하는 ‘데모(demo)’는 영어 ‘데먼스트레이션(demonstration)’에서 나왔다. “과학은 곧 데먼스트레이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데먼스트레이션에는 ‘논증·증명’이라는 뜻도 있기 때문이다. 과학자가 할 일은 논증과 증명이지 시위가 아니다. 홍승우(51·사진) 성균관대 물리학과·에너지과학과 교수가 지난달 27일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다. 2009년 2월 국회에 제출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조성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이 한나라당·민주당·자유선진당 의원들의 정파적이고 지역적인 이기주의 때문에 2년째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1인 시위가 중앙SUNDAY 사설(11월 14~15일자 2면)에 소개된 뒤 청와대와 정부, 정치권 일각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일고 있다.

국회 앞 1인 시위, 중이온가속기 설계하는 홍승우 교수

특별법안에는 중이온가속기 건설이 들어있다. 중이온가속기는 중이온(수소·헬륨보다 무거운 원소)을 인위적으로 거의 빛의 속력으로 가속시켜 거기서 발생하는 극소 입자를 이용해 137억 년 전 우주 탄생의 비밀과 우주원소의 기원을 탐색한다. 극소 입자의 크기는 나노(10억분의 1m)의 100만분의 1인 펨토 사이즈다. 펨토는 1000조분의 1m 를 의미한다. 중이온가속기가 ‘미시 세계를 들여다보는 현미경, 21세기의 연금술’로 불리는 이유가 이것이다.

한국 기초과학을 노벨과학상을 받을 수 있는 수준으로 끌어올릴 중이온가속기는 친환경적인 핵에너지, 방탄종이 같은 신물질 개발, 암 세포의 자기복제 차단 같은 꿈의 원천기술들을 생산하기 위한 필수 시설이다.

홍승우 교수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에 들어설 중이온가속기의 설계를 맡고 있다. 성균관대(학사)와 미 텍사스 오스틴대(박사)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홍 교수는 독일 율리히 국립연구소, 캐나다 TRIUMF 국립연구소 등에서 연구 활동을 했다. 교육과학기술부 지정 원자력기초공동연구소 소장이기도 한 홍 교수는 핵과학 연구, 물리학 교육 관련 정책 연구 활동도 수행해 왔다. 성균관대 자연과학캠퍼스(수원)에 있는 홍 교수의 연구실에서 17일 그를 만났다. 다음은 인터뷰 요지.

-중이온가속기를 건설하는 데 4600억원이 든다. 왜 건설해야 하나.
“대한민국은 이제 세계 최고의 과학을 해야 할 단계다. 2등도 소용이 없다. 과학자들은 세계 최고의 시설로 찾아간다. 노벨상이 나오는 곳은 당대 세계 최고의 시설이 있는 곳이다. 세계 최고의 시설이 세계 최고의 연구 결과를 만들어 낸다.”

-중이온가속기를 ‘과학자들의 잔디구장’이라고 표현한 바 있는데 무슨 뜻인가.
“우리가 월드컵 축구 예선도 통과하지 못하던 시절, ‘잔디 축구장 하나 없는데 어떻게 월드컵에 진출하겠는가’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과학에서 가속기는 축구선수들을 위한 잔디 구장과 같다. 과학자들이 젊어서부터 자신의 가속기 시설에서 이것저것 해보고 실패할 자유도 누려 봐야 한국 과학의 신화가 탄생할 수 있다. 과학자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이 동일한 경우 어떤 시설에서 연구하며 경력을 쌓는가에 따라 수십 년 뒤 국제무대에서 리더로서의 실력 차이가 난다. 세계적인 과학 리더들을 키우려면 이를 뒷받침할 세계적인 시설이 있어야 한다.”

-한국형 중이온가속기는 세계 최고인가.
“세계 최고라고 자신한다.”

-기초과학보다는 공학 등 응용과학 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되는 게 더 시급하지 않은가.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가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그런 관점의 비판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우리나라가 아직 기술사업화도 어려운 상태인데 과학을 강조하면 기술 쪽이 약화된다든지 기술사업화도 어려운데 과학비즈니스가 어떻게 가능하냐 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기술사업화의 노력이 부족했다기보다는 우리가 만들어낸 원천기술이 세계 최고가 아니었다는 게 문제였다. 우리가 확보한 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이 아니었기에 기술사업화가 안 됐던 것이다. 기초과학을 통해 혁신을 이룩해야 한다. 이스라엘의 와이즈만 연구소가 좋은 사례다. 생명과학·수학·화학 등의 순수기초과학만 연구하는데, 거기에서 나오는 원천기술을 예다라는 기술지주회사에 제공해 매년 10조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고 있다. 그곳 사람들은 ‘우리는 진화가 아니라 혁명이 필요하다’라고 말한다. 그들은 혁명적인 원천기술이 기초과학에서 나온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IBM의 경우에도 노벨 과학상 수상자만 5명이 있다. IBM은 회사이지만, 수학·물리학·화학·생물학·인지과학·뇌과학 등 기초과학 부문의 세계 최고 연구를 한다. 순수한 로열티 수입만 일년에 1조원이 넘는다.”

-과학 선진국의 기초과학 지원은.
“미국의 경우 정부가 대학에 지원하는 연구개발(R&D) 예산의 70%가 기초과학과 의과학에 투자되지만, 우리나라 경우에는 30% 수준이다. 이런 비율로 투자된 게 지난 50년 이상 동안 누적됐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기초과학 투자가 너무나 미흡했기 때문에, 이제부터 기초과학에 많이 투자하더라도 지금까지 미흡했던 것을 만회하는 데도 사실은 부족하다. 미국은 철저한 시장자본주의 철학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식 산업정책이 없다. 산업기술 개발은 시장의 필요에 따라 산업체가 하는 것이고, 정부는 기초과학을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초과학의 성과는 결국 산업기술을 뒷받침하게 되므로, 정부는 산업기술을 간접 지원하는 것이다.”

-과학과 행정의 관계에서 미국 사례를 참조한다면.
“미국의 경우, 과학과 정부 행정의 관계가 협업보다는 분업에 가깝다. 10년, 20년 동안 장기적으로 많은 투자가 필요한 과학을 ‘메가사이언스(mega-science)’ ‘빅 사이언스(big science)’라고 부르는데, 방향 자체를 제안하는 것은 과학자들이 한다. 과학자들만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상향식(bottom-up)으로 장기 계획 보고서를 작성해 정부에 제출하면 과학자들이 할 일은 일단 끝난다. 정책 결정은 과학자들의 손을 떠나 정부의 몫이 된다. 두 과정이 완전히 독립돼 있다. 정책 결정 과정에서 협업이 불필요한 이유는 미국 정부의 과학 관련 공무원들이 전문성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 관련 부서의 수장도 학자 출신이 맡는다. 미국 에너지부(DOE)의 스티븐 추 장관은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물리학자다. 국장들도 흔히 교수나 연구원 출신이다.”

-과학자는 어떤 사람인가.
“과학자는 좀 특이한 족속일 수 있다.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공부하는 것을 싫어하는데, 노상 책상에 앉아 있고 실험실에서 연구하는 게 과학자다. 사람을 만나는 게 연구하는 것보다 부담스러운 과학자도 있다. 문제는 연구 환경의 변화다. 옛날에는 혼자서 연구해도 훌륭한 학자가 될 수 있었다. 요즘에는 돈이 없으면 연구를 할 수 없다. 전 세계의 난다 긴다 하는 사람들과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한다. 그러니 연구비가 필요하고 결국 정부밖에 지원을 기대할 데가 없다.”

-기초과학이란 무엇인가.
“‘천국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는 지옥의 문도 열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같은 연구에서 제2차 세계대전을 끝낸 원자폭탄과 우리나라 전력의 40%를 차지하는 원자력에너지가 나왔다. 과학은 어떻게 쓰일지 알 수 없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이 어디에 쓰일지 생각하고 만든 것이 아니다. 그러나 위치정보시스템(GPS)에도 일반상대성이론이 적용되고 있다. 상대성이론이 적용되지 않으면 하루에 오차가 10㎞씩 난다. 그런 기초과학 연구를 산업체가 다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래서 그런 기초 연구를 정부가 뒷받침하는 것이며 정부·산업체·대학·연구소가 자연스럽게 상생하는 방안을 찾게 되는 것이다. 기초과학은 ‘호기심 때문에 하는(curiosity-driven) 과학’이기도 하다. 그러나 학문적 호기심을 충족하는 행위는 인간의 다양한 활동 중 매우 가치 있는 행위이고, 호기심으로 하는 기초과학에서 우리 후손들의 먹을거리가 나온다는 게 기초과학의 패러독스다. 기초과학을 위한 중이온가속기가 낼 과학기술 성과는 결국 미래에 엄청난 부를 창출할 것이다. 따라서 중이온가속기는 과학자들에게 정부가 제공하는 ‘선물’임과 동시에 그것이 결국 우리의 미래 먹을거리를 제공할 것이라는 상생적 인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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