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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 다 못한 신하도 초과한 신하도 모두 벌하라”

한비자는 유형화(categorization)의 천재였다. 그는 간신, 군주에 대한 위협, 국가 보존의 원칙, 망국의 징조와 관련해 여러 유형을 제시했다. [한길사 제공]
영어 사전을 보면 12번째 영어 알파벳인 ‘엘(l, L)’을 소문자로 쓴 ‘legalism’과 대문자로 쓴 ‘Legalism’이 나온다. 소문자 l을 쓴 legalism은 율법주의·법률만능주의를 뜻한다. Legalism은 법가(法家)를 영어로 옮긴 말이다. 웬만한 크기의 영어 사전에 나올 정도로 법가는 서양에서도 꽤 많이 알려진 동양 사상이다.

세상이 주목한 책과 저자 <9> 『한비자』

하지만 서양에 미친 영향력에 있어서 법가는 유가(儒家)에 비해 미약하다. 시카고대학의 H G 크릴 교수(1905~1994)는 유교와 서구 민주주의에서 미국 독립선언이 공자 철학사상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크릴 교수에 따르면 공자는 “18세기 계몽주의의 수호성자”였다.

마키아벨리보다 1800년 앞선 사상
유교 경전은 16세기 이래 예수회 선교사 시대부터 서양 언어로 번역되기 시작했다. 반면 법가의 총론이라고 할 수 있는 한비자(韓非子)의 영문 번역본 일부가 나온 것은 1939년, 완역본이 나온 것은 59년이다. 비록 뒤늦게 소개됐지만 서양 학자들은 한비자에 서양 근대 세계의 근간을 이뤄 온 능력주의(meritocracy), 관료제, 중앙집권 정부의 원리가 나와 있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길사에서 출간한 우리말 『한비자』 (이운구 옮김)
총 55편으로 구성된 한비자의 저자는 중국 춘추 시대 말기에 살았던 한비자(BC 280~BC 233년께)다. 서양 학자들은 한비자가 이탈리아 사상가 니콜로 마키아벨리(1469~1527)와 마찬가지로 ‘권력의 획득과 유지’라는 공통의 주제를 두고 고민한 ‘동양의 마키아벨리’라는 점에도 주목했다. 국제정치사상 연구에서 한비자는 마키아벨리, 카우틸리아(BC 300년께 활동한 인도 정치가·철학자)와 더불어 정치 현실주의의 ‘원천 사상’을 제공한다.

한비자의 32~35편 외저설(外儲說)은 정치 현실주의적 통치 개념인 세(勢)·법(法)·술(術)을 제시한다. 세(勢)는 군주의 도덕성과 무관하게 백성·신하의 절대 복종을 군주의 권리로 요구할 수 있는 힘이다. 세(勢)는 자의적이 아니라 객관적인 법(法)을 통해 행사된다. 법(法)은 일단 군주가 공표하면 군주 자신을 포함해 누구나 지켜야 할 성문화된 규칙이다. 술(術)은 군주가 신하들을 지배하고 반역을 막기 위한 권모술수적인 기법이다. 한비자의 술을 신하들에게 구사하기 위해서는 비밀주의와 고도의 심리전도 필요하다. 한비자 5편 주도(主導)는 심지어 “군주는 자신이 바라는 것을 밖으로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라고 까지 주장한다.

한비자는 불멸의 업적을 남겼으나 개인적인 삶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거의 없다. 전국시대(BC 475~BC 221)의 약소국인 한(韓)나라에서 왕실의 먼 일원으로 태어난 그는 유가인 순자(筍子)의 문하에서 공부했다. 진(秦)이 한을 공격(BC 234년)하자 한왕은 한비자를 진에 특사로 파견했다. 훗날 진시황이 된 진왕은 평소 한비자를 높이 평가했기에 그에게 높은 직위를 주려고 했다. 그러나 진의 승상(丞相)이자 한비자와 같이 순자 밑에서 공부한 이사(李斯)는 모함으로 한비자를 투옥시키고 결국 독약을 마시고 자살하게 유도했다.

한비자가 표방한 법치주의(法治主義)는 유교의 덕치주의(德治主義)와 더불어 동북아를 움직여온 양대 정치 원리다. 법치주의와 덕치주의 모두 동양에서 강한 국가의 생성과 발전을 뒷받침했다. 유교가 대표하는 덕치주의에 따르면 ‘덕 있는 사람(有德者)’이어야 군주가 될 수 있으며 군주는 도덕적으로 뒤처진 사람들을 지도·교화하는 것을 정치적 목표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한비자는 덕(德)이 있다고 군주가 되거나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기적인 인간을 교화하는 것에 대해서도 회의적이었다.

권력 키워드는 세(勢)·법(法)·술(術)
한비자의 법치주의는 ‘신상필벌(信賞必罰)’로 요약될 수 있다. 공(功)이 있는 자에게 반드시 상을 주고, 죄과(罪科)가 있는 자에게는 반드시 벌(罰)을 준다는 뜻이다. 상벌을 두 개의 칼자루에 비유한 ‘이병(二柄)’에서 한비자는 상벌 권한을 함께 구사해야 군주로서 군림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사람은 누구나 이득을 좋아하고 해악을 싫어하기 마련이다”라는 전제에서다. 한비자의 신상필벌주의는 극단적이었다. 그는 임무와 책임을 달성하지 못한 신하들뿐만 아니라 초과 달성한 신하들까지 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굳이 요즘의 잣대로 말하면 한비자는 ‘우파·좌파’ 성향을 동시에 지닌 사상가였다. 그의 사상은 철저하게 군주의 권력 강화를 지향했다. 그는 4편 ‘애신(愛臣)’에서 이렇게 말한다. “만물 가운데 군주 자신의 몸보다 더 귀한 것은 없고 자신의 지위보다 더 존엄스러운 것은 없으며 군주의 권위보다 더 중한 것은 없고 군주의 세력보다 더 성한 것은 없다.” 그는 또한 ‘포퓰리즘’에 반대했다. 한비자는 백성이 이기적이지만 자신의 진정한 이익을 모르기 때문에 그들의 인기를 얻으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고 봤다. 부자들에게서 거둬들인 세금으로 빈민을 돕는 것에도 반대했다. 그러나 한비자는 평민을 높이 평가하지는 않았지만 신분을 초월한 능력주의를 내세웠다. 군주가 스스로 정한 ‘법’에 따라 사람을 등용하고 평가할 뿐 자신의 ‘마음’을 기준으로 삼지 않는 게 한비자의 능력주의다. 당시로서는 진보적인 주장이었다. 그는 유물론적인 입장에서 미신적인 사고에 반대하기도 했다.

우파·좌파 성향 동시에 지닌 사상가
한비자는 국가의 흥망에 대해 ‘유도(有度)’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항상 강한 나라도 항상 약한 나라도 없다. 법을 받드는 자가 강하면 나라가 강하게 되고 법을 받드는 자가 약하면 나라도 약해진다.” 한비자의 주장을 대부분 실천한 진시황(秦始皇·BC 259~ BC 210)은 BC 221년 중국을 통일했다. 그러나 진(秦·BC 221~206)나라가 망하고 한(漢·BC 206~AD 220)나라가 들어서자 유교가 국교로 채택됐고 유학자들은 법가를 진나라가 망한 주범으로 몰았다.

춘추전국시대(BC 770~BC 221)에 법가는 유교·도교·묵가와 더불어 4대 사상 중 하나였다. 한비자는 법가의 입장에서 나머지 사상을 비판하고 정리했다. 한비자는 유가를 묵가와 더불어 혼란을 조장하는 ‘다섯 가지 벌레(五<8839>)’ 중 하나라고 주장했으며 진나라에서는 법가적 배경에서 분서갱유(焚書坑儒)까지 발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교는 법가의 유용성을 인식하고 법가의 법치주의를 흡수했다.

그러나 한비자의 현실주의에서 발견되는 ‘비도덕적’ 요소까지 유교가 수용할 수는 없었다. 특히 한비자가 주장한 군주와 군신 사이의 적대적인 긴장 관계는 군신유의(君臣有義·임금과 신하 사이의 도리는 의리에 있음)라는 유교의 이념과 배치됐다. “의심하는 사람은 등용하지 말고 등용한 사람은 의심하지 말라(疑人勿用 用人勿疑)·명심보감(明心寶鑑)”(금사(金史)에는 ‘疑人勿使 使人勿疑’라고 나옴)는 유교적 권고와 달리 한비자는 군주가 신하들에게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항상 의심할 것을 주문했다. 한비자의 충언에 충실한 군주는 신하들 때문에 항상 불안하고 신하들의 고자질을 장려하는 군주이기도 했다. 한비자의 17편인 비내(備內)에서는 부인이나 자식 역시 군주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고 냉정하게 지적했다.

법치의 이면엔 왕권 견제 장치
오늘날 한비자를 읽어야 할 필요성은 어떻게 확보될 수 있을 것인가. 우선 한비자는 효과가 입증된 사상서라는 것을 지목할 수 있다. 수천 년 동안 동양에서 유교가 지배적 이데올로기였다면, 한비자의 법가 사상은 유교의 이면에 감춰진 이데올로기였다. 유럽에서 서로마제국이 망한 476년 이후 로마제국은 복원되지 못했다. 중국에서는 진나라·한나라의 통일 이후 통일 제국은 예외가 아니라 정상적인 상태였다. 유교와 한비자의 법가 사상은 사상적 구심력으로 작용했다.

모든 사상은 고유한 역사적·구조적 배경에서 탄생한다. 역사나 구조에서 어떤 사상의 요소를 벽돌처럼 빼내어 활용할 수 있을까. 유교가 법가의 주장을 받아들인 선례를 보면, 법가를 오늘에 되살려 선별적으로 적용하는 게 가능하다. 한비자를 오늘에 되살리는 데 필요한 과제 중 하나는 법가사상과 민주주의의 관계를 설정하는 것이다. ‘법에 의한 통치(rule of law)’로 요약되는 서양의 법치주의는 왕권에 대항해 왕권을 약화하는 기능을 했다. 반면 법가사상은 왕권을 강화하는 데 봉사했다. 표면적으로는 그렇지만 그렇지 않은 측면이 있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다. 한비자에는 ‘숨겨진 의도(hidden agenda)’가 있다는 해석이다. 즉 법치주의는 왕권을 견제하는 장치로도 기능했다는 주장이다. 한비자의 법치주의는 약자와 강자 사이의 룰(rule) 구실을 한 측면도 있다.

한비자는 제왕학(帝王學)적인 문서다. 다른 제왕학 문서와 마찬가지로 한비자는 현대의 기업 총수들이 읽을 만한 책이다. 한비자식 신상필벌주의나 능력주의는 오늘의 기업들도 참조할 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한비자에는 오늘의 기업 문화에서 중시되는 개인주의, 개인의 창의성, 기업 후계자·리더의 양성 문제 등이 빠져 있다. 그러나 한비자는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신선한 영감을 줄 수 있다.

바쁜 현대인들이 한비자를 다 읽는 것은 벅차다. 최소한 말과 설득의 어려움에 대해 논한 ‘세난(說難)’과 ‘난언(難言)’은 모든 사회인과 지식인이 필독할 만한 명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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