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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4차원 동맹’ 스마트TV보다 고차원의 융·복합 기술 개발 중

지난달 말 미국 애틀랜타 코러스 연구소에서 김종만(사진 오른쪽) 교수가 조지아공대 연구원들과 함께 차세대 방송·통신 융합 기술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애틀랜타=주정완 기자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무대로 유명한 미국 조지아주의 주도(州都) 애틀랜타. 인구 400만 명(교외 지역 포함)으로 미국 동남부 6개 주의 최대 도시다. ‘포춘 500대 기업’ 중 코카콜라·델타항공을 비롯한 13개 사의 본사가 몰려 있는 비즈니스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고속도로와 연결된 시내 북쪽 미드타운에는 세계 멀티미디어 시장 제패를 노리는 한국 중소기업을 위한 연구개발(R&D) 거점이 있다. 125년 역사의 조지아공대 안에 설립된 ‘코러스(KORUS) 정보·미디어 시스템 연구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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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조지아공대의 각종 연구소와 주정부 관련 기관이 R&D 클러스터를 이룬 ‘센터지 원(Centergy One)’ 건물을 찾아갔다. 코러스 연구소는 이 건물의 4층과 5층에 자리 잡고 있다. 연구소 입구에서 문을 밀고 들어가자 낯익은 로고들이 한꺼번에 눈에 들어왔다. 지식경제부·한국산업기술진흥원·전자부품연구원·성균관대와 코스닥 상장 기업인 씨에스였다. 벽면에는 연구소에서 개발 중인 멀티미디어 기술의 개념이 화려한 그래픽과 함께 소개돼 있었다.

코러스 연구소 등 조지아공대의 각종 기술개발 연구소와 조지아 주정부의 지원 기관이 연구개발(R&D) 클러스터를 이룬 센터지 건물.
김종만 연구소장(조지아공대 전기컴퓨터공학부 교수)은 기자를 안내하며 “이곳은 국경을 초월한 산학연관(기업·학교·연구소·정부) 기술협력이 이뤄지는 현장”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 대학이 한국 정부의 연구비를 지원받은 첫 사례”라며 “한국과 미국에서 참여하는 기관과 업체의 수만 줄잡아 10곳”이라고 강조했다.

코러스 연구소에선 미국 대학의 창의적 아이디어와 연구개발 능력, 한국 중소기업(씨에스·가온
미디어)의 기술력, 한국 정부의 연구비 지원이란 3박자로 새로운 협력 모델을 만들고 있다. 향후 디지털 멀티미디어 시장을 주도할 차세대 융·복합 기술을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연구소 입구에 있는 한국 측 참여 기관들의 로고.
김 교수는 “조지아공대에선 다섯 명의 교수를 포함해 모두 20여 명의 석·박사급 연구원이 기
술개발에 달라붙었고 한국의 전자부품연구원도 박사급 연구원을 파견했다”고 말했다. 이 프로젝트에는 조지아 주정부, 비영리 단체인 조지아리서치연합(GRA), 조지아공대 소속의 기업혁신연구소(EII), 한국의 성균관대 등도 참여한다.

“CNN 등 현지 언론도 높은 관심”
같은 건물 12층에 있는 조지아 주정부 경제개발국을 방문했다. 마크 라이틀 차관보(국제통상 담당)는 환한 미소와 함께 한글로 이름과 직책을 적은 명함을 내밀었다. 한글 명함을 따로 만들었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뜻으로 보였다. 그는 “기아자동차·SKC 등 한국 기업들의 잇따른 조지아 진출은 지역 경제에 매우 긍정적”이라며 “우리의 중요한 파트너인 한국과 조지아공대의 기술협력이 좋은 성과를 거둘 것으로 확신하며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지난해 7월 코러스 연구소 개소식에는 켄 스튜어트 주정부 상무장관이 직접 참석했다”며 “모든 연구는 주정부의 각별한 협조로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또 “개소식 당시 CNN과 폭스뉴스를 비롯해 미국 언론 60여 곳에서 높은 관심을 보였다”며 “미국 관점에서도 적지 않은 금액의 연구비(5년간 95억5000만원)를 한국 정부가 미국 대학에 과감히 지원한다는 소식에 무척 놀라워하는 분위기였다”고 소개했다.

조지아공대는 2008년 산업기술진흥원(KIAT)의 ‘한·미 공동 기술개발 사업’에 연구비 지원을 신청했다. 최종 지원대상에 선정된 5개 과제 중 한국 대학이나 기업이 아닌 미국 측이 연구 수행의 주관을 맡은 것은 조지아공대가 유일하다. 당시 MIT·스탠퍼드·예일대 등에서 총 109개 과제를 제출해 20대 1이 넘는 경쟁을 벌였다.

한국 기술보증기금의 경제성 평가 결과 코러스 연구소가 이번 연구개발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해 세계 시장에 관련 제품을 내놓으면 2015년을 기준으로 연간 1700억원대의 매출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됐다. 김 교수는 “기보의 전망은 굉장히 보수적으로 추정한 것이고 조지아공대 측은 연 매출 20억~30억 달러(약 2조2000억~3조3000억원)를 내다보고 있다”며 “전혀 없던 시장을 처음부터 만들어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무한한 가능성이 있으며 현재로선 누구도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II의 칼 러스트 국장은 “조지아공대는 역사적으로 미국 남동부 지역의 산업 활성화를 목적으로 설립돼 산학협력의 전통이 강하다”며 “최근에는 국제 협력에 큰 비중을 두고 있으며 삼성·LG 등과도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대학은 최신 기술 트렌드에 대한 연구 경험을 얻고, 중소기업은 대학의 창의적 연구 성과를 활용하면 모두가 ‘윈-윈(win-win)’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개인 성향에 따라 광고·마케팅 가능
코러스 연구소가 수행하는 연구 과제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여러 군데로 분산돼 있는 가정용 멀티미디어 기기와 시스템을 한군데로 융합하는 것이다. 현재 많은 가정에선 ▶TV에 케이블이나 위성 방송을 볼 수 있는 장치(셋톱박스)와 DVD 플레이어를 연결해 놓고 ▶집전화와 휴대전화를 따로 쓰고 ▶초고속 인터넷을 연결한 컴퓨터를 갖고 있다. X박스·플레이스테이션·닌텐도 위 같은 게임기를 TV와 연결해 쓰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그런데 본격적인 방송·통신의 융합이 일어나면 영화·음악·게임·홈쇼핑 같은 각종 정보와 서비스가 하나로 뭉쳐진다는 게 정보기술(IT)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구글과 애플은 이미 스마트TV를 내놓고 기술 융합을 선도하고 있다. 스마트폰의 각종 응용 프로그램(애플리케이션)을 스마트TV에서도 쓸 수 있는 것은 물론 아이튠즈·유튜브 같은 인터넷 콘텐트를 TV로도 볼 수 있게 한 것이다.

코러스 연구소는 구글·애플의 스마트TV보다 차원 높은 가정용 융·복합 플랫폼을 개발 중이다. 이 기술은 인간과 기계의 상호 작용이 핵심이다. 연구소의 이형규 박사는 “인간이 리모컨으로 기계에 명령만 내리는 것이 아니라 기계가 능동적으로 사용자의 정보와 성향을 파악해 맞춤형 콘텐트를 찾아줄 수 있다”며 “휴일에 집에서 쉬고 있을 때 옆에 있는 친구가 영화나 음악을 골라주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되면 개인 성향에 따라 세분화한 광고·마케팅이 가능해져 AT&T를 비롯한 통신·방송업계의 관심이 매우 높다”며 “1초에 1조 번의 연산 능력(테라급)을 갖춘 초고성능 인공지능형 서버를 가정용으로 개발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기술 개발이 이뤄지면 한국의 씨에스와 가온미디어가 관련 제품의 상용화를 맡게 된다. 씨에스는 현재 이동통신과 무선 인터넷 신호를 기지국이나 서버와 연결하는 중계기 분야에서 남다른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가온미디어는 디지털 신호를 전달받아 TV 방송을 볼 수 있게 하는 셋톱박스 기술에 강점을 갖고 있다.

미 동남부 R&D 클러스터 활용해 시너지
산학연관이란 연결 고리를 활용해 미국으로 향하는 한국 중소기업은 계속 줄을 이을 것으로 보인다. 코러스 연구소는 ‘R&BD(연구개발 및 사업화) 허브’란 이름으로 더 많은 중소기업을 유치할 계획이다. KIAT는 현재 기계·소재·IT·바이오·의료 분야의 유망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산학협력형 국제공동기술개발사업’의 공모 절차를 진행 중이다. 여기서 선발된 중소기업은 ▶코러스 연구소에서 공짜로 사무·연구 공간을 쓰고 ▶조지아공대의 도움을 받아 기술을 개발한 뒤 ▶조지아 주정부의 사업화 자금 지원과 세금혜택 등을 받을 수 있다. KIAT는 이달 말까지 세 건의 공동 기술개발 과제를 선정해 3년간 각각 최대 21억원의 연구개발 및 시장개척비를 지원할 예정이다.

KIAT의 백성진 선임연구원은 “만일 중소기업이 미국에 독자적으로 사무소나 연구소를 연다면 비용도 큰 부담이지만 시장정보 수집과 현지 네트워크 구축에도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며 “하지만 코러스 연구소에선 주정부와 조지아공대의 협력 네트워크를 활용해 비교적 쉽게 현지 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애틀랜타는 미국 동남부와 중남미로 가기에 편리한 교통의 요지이고 물가도 뉴욕이나 로스앤젤레스(LA) 같은 곳에 비해 훨씬 저렴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며 “코러스 연구소 주변은 조지아공대를 중심으로 R&D 클러스터를 이루고 있어 연구개발에 시너지(상승) 효과를 내기에도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과학기술과 기업경영 결합해 인재 양성
조지아공대와 KIAT는 핵심 기술인력을 양성하는 데에도 손을 잡았다. 지난 8월 조지아공대 안에 개설한 ‘글로벌 기술경영석사(MOT)’ 프로그램이다. 한국 기업과 정부 투자기관에서 연구 경력 3년 이상의 우수한 인력 20여 명을 뽑아 1년 동안 집중적으로 과학기술과 기업경영 원리를 결합한 교육을 시키는 것이다. 조지아공대는 한국 학생을 위한 특별 교육과정을 개발하고 KIAT는 수업료 전액을 지원한다.

MOT 프로그램의 비노드 싱할 주임 교수는 “기술자는 기술만 신경 쓰고 경영자는 경영에만 전념하는 시대는 지났다”며 “아무리 기술적으로 탁월한 제품을 개발해도 시장에서 소비자가 외면하면 전혀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일반적인 경영학석사(MBA)는 말 그대로 기업경영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기술에 대한 이해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며 “MOT는 기술 혁신과 R&D 전략을 세우고 다양한 최신 기술을 유기적으로 결합해 기술 중심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주력한다”고 소개했다. 이어 “수업은 삼성이나 애플 같은 세계적인 IT 기업들의 글로벌 비즈니스 전략 등 구체적인 사례에 대한 토론 중심으로 이뤄진다”고 덧붙였다.

MOT 교육을 받는 학생들은 대부분 공학 분야의 석·박사 학위를 갖고 있다. 이들은 귀국하면 기술과 경영 관련 지식을 접목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한국전력에서 온 박기준씨는 “미국 센트럴플로리다 대학에서 광학공학으로 박사 학위를 따고 한전에서 10년 정도 근무하다 우연히 모집공고를 보고 지원했다”며 “회사 복귀 후 기술 관련 사업계획을 경영의 시각에서 해석하고 설명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자부품연구원의 양웅식씨는 “한국에선 기술 사업화 관련 업무를 주로 했는데 경영학 지식이 부족해 어려움이 많았다”며 “앞으로는 기술의 관점에서 경영을 보고, 경영의 관점에서 기술을 보는 크로스오버(교차)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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