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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과 모차르트

눈에 띄는 모든 것이 쓸쓸한 만목소연(滿目蕭然)의 계절. 가을은 깊다. 특히 도시에서의 가을은 유난히 깊고 쓸쓸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쓸쓸함을 채워 줄 것을 찾아 나선다. 음악이든, 문학이든, 그림이든 작품 속에서 다양한 치유의 표현들을 스스로 찾아내 위로 받는다. 유난히 고립되고 외로운 우리들을 소통할 수 있게 해주는 ‘그것’이 항상 고맙고 신기하다.

내게 ‘그것’은 음악이다. 허기진 마음을 채워주는 데 클래식 음악이 최고라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그대로이다. 변함 없고 격조 있는 아름다움에 나는 늘 위로받는다. 때로는 그 음들 속에서 작고 초라한 슬픔도 발견하고, 아프게 얽혀 있는 복잡한 사연도 읽게 된다. 클래식 애호가들은 이 계절을 이야기할 때 브람스를 떠올린다. 왠지 허전하고 고독해져 거대한 아픔으로 파고드는 브람스는 들을수록 아련하고 그리워져 가을을 달래기에 그만이다. 애잔하고도 준엄한 비극적 아름다움과 애수를 느끼게 한다.

슬프고 애달픈 일을 당해 매우 불행한 경우를 두고 ‘비극’이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음악이 말하는 비극이 얼마나 크고 감동적인지 차분하고 조금은 고통스러운 곡들을 만나 보았다면 이해가 될 것이다. 악기들의 투명한 탄식 속 비극에는 슬픔을 덜어주는 더 깊은 슬픔이 있어 우리를 감동으로 이끈다.

얼마 전 풍월당에서 ‘울어라, 모차르트’라는 제목의 감상회가 있었다. 우울한 낭만주의의 상징인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KV304를 시작으로 단조 형식으로 작곡된 모차르트 곡들을 감상하는 시간이었다. 모차르트 단조곡들만 모아 감상해서인지 그날 하루 종일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늘 가볍게만 생각했던 모차르트가 오랜만에 내 안에 제대로 들어온 것이었다. 꺼져가는 이 가을, 모차르트 단조곡들로 울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맑은 1악장과 3악장 사이에 슬픈 단조가 숨어있는 피아노 협주곡 23번, c단조의 느린 아다지오로 시작되는 환상곡 KV475, 모차르트의 눈물이라고 할 수 있는 피아노 협주곡 20번은 베토벤도 아주 좋아했던 곡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절망의 소리를 품고 있는 아다지오와 푸가 c단조 KV546, 어머니의 죽음 그 비통함을 담은 바이올린 소나타 KV304, 아름답고 슬픈 엘레지가 숨어있는 피아노 협주곡 9번 2악장, 매우 어둡고 긴장감을 나타내는 유일한 단조 피아노 소나타 KV310, 어둡고 격렬한 교향곡 25번 g단조, 모차르트가 미완으로 남긴 최후의 작품 ‘레퀴엠’ 등 느긋하게 끊어질 듯 이어지는 모차르트의 단조 작품들을 골라서 들어본다면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모차르트의 매력에 젖어 브람스는 잠시 잊어도 좋을 것이다.

‘멜로디는 음악의 에센스’라고 모차르트가 말했듯이 모차르트 음악은 풍부하고 선율은 아름답다. 그러나 때로 그의 작품에는 힘든 삶의 무게가 더해졌고 그 무게가 더해질수록 모차르트의 음악은 깊고 아름답게 빛났다.

지금까지 우리가 즐겨 들었던 모차르트 음악이 미음(美音)이었다면, 이 가을에는 모차르트의 애음(哀音)으로 그를 만나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음악은 감상자 자신이 슬플 때 가장 아름답다. 그 슬픔은 음악으로 치유된 뒤 아름다운 모습으로 온전히 남아 나를 있게 한다. 음악은 단호함과 침묵으로 우리 곁에 소리로 남아주고 말없이 위로해준다. ‘사는 게 뭐가 그리 힘드니 힘 좀 빼…’라고 말한다.

깨물고 있던 입술을 스르르 놓으며 가까스로 유지했던 냉정함을 잃고 다시 눈을 감는다. 지금 흐르는 음악은 아르투르 그뤼미오와 클라라 하스킬이 연주하는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KV304 2악장이다. 돌 위에 앉은 작은 꽃잎처럼 잔잔하게 슬프다.




최성은 1974년생. 음반 큐레이터. 클래식 강좌 기획과 클래식 테마 여행 등 클래식 음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즐거운 일이라면 모두 한다. 2003년부터 풍월당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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